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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영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 박경귀의 고전읽기

by 설렘심목 2013. 1. 12.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키아벨리즘(Machiavellism)으로 덧씌워진 오명은 합당한가?

 

 

세상 사람들에게 오랜 역사를 통해 깊게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바뀌기 어렵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에 대한 이미지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의 <군주론>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권모술수를 칭송한 것으로 비추어져 반종교, 반도덕적인 것으로 비난받게 됐고 결국 1559년에 교황청에 금서(禁書)로 낙인찍힌다.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으로 덧씌워진 오명은 합당한가? 이 책을 올바르게 읽기 위해 독자가 먼저 가져야 할 질문이다.

<군주론>은 1512년 마키아벨리에 의해서 집필됐고 그가 세상을 떠난 1527년의 5년 후인 1532년에서야 출판이 이루어졌다. 원래 당시 이탈리아의 북동부 지방 피렌체의 군주였던 로렌조 메디치에게 헌정된 것이다. 외부 출판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군주의 통치술에 대한 상소문 성격으로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군주를 통해 자신이 통찰해 낸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통치의 복안을 펼치고 싶었던 듯하다.

마키아벨리 철학의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5~16세기 이탈리아는 나폴리,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의 4개의 왕국 및 공화국과 신정체제의 교황령 등 5개국으로 분열돼 각축하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수공업, 상업, 무역업이 흥성해 유럽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고 르네상스가 발상해 문화예술적 성취는 높았으나, 국방은 외국의 용병에 의존하는 등 자체 군사력이 극히 미미해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 스위스 등 군사강국의 침입에 시달리고 있었다.

역사학자이자 희극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이탈리아의 통일군주가 되길 바랐던 메디치가(家)에 여러 국가의 역사적 성공과 실패 사례를 담은 군주의 통치술을 봉헌하고자 했다. 그는 피렌체 군주 메디치가 이탈리아 민족의 해방자가 될 명분과 여건이 성숙됐다고 역설한다. 그는 찬란했던 로마시대의 영광을 재현하길 소망했다.

그가 권면한 통치술 중 국방정책에 대한 예를 보자. 그는 자국에서의 통치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남의 군대의 힘을 빌리지 말고, 험난한 신고(辛苦)를 마다하지 말고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성취하라고 요청한다. 그는 로마와 스파르타가 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기에 자유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이탈리아가 외세의 침탈에 무력하고 사분오열된 근본 원인을 시민군의 부재에서 찾고, 당시 여러 나라의 용병에 의존해서 치안과 국방을 유지했던 유약한 이탈리아 공화국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려 애썼다.

강한 군주가 되기 위해 평화시의 전쟁 대비 및 군비 확장, 군사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백성에 대해 자비와 인자함을 보이되, 군대를 통솔함에 있어서는 한니발의 예와 같이 때로 잔혹하다는 평판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국가지도자는 일신의 안녕과 정파적 이익을 위한 권모술수가 아니라 국가 안위와 국민의 복리를 위해 때로 냉혹한 결단을 감당해야 하는 숙명적 위치에 있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과 결별하지 못하는 정파와 일부 정치인들을 보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안보와 자주국방에 대한 냉철한 식견을 갖춘 지도자가 긴요함을 시사한다.

백성과 귀족, 군대의 신망과 충성을 받을 수 있는,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군주상은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용맹한 타입이다. 그가 각국 통치자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상고(相考)해 본받으라고 하는 군주의 덕목과 통치술은 일단 도덕적, 이상적 관념의 잣대와는 무관하다. 인류보편적으로 소망스러운 것들이 아니라 인류의 실제 역사에서 반복되며 시현된 내용을 추출한 것일 뿐이다. 권력의 무자비한 속성, 권력 쟁취를 위한 인간의 오만과 탐욕, 야비함, 이전투구의 현실을 마키아벨리가 생생하게 읽어내고 그 속에서의 생존법을 제시함으로써 세상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아닌가 싶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그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로서의 군주의 통치술을 논했을 뿐, 궁극적으로 군주정을 예찬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의 저서 <로마사 논고>를 통해 그는 공화주의자로서의 자신을 철학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통일시대를 열어가야 할 지도자라면 꼭 곱씹어 읽어봐야 할 고전이다. (미래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