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따듯한세상

정직이란 최고의 자산

by 설렘심목 2010. 1. 3.

정직이란 최고의 자산

 

1951년 1월 초, 거리는 폐허가 되고 모든 사람이 1.4후퇴 피난길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떤 사나이가  가방을 들고 서울 시내 한은행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들어가
보니, 은행의 직원들은 거의 모두 이미 피난을 떠났고 출납계원들만 남아서 서류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여기 빌린돈을 갚으러 왔습니다. "
사나이가 서류가방을 열면서 말했습니다.
"빌린돈을 갚겠다고요? 지금 이 전쟁 난리통에? 높은 분들은 모두 부산으로 갔어요. 대출장
부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부는 부산에 있고, 일부는 분실되었어요. 돈을 빌려간 대
부분의  사람들은 이젠 돈을 갚지 않아요. 아마 당신의 대출장부도 분실됐을 걸요?"
이 말을 듣고 그 사나이는 잠시 어떻게 할까 망설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돈을 자기네 주머니에 넣어버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돈을 갚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사
나이의 머릿속에는 그옛날 만주에서 사업을 하다가 인민재판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1945년 가을, 만주로 진격해 들어가던 중국 공산군이 그가 살고 있는 마을까지 점령했습니
다. 그들은 그가 운영하고 있는 작은공장에 들이닥쳤고 그를 부르주아로 지목했습니다.
이윽고, 그의 공장마당에서 생사를 가르는 인민재판을 열었습니다. 독수리눈에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온 공산군 검사가 소리를 냅다 질렀습니다.
"동무들 ! 여기 우리의 적인 조선 자본주의자가 있습니다.  저놈은 땡전 한 푼 없이 10년전
에 이땅에 들어와  이곳의 꼭두각시인 푸이 황제 비호아래 중국 땅을 지배하던 일본관동군
에 빌붙어서 자기배를 불려온 자본주의자입니다. 이놈은 악질이오, 우리는 이놈을 용서해서
안됩니다.  여러분들의 결정은 어떻소? 우리 공산군은 이 공장 밖에서 여러분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겠소. 어서 이야기들 나누시오."
고소를 당한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머리는 온통 흐트러지고 입술은 바짝 말라 초췌하고 창
백해 보였습니다.  '집사람과 아이들은 어찌되었을까? 머릿속에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이 떠
올랐지만 살아남을 희망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공산군 검사가 한 이야기는 모두 거
짓말이었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방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의 종업원들도 공장 뜰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종업원들의 숫자보다는 거칠고 강인해 보이는 낯선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는 절망에 빠져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군있던 한 남자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 동무, 저 동무
는 자본주의자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자본주의자였다고 말씀드려야만 하겠습니다. 그는 이공
장을 세운 이래로 종업원들에게  이 지역에서 최고로 넉넉한 품삯을 주었습니다. 종업원
가족중에 누가 병이라도 들면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해주었고, 우리 아이들의 학비까지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를 죽여서는
안됩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수 많은 노동자들이 그때서야 하나 둘씩 그를 옹호하는 말
들을 했습니다.
공산군 검사는 노동자들의 말에 화가 나서 잠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오늘은 이 인민법정을 폐정하지만
저놈에 대해 여론이 일면 다시 재판합니다."
바로 그날밤,  몇 명의 노동자들이 그가 갇혀 있던 감방에 잠입해 들어와 그를 탈출시켰기
때문에  지금 이은행에 와 있을수 있던 것입니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겼던 사나이는, 기꺼이 은행 빚을 갚겠다고 했고
영수증에 그 은행원들의 도장을 찍으라고 청했습니다.
돈을 갚고 나서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갔고 거기서 군대에 식품을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다가 사단장 한사람이 그의 정직한 품성을 알아보고 생선을 납품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
다.  그는 될 수 있는 한 가격을 낮추면서도 품질을 유지하며 납품기일을 지키는데에 주력
했습니다.  그러자 곧 신선한 생선을 더 많이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물 밀 듯이 밀려 왔습
니다.
계약을 맺기는 했지만 그는 그 물량을 다 소화하기 위해서는 큰 배를 구입해서 직접 물량을
조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배를 구입하려면 최소한 2백만원은 있어야 했고,  그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습니
다.. 그는 융자를 받기 위해 부산으로  건너가 은행 본점을 찾았습니다. 융자신청을 했지만
대출과장이 거절했습니다.   전쟁중이라 험악한 경제조건하에서 대출을 해주는 것은 위험부
담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은행은 그저 예금을 높이는데에만 전력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출받기를 포기하고 은행 문을 나서려다가 서울에서 자기가  갚은 빚은 잘 정리되었는지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수증을 꺼내서 대출과장에게 보여주며, 전에 자기가 갚은 돈은 잘 처리되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영수증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아! 바로 당신이었군요!" 과장이 외쳤습니다.
" 중국군대가  서울에 들어오기 바로 몇 시간 전에 빚을 갚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은행가에서 전설이 됐지요. 당신을 행장님
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은행장은 울먹이면서 그이 손을 꽉 잡았습니다.
"당신같이 정직한 사업가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업을 하는 대부분이 사람들은
속임수를 쓰지 않고는 돈을 모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당신은 정직한 사업거래의
모델이자 본보기입니다.
지금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은행의 융자재원은 충분치 않지만 당신을 돕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는 은행장에게 필요한 금액을 말하면서,  지금 자신에게는 담보로 내세울 만한 것도 하나
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 걱정하지 마십시오. 담보가 없으면 배를 구입하신 후에  그 배를 담보로 하면 됩니다."
그는 그렇게 해서 필요한 돈을 대출받아 배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오늘날 한국유리공업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유리 주식회사를 창업한 최태섭입니
다.
한국유리사를 창업한 기초자본은 그렇게 해서 축적된 것입니다.

만주에 있었던 인민재판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종업원들에게 끼친 영향력
때문입니다.  그가 종업원들에게 보여준 모든 행동들은 결국 그들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습
니다.  중국 군대의 공격이 임박한 때에  빚을 갚을 것이냐 말 것이냐,  결단이 필요한 순간
만주에서 있었던 인민재판을 생각하면서  빚을 갚는다는 선택을 한 것은 또한 뒤에 세상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높여주었습니다.

그런 경험은 최태섭에게 ' 오직 정직한 지갑만이 억만금을 다스리는 힘의 원천' 이라는 믿음
을 주었고,  중요한 고비마다 그 믿음을  기준으로  선택하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자기와 세상을 옳게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최태섭 회장은  기업인이 거대한 기업을 일궈놓더라도 그 기업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으며
잠시 관리만 맡고 떠날 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경영철학은 유리산업에 뛰어든 지
40년만에  한국유리를 세계 10대 유리전문회사로 성장시켰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신념이 있습니다.  최태섭 회장의 경우에는 정직함과 청렴결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