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랑에서 극도의 증오까지 - 관계중독을 아십니까?
/ 글. 김반아 감성교육 전문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난 오로지 당신 것이에요' 식의 사랑 고백을 하는 청춘남녀들에게는 좀 재미 없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관계 중독은 '사랑' 이란 이름의 달콤한 꿀 속에 포함되어 있기 쉬운 '만성 의존증' 이란 독소에 대한 얘기다.
관계중독이란 '나 자신' 이라는 것은 없이, 다른 사람(남편, 자녀 등)과의 관계가 내 생활의 전부를 이루고, 그것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고, 그들을 돌보는 것으로 내 의식체계를 채워버림으로써 나의 내면적 공백을 메우려 하고 내 존재의 무가치성과 무의미에서 오는 공허감과 두려움을 때우려 하는 정신 질병이다.
TV드라마에 등장하는 부부관계나 엄마 자식의 관계에서도 흔히 발견될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만연하면서도 관계중독은 아직 질병으로서의 인식은 미미한 상태다. 그건 아마도 '희생과 봉사' 혹은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미화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관계중독은 수많은 종류의 중독 중에서 가장 알아보기 어렵고, 인정하기 힘들고, 치유하기는 더욱더 힘든 중독이라고 일컬어진다.
특히 한국과 같이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유교적 가족중심의 사고방식을 유지해 오고 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부부 관계와 엄마 자식의 관계는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되어 있어서 여자가 남편을 위하여, 또 자식을 위하여 전적으로 매여서 봉사하는 모습은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되기 때문에 더욱더 관계중독의 온상이 되기 싶다.
이러한 정신적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대게 우울증, 두려움, 수치심, 화 등 인간의 정상적인 감정들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마음이 불안하고 두통, 식욕부진, 불면증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비합리적이고 때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어린애같이, 때로는 제 정신이 아닌 것같이 행동한다. 이들은 옆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의존하며 다른 사람들을 항상 돌봐줘야 할 것 같이 생각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가 뭔가 부족하거나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며 죄책감과 동시에 허탈감과 열등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열 가지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황에 맞지 않게 감한 감정을 일으킨다.
불행하게도 급변하는 이 시대에 이런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의 숫자가 부지기수임을 알면서도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속수무책이다.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도 이러한 심각한 정신의 질환을 치유하는 데는 별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신과에서 시행하고 있는 광선치료를 가지고 치료할 수도 없다. 그 이유는 만성 의존증, 일명 관계 중독은 감성의 문제, 가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성 의존증의 핵심 원인은 어린 시절 부모(혹은 양부모, 또 다른 윗사람들)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즉'어린이 학대'에 있다. 그것이 치유되지 않아 감성이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자기자신의 정체감이 없으며, 가슴 속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은 허전함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아 정체감이 없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거기에는 뿌리가 없고, 항상 누군가에게 심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고,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즉시 허탈감에 빠지고 삶의 의미를 잃게 되어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않게 보았다.
어린이 학대는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한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구타, 심한 체벌, 성폭행, 근친상간, 빈곤, 기아 등 신체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학대가 있고, 감성적 차원에서 보자면 음성적(심적) 폭행, 부모의 불화를 목격하면서 자라는 것, 버러져 크는 것, 인격을 존중 받지 못하고 크는 것, 아들을 바라는 가정에 딸로 태어나서 성차별을 받고 자라는 것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지적 차원은 가부장제도의 가풍에서 무조건 순종을 요구받고 비이성적으로 엄격한 훈육 속에서 개인적인 사고 능력이 개발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자라는 것, 또 이와는 정반대로 마마보이나 공주병처럼 무조건 떠받들며 키워져서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의 개인영역을 존중하는 의식이 전혀 없게 되는 것, 또 삶에 대한(특히 성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자라는 것 등이 있다. 영적 차원의 어린이 학대에는 존재성을 무시하는 것에 위에 나열된 모든 것이 속한다.
더욱 중요한 점은 만성 의존증이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를, 특히 한국인 사회 전반을 유아기에 묶어두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만성 의존증인 사람들의 일괄적인 특징은 '자아 개념' 이 서 있지 않아 나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성 의존증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고, 들을 뒷바라지하는 데는 비상한 통찰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만성 의존증 문제를 진단하고 돕는 데 있어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맹인이고 머리가 안 돌아간다.
내 자신의 만성 의존증, 일명 관계중독을 인정하고 직시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알콜중독이나 마약중독, 도박 등과는 달리 관계중독자들의 행위는 '봉사하며 희생하는 삶' 이라고 사회적으로 권장과 칭송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만성 의존증을 퇴치하기 위한 첫 단계 작업은 내 의식세계 속에 '관찰하는 나' 또는 '큰 나'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픔 때문에 회피해 왔던 나의 과거를 이제는 돌아서서 양팔을 벌려 맞이하고 품에 꼬옥 안아 주고, 기억이 미치는 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나에게 상처를 준 사건 하나 하나를 돌이켜 직면하고 그 속에 몰입해서 그때의 고통을 의식적으로 다시 느껴보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내 과거으ㅢ 상처들이 억울하게 무시당한 채(축소되고 부인된 채) 내 의식의 저변에 생매장되어 어두운 기운으로 내 일생을 계속 좌지우지한다.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귀신의 실체다.
나의 귀신은 내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습관적 역기능, 즉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행동을 통하여 고개를 들고 나와서 나의 삶을 이모저모로 파괴한다. 우리는 내 자신의 귀신을 알아보고, 시인하고, 품에 안고, 치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귀신이 쫓아다니며 내 목덜미를 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 어릴 때의 상처에서 온 역기능적 요소들을 내가 자진해서 인정하고 변화시키지 않으면 그것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나는 그로 인해 생기는 고통에서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다.
어릴 때의 상처란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은 근본적인 상처를 말한다.
그것은 부모 역시 치유되지 않은 채 가지고 있는 상처 때문에 일어나게 되는데,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된 마음의 상처는 그 후에 생긴 다른 모든 상처의 원조가 되고 나의 감성의 성장을 중단시켜 내 속에 유치하고 고집스럽고 틀어진 어린애가 버티고 있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성숙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도록 한다.
만성 의존증은 나와 내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좁은 틀 속에 고착시킨다.
무엇보다도 핵심은 바로 나와 내 자신과의 관계이다. 우리 인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와 내 자신과의 관계가 긍정적이고 충족되어 있으며 평화롭고 창조적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자연적으로 따라서 그렇게 된다.
만성 의존증을 치료하는 두 번째 작업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즉 '나는 소중하고 아름답고 유일한 영적 존재' 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선을 긋는 것이다. '이만큼이 내 책임이고 그 이상은 내 책임 밖의 일이다.' 라고 구분을 지어야 한다.
네 번째는 나의 아픈 현실을 스스로 먼저 인정하고 그 다음에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함께 나눈다. '나보다 성숙하며 설교하려 들지 않고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누구인가? 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섯째는 내 자신이 필요로 하고 속 깊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 에 대해 곰곰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여섯째는 '관찰하는 나' '큰 나'의 의식을 가지고 생활 속에 일어나는 여러 상황들을 균형 있게 느끼고, 적당한 지점에서 소화시키는 훈련을 한다. 이러한 삶을 가리켜 '의식적인 과정 CONSCIOUS PROCESS' 이라고 부른다.
[출처] 미친 사랑에서 극도의 증오까지 - 관계중독을 아십니까? |작성자 푸른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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