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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그림&좋은글

아더핑크의 "눈"

by 설렘심목 2012. 10. 5.

 

 

 

믿음의 눈(The Eye of Faith)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

 

 

욥은 자기의(自己義)로 말미암은 불신앙의 안개가 걷혔으며, 믿음이 하나님의 존재를 살아있는 영광스러운 실체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내 눈이 항상 주를 향함은"(25:15). 욥의 믿음은 계속해서 실행 가운데 있었습니다. 성경은 모세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을 보는 것 같이 하여 견디어 냈으며"라고 합니다(11:27). 모세의 마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점유된 믿음을 통하여 격려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자주 믿음을 육체적 시각으로 비유해서 표현합니다. 우리 주님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하여 "너희 아버지 아브라함은 나의 날 보기를 기뻐하다가, 보고 반가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8:56).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시고 높아지신 날을 즐거이 기다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가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하라는 사역을 위임받았습니다(26:18). 믿음을 벗어난 몇몇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바울은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인들아, 누가 너희를 미혹하여 진리에 순종치 못하게 하더냐? 너희 가운데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눈앞에 명백히 제시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썼습니다(3:1). 우리는 몸의 눈이 마음의 믿음을 상징하는 한 가지 예표로 제한해야 합니다.

 

1. 눈은 수동적인 기관입니다.

 

눈은 스스로 빛을 비추거나, 바라보는 대상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합니다. 눈은 아무 것도 더하지 못하며, 단지 마음 안에(망막에, 그러면 뇌에 전달됩니다.) ()을 남기거나 비출 뿐입니다. 믿음도 그와 같습니다. 믿음은 아무 것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안에서 붙들고 있는 것에 아무 것도 주지 못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혼의 시각에 비쳐지는 대로 단순히 받거나 또는 마음 안에 취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그리스도에게 더하지 못하며, 다만 그분을 바라보며 구원을 받습니다(45:22).

 

2. 눈은 인도하는 기관입니다.

 

눈을 뜬 사람은 자기 길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도 "사악한 자들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들은 심지어 어디에 걸려 넘어지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의인들의 행로는 빛나는 광채 같아서 점점 더 빛나 완전한 낮에 이르느니라"(4:19,18).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함이라"라고 말합니다(고후5:7).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믿음이 우리의 본()이신 분을 봄으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로를 달릴 수 있습니다.

 

3. 눈은 매우 빨리 기능을 하는 기관으로서, 아주 멀리 있는 것들도 봅니다.

 

우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땅위에 있는 것들에서 시선을 돌려 멀리 있는 산을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땅의 것들과 가장 높이 떠 있는 별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며, 넓디넓은 온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권능도 놀라운 것입니다. 믿음이란 시각이 예민한 은혜로서, 조상들의 믿음이 행했듯이, 아주 멀리 있는 것도 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약속된 것들을 보았습니다(11:13). 그와 같이, 믿음은 순간적으로 영원 과거를 뒤돌아보며 땅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영존하는 근원과 그 역사를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장차 올 영원을 향해 돌아서서 휘장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감춰진 영광들을 봅니다.

 

4. 눈은 비록 작지만 성능이 매우 뛰어난 기관입니다.

 

낮에 빛이 있을 때 눈을 뜬 사람은 자기 시야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뒤에 있는 것을 돌아보거나 앞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으며, 샘물을 들여다보거나 깊은 골짜기 아래의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멀리 하늘의 천체(天體)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믿음도 그와 같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광대한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에까지 미칩니다. 믿음은 먼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알게 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깨닫게 합니다. 믿음은 지옥을 들여다보며, 하늘들을 관통해 봅니다. 믿음은 주변 세상의 온갖 허탄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믿음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조금 밖에 취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땅에 속한 예시가 영적인 진리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 유아(乳兒)의 눈은 빛을 보고 외부의 물체를 지각하지만, 계속해서 시각이 자랄 동안에는 많은 연약함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믿음도 그와 같습니다. 처음에 영적 지식의 빛은 매우 희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기는 멀리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비들 안으로 더 깊게 자라게 되며, 마침내 열려진 비전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5. 눈은 매우 확신을 주는 기능입니다.

 

눈은 다섯 가지 육체적 감각(五感)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면 얼마나 확실한지요!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물을 단지 정신적인 착각이라고 확신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바른 마음을 가진 자들은 누구도 그들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서 해가 빛나는 것을 보면 낮이라는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바로 그 본질에서 수많은 확신을 가져오는 은혜입니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서(證書)"(11:1). 회의론자들은 성경에 관한 하나님의 영감을 부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그 진리의 초자연적인 아름다움들을 바라볼 때 그 문제는 영단 번에 해결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꾸며낸 한 경건한 사람으로 간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가 일단 진정으로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면, "내가 알기에 내 구속자께서 살아계시니"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6. 눈은 자취를 남기는 기관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마음에 자취를 남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종종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며"라고 기도드릴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이유이며(시편 119:37), 대언자가 왜 "내 눈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도다"라고 선언하였는지에 대한 이유입니다(애가 3:51). 계속해서 몇 분 동안 해를 바라보면, 해로부터 눈을 돌리거나 눈을 감을지라도, 해의 자취는 눈에 남습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믿음은 마음에 의()의 태양이신 분의 자취를 남깁니다. "그들이 그분을 바라보고 빛을 받게 되었으며 그들의 얼굴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였도다."(시편 34:5). 고린도후서 3:18은 이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듯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나니, 곧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권능이 자기 백성들의 몸을 죽을 것(mortality)에서 생명으로, 천한 것에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처럼, 지금 성령님께서는 도덕적으로 변화시키는 권능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품에 역사하고 계시며, 믿음을 실행으로 옮기심으로 자녀들이 점점 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7. 눈은 놀라운 기관입니다.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데 유능한 사람들은 이 특별한 지체가 인간의 몸 중에서 가장 기묘하고 진기한 부분이라고 주장합니다. 창조자의 지혜와 권능의 많은 부분이 보는 기능을 형성하는 가운데 발견됩니다. 그와 같이 믿음은 영혼 안에 기묘하고 놀랍게 역사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의 지혜와 권능의 많은 부분이 새로운 피조물의 그 어느 부분보다도 믿음의 은혜가 형성되는 가운데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의 행위를 권능으로 성취하사"라고 말합니다(살후 1:11).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을 때 임했던 위대하고 전능하신 그 뛰어난 권능이 동일하게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 위에와 안에 역사하고 있습니다(1:19).

 

8. 몸의 눈은 매우 예민한 기관입니다.

 

눈은 빨리 다치고 쉽게 해를 입습니다. 아주 작은 재 하나가 고통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눈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눈물을 흘림으로 눈 안에 들어온 먼지나 티끌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믿음은 가장 섬세한 은혜로서, 깨끗한 양심 안에서 가장 잘 자랍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순수한 양심에 믿음의 신비를 간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딤전 3:9). 생기 넘치는 믿음의 역사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음 안에 들어온 죄의 먼지나 세상의 허탄한 것에 의해 쉽게 손상됩니다. 참된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죄로 인해 상처를 입었을 경우, 스스로 경건한 슬픔의 길로 그 죄를 배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