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로비 의혹 등을 제기해 국내외로 논쟁을
불러일으킨 전 국가정보원 직원 김기삼(42)씨에 대해 미 법원이 15일 정치적
망명을 허용했다. 때문에 조만간 DJ 정부와 관련한 각종 의혹도 재조명을
받게 됐다.
본보는 이번에 망명허가를 받은 김기삼씨와 지난 18일,19일 20일간 3차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김 전대통령의 노벨상수상 의혹 등을 폭로한 것은 국민들이 이에
대한 진상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나의 양심에 따라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을 위해 설치된 국정원이 김 전 대통령의
개인적 영달을 위해 노벨상수상 불법로비를 자행했다며 지난 2003년 1월
부터 미국에서 주로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김 씨는 또 DJ정권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씨가 간첩일 가능성을 제기
했으며, 2005년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안기부가 불법도청팀인 '미림팀'을
조직해 정·관·언론계 유력 인사들을 대상으로 불법도·감청을 실시했다고
폭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었다.
이같은 김 씨의 양심선언이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문으로 번지자 국정
원은 2003년 김 씨를 검찰에 고소했으며, 현재까지도 기소중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김 씨는 지난 2003년 12월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그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미법원이 그동안 나의 망명 신청을 거의 5년
동안 판결하지 않고 지내왔으나 지난 15일 재판에서 망명을 허용한 것"
이라면서 "1심판결이 난 것이지만 최종적으로도 망명이 확정될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마침 15일은 한국에서 정권교체를 이룩한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뉴욕에 선착한 날이다. 이번 망명허가와 이 대통령의 방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김씨는 "그 동안 내가 제기한 의혹들에 대해 새 정부가 진실을 밝히
겠다고 하면 내가 아는 사실에 대해 밝힐 용의가 있다”고 말하고 있어
향후 어떤 돌발상황이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sj@sundayjournalusa.com
지난 2000년 노벨상 선정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라프토 상(Rafto Prize)을
수상했던 인권단체 ‘라토브 하우스재단’의 테레스 제브센(Therese Jebsen) 사무
국장 주장은 나중 자신들의 수상과 김 전 대통령의 노벨상수상도 문제가 있음을
밝혔다. 이말은 김 전 대통령에게 노벨상 수상이 잘못됐다는 평가다.
애초 이 재단은 2000년에 김 전 대통령의 인권활동과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활동에
대해서 높히 평가하고 상을 수여했다.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나가게 한다는 정책을
높이 평가했으며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을 수여했는데 나중
DJ정권은 그 수상의 뜻과는 달리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한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브센 사무국장은 노무현 정권 시절 한국을 방문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현정부의 무관심이 김대중 정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라는
질문에 “그렇다. 매우 좋은 지적이다.
당시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대통령의 정책이 현재까지 이어졌는데도 인권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크다. 지금 우리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 높은 관심이 쏠리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인권단체들은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북한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지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었다.
노벨상 특별팀 구성
김기삼은 누구?
김기삼씨는 국정원을 사직한 후 미국에 건너와 2003년 초, 인터넷 언론 등을 통해 DJ 국민의 정부 시절의 비리의혹을 제기하며 ▲ 김대중 전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공작 ▲ 김대중 정부의 15억 달러 불법 대북 송금 ▲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간첩▲ 국정원의 불법 도청 등에 관한 의혹을 물고 늘어지면서 국내외로 충격을 전했던 인물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법대 출신으로 지난 93년 안기부 7급 직원으로 입사해 우연히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내 노벨상 관련 추진 팀에 합류되어 활동하면서 추악한 로비작전을 보고 2000년 10월 사직해 나름대로 이 사건을 추적 조사했다. 그가 노벨상수상 의혹 등을 폭로하자 국정원은 오히려 그를 명예훼손과 국정원 직원법 위반혐의로 고소한 바 있으며, 이에 맞서 김 씨는 지난 2004년 12월에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현재 김기삼 씨는 워싱턴에서 약 2시간 거리인 펜실베니아 주 해리스버그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지니고 있으나 DJ 정권에 대한 의혹사건 폭로로 지난동안 심적, 물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부 보조 프로그램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국내 친지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
김기삼씨는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반역적인 대북 뒷거래’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이 국정원내에 특별팀을 구성해 불법로비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당시 이 특별팀의 일원이었다. 김씨는 “그 때 이종찬 원장이 DJ의 욕심을 간파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로비활동을 벌였다”면서 “당시 국정원내부에서는 이 원장이 차기 대권에 욕심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도 폭로했다.
그는 “국정원의 기능이 합법적 공간에서 행 할 수 없는 일이라도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같은 기능을 특정인이 자신의 욕심이나 명예를 위해 이용하면서 비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국정원의 기능을 역이용한 이종찬 원장을 맹비난했다.
김 씨는 지난 1999년 국정원 내부에서 노벨상 추진을 위한 특별팀이 구성되면서 그 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불법로비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팀에서 일하면서 그 일이 한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국가기관이 동원되었다는데 분노했다.
그 후 김 씨는 2000년 10월 사직한 다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조심스럽게 불법로비 사항을 추적조사했으며,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결론적으로 남북정상회담 성사는 바로 노벨상 수상이 목적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고 주장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북송금’이 5억 달러로 현재까지
밝혀졌으나,
김씨는 “내가 조사한 자료와 믿을만한 출처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하면 약 18억
달러가 북한에 넘어갔다고 말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DJ정권의 최악의
비리는 바로 ‘노벨상수상 불법로비’이며 이를 위해 거액의 국고를 북한 정권
에게 주면서 ‘남북정상회담’을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라고 단적으로 말했다.
성수 대교 참사도 이용
김 씨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재미나는 사건을 알려 주었다. 지난 1994년 10월 당시
국민적 관심을 끄는 두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그해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붕괴
되어 전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10월 22일 43년만에 북한에 억류됐던 국군포로 조창호 (귀환후 작고)소위가
서해안을 통해 극적으로 귀환했다. 조창호씨는 탈북해 당시 중국 해안에서 밀항
선을 타고 인천으로 귀환하는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바다에 풍랑이 심해 첫번째 실패했다. 당시 YS정부는 성수대교 붕괴
사건의 국민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국정원을 동원해 조창호 소위
구출작전을 감행해 성공시켜 국민들에 시선을 “국군포로 조창호 43년만에 극적
탈출 성공”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성수대교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1977년 4월 착공하여 1979년 10월 준공되었다. 붕괴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경에 발생했다.
이 사고로 버스 1대, 승합차 1대, 승용차 4대 등 모두 6대의 차량과 49명의
탑승자가 추락했고 이중 32명이 사망했다. 사고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두 대는
물속으로 빠졌다.
한성운수 소속 16번 버스는 붕괴 부분에 걸쳐 있다가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하는 바람에 등교하던 무학여중 학생 1명과 무학여고 학생 8명을
포함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 중 승합차에는 경찰의 날을 맞아 우수중대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 위해 본대로 가던 의경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사고 발생 후
헌신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조했다.
사고 당일 오후 7시에 사고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경질
되었고, 우명규 시장을 거쳐 11월 3일 최병렬이 시장으로 부임했다.
사고 이후 1996년 3월부터 기존 다리를 헐고 새 성수대교를 세우기
시작하여 1998년에 완공하고, 뒤이어 2004년 9월에 왕복 8차선으로
확장했다.
김씨의 양심선언은 지난 정권의 비리의혹을 추적하는 인터넷 사이트 ‘국정원을 위한
변명 ( http://blog.cho sun.com/blog.screen?userId=kskim6508) '이라는 개인
블로그에 들어가면 ‘국정원 바로 세우기, 양심선언’ 등의 코너를 통해 지난 정권들의
비리에 대한 사항을 읽을 수가 있다.
다음은 김기삼씨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김기삼씨 전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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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삼 전 국정원 직원 | |
▲미국에 망명신청 한 동기는,
<지난 2002년 가족 모두가 미국에 입국한 이후 2003년부터 내가 김 전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로비의혹을 비롯한 임동원 전국정원장의 간첩의혹 사항 등을 폭로하자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등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이 과정에서 나의 미국 체류비자도 만료되어 한국에 귀국할 경우 양심의 따라 고발한 내용에 대해 즉 정치적 탄압을 받을 위험이 있어 망명을 선택했다>
▲언제 망명 신청을 했는가
<애초 망명신청은 아내가 지난 2003년 12월에 했다. 미국 뉴저지주의 망명사무소에 망명신청서를 냈고, 인터뷰도 했다. 국토안보부 망명사무소에서 지난동안 이를 결정않고 미뤄왔는데 추방재판이 열리게 됐고, 지난 15일 1심 판결에서 미국 정부의 추방요청이 기각되고 망명이 허용됐다>
▲국정원에는 어떤 동기로 들어 갔는가
<대학시절 많은 학생들이 참여한 것처럼 나도 운동권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이런 연유로 졸업을 늦게 하게 되면서 지금보다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당시 ‘사노맹’이란 단체에 대해 기관이 전격 수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지니게 됐다. 국정원에 들어가 국내외 담당 활동과 북한 관계 부서를 이동했다>
▲ 지금까지 폭로한 사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
<지난 200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실상 불법적인 로비로 얻은 수상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이 실상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정원에 근무한 사람으로 이같은 상을 수상하기 위해 사전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어마어마한 “대북송금” 등 국고를 탕진한 것과 그 과정이 국가안보 면에서도 심대한 위협이라고 확신했다.
다음으로는 내가 추적 조사한 결과로는 임동원 전국정원장은 북한의 간첩이라는 정황이다. 한나라의 정보계통 수장이 거의 5년동안 활동하면 북한 정보기관으로부터 조종을 받는 다는 것은 이 역시 국가 안보에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북한에 막대한 돈을 불법지원했다고 주장해왔는데
최근까지 밝혀진 것은 특검에서 약5억 달러로 발표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노벨상 불법 로비와 관련해 2-3차례 글을 발표하자 약 2주 후에 특검에서
5억 달러 상당을 북한에 제공됐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러나 내 나름대로
추적조사와 믿을만한 출처와 근거를 종합한 결과 그 액수가 18억 달러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증거를 대라는 언론의 질문이 많으나 추후 이에 대해 더 밝히게 될
것이다. 액수에 대해 막연한 추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떻게 해서 이같은 엄청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는가
< 지난 1999년 국정원 내부에서 노벨상 추진을 위한 특별팀이 구성되면서 그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서울법대 출신인 나를 잘못 선택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팔요한 조건을 구비한 직원으로 나를 선정했지만 그들의 실수였다.
그들과 함께 일을 추진해 나가면서 나는 ‘국가정책을 이들이 망치려고 하는구나’로 확신하게 됐다. 그 후 2000년 10월 사직한 다음 내나름대로 불법로비 사항을 추적조사했으며,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결론은 남북정상회담 성사는 바로 노벨상 수상이 목적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런 조사를 개인적으로 할 때 신변의 위험은 없었는가
<직접적인 신변위협은 없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때 찜질방을 다니면서 숨어 지낼 정도였다. 나와 관련된 사람들이 기관에 불려가 조사도 받고. 모처로부터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됐으며, 점차로 나에게 좁혀져 온다는 것을 정보원 생리로 느끼게 됐다.
청와대에서 ‘체포하라’는 지시가 내리기 전에 한국을 탈출할 수가 있었다. 미국에 와서 노벨상 등 의혹사건과 관련해 글을 발표한 후 “김기삼을 없애라”라는 논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왜 이처럼 위험한 일을 했는가
<양심적인 문제가 아닌가.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조직이나 거대한 기관과의 싸움은 정말 힘들었다. 가끔은 나 자신에게도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를 내고 싶었다. 국민들이 알아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어떤 인물로 보는가
< 그는 한마디로 “악마적 사기꾼”이며, 동시에 “천재적 사기꾼”이다. 대부분 국민들은 그의 실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최근 ‘미국에 DJ비자금이 있다’라는 소문이 많이 나돌고 있다. 그 주위 소위 측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 DJ도 막대한 비자금을 숨겨 놓았겠지만 그의 아들이나 측근들도 함께 자금을 숨겨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거액은 스위스나 홍콩 싱가폴 등지에 은익했을 것이다. 실지로 내 경험상 비자금을 추적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도 함께 망명이 허용됐나.
<미국법상 가장에 대해 망명을 허용하면 가족들도 허용된 것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안다. 현재 아내와 딸(13), 아들(11)이 있다>
▲한국에서의 정권교체가 망명재판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미국 정부가 망명 결정여부를 계속 끌어왔지만 사법부가 더이상 연기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망명을 결정한 것으로 본다. 만약 정권교체를 고려했다면 망명 요청사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나.
미 법원이 망명을 허용할 사안이라고 판단해 결정한 것이지 한국의 정권교체와는 상관없다고 본다>
▲한국에 돌아갈 생각은 없나.
<나는 양심에 따라서 소신껏 행동했고, 국정원 직원으로서 의무감을 갖고 활동했을 뿐이다. 지난 7-8년간 국제 미아가 돼 많은 희생을 겪었다. 한국 정부가 계속 진실을 외면하는 상황에선 한국에 돌아갈 수도, 돌아갈 이유도 없다.
그러나 새 정부에서 내가 제기해온 의혹들에 대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면 이에 대해 밝힐 용의는 있다>
▲ 지금까지 폭로한 사실들을 책으로 펴낼 생각은
< 나의 경험상 정보계통에 있던 사람들의 글을 발행하려는 출판사들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권에 관계없이 정보기관의 내용을 발표하는 것에 대해 별로 탐탐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만약 소신있게 출판을 하려는 출판사가 있다면 적극 고려해 보겠다> |
이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는 김기삼씨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