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사람이요 (어느 유대인 군의관의 감동적인 회심기)
( 1 ) 미국 독립전쟁 때 나는 군의관이 되었는데 (게티스버그) 전투가 있은 후에는 수 백명의 부상병들이 병원에 몰리게 되었고 그 중에 스물 여덟 명은 중상이어서 특별한 수술이 필요했다. 어떤 군인은 팔을 혹은 다리를 잘라야 했고 그 중에는 팔 다리를 모두 자르는 끔찍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중상자도 있었다. 그런 중상자 가운데 한 어린 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챨리 콜슨>이란 사병으로 너무 어렸기 때문에 나팔수로 지원했던 병사였다. 병원 조수와 의무 병들이 절단 수술을 하기 전 마취를 하겠다고 하니 이 소년은 고개를 돌리고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침대 곁에 서서 "여보게, 젊은이. 왜 마취 하기를 거절하는가? 내가 전쟁터에서 자네를 봤을 때 너무 상처가 심해서 후송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커다란 푸른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나를 볼 때 자네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싸움터에 나간 아들을 생각하며 기다릴 걸 생각해 이 병원에 후송한 것일세." 그냥 그곳에서 전사하도록 하기가 안 됐기 때문에 여기 입원시키라 고 명령 했지만 너무 피를 많이 흘려서 마취하지 않고는 도저히 수술을 견디지 못할 것일세 그러니 마취를 하도록 하게,” 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는 내 손을 지긋이 잡으면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군의관님. 저는 10살 때 어느 일요일 오후 교회의 주일 학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때 저는 예수님께 의지하는 걸 배웠고 지금까지 그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삽니다. 그 분은 나의 힘이고 나의 도움이 되시기 때문에 오늘 팔 다리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을 때에도 도와주실 걸 믿습니다.” 그때 <챨리>가 나를 바라보던 그 따뜻한 눈길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때 예수를 증오하고 있었지만 그 소년의 자기 주님께 대한 충성심에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끝까지 그 예수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에 뭔가 뭉클함을 느꼈고 난 최선을 다했다. 군목을 만나기 원하는지 물어 군목을 만나게 했다. 군목은 그를 만나자 천막 집회에서 여러 번 만났던 것을 기억하면서 “챨리, 이렇게 심하게 돼 만나게 되니 마음이 아프군" 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목사님, 저는 괜찮습니다. 군의관님은 제게 마취를 하자고 하셨지만 싫다고 했죠. 만일 주님이 날 부르시면 맑은 정신으로 그 분께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챨리, 자네는 죽지 않네. 그렇지만 주께서 부르신다면…내가 혹 도와줄 건 없는가 ?.”
“목사님 제 베개 밑에 손을 넣으셔서 작은 성경책을 좀 꺼내 주시겠어요? 거기 제 어머니 주소가 있는데 목사님께서 편지를 한 장 써주세요. 제가 집을 떠난 날부터 하루도 성경말씀을 읽지 않거나 기도하지 않고 그냥 지낸 적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내게 머리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군의관님, 저는 준비 되었습니다. 제 팔다리를 절단하셔도 절대로 괴로워하지 않을 테니 염려 마십시요.”
챨리는 베개 머리를 꼭 붙잡은 채 “오 예수님, 내 곁에 계시소서. 나와 함께 하소서.” 가냘프게 읊조리며 약속한 대로 끝까지 아픔을 잘 참았다. 그날 밤 나는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어리고 푸른 눈동자의 사병, 그의 용기와 사랑은 물론 “예수님 내 곁에 계소시서.” 하던 조용한 음성이 자꾸 귀에 울려왔다. 밤 한시가 가까워 왔을 때 난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에 가 보았다. 사실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어제 입원한 중상자 중에 열 여섯 명이 밤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챨리는 어떻게 되었나 ?.” “별일 없습니다. 지금 어린애처럼 잠이 들었습니다.” 당번 의무병의 대답이었다. 그런지 닷새 후 그 소년의 팔 다리는 완전 절단했고 그날 나는 내생전 처음으로 복음을 듣게 되었다. 한 20분쯤 지난 후에 의무병이 내 사무실에 찾아와 그 어린 사병이 나를 보고싶다는 것을 전했다. 난 책상 머리에서 얼굴을 두손에 파묻고 앉아 있었다. "지금 봤다. 다시 볼 거 없다." "그렇지만 군의관님. 죽기 전 꼭 한번 보고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한 두 마디의 말만하고 다시 나올 작정으로 그래서 예수에 관한 애기는 듣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입원실에 들어서니 그는 아주 약해져 있었다.
손을 잡아달라고 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 유대인이시기 땐문에 전 군의관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친구가 유대인이 거든요" "그가 누군데? "
"그분은..바로 제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소개해 드리고 싶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닷새전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군의관님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 말은 내 맘 깊숙이 무거운 바위처럼 들어와 앉았다. 난 도대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어떻게 그 아픈 수술 중에도 그의 구세주와 나의 회심하지 않은 것만 생각하면서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 여보게 곧 회복될 수 있을 걸세" 하는 말 뿐이었다. 그 말을 하고 방을 나왔는데 12분 후에 그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 잠은 주님께서 그 영혼을 다려가는 안식의 잠이었다. 전쟁 통에 병원에서 수 백명이 전사해 나갔지만 내가 무덤까지 따라간 것은 <챨리콜슨>이 죽은 때 한번뿐이었다. 십리 이상되는 곳까지 가서 그가 묻히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그에게 새 국기를 그 위에 덮었다.
( 2 ) 전쟁이 끝날 무렵 난 택사스에 있는 군인 병원을 책임 맡고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뉴욕에서 몇 시간 쉬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랫층 구내 이발관에 들렸다. 이발관에 들어서자 나는 깜짝 놀랐다.
벽 주위에는 16개나 예쁘게 틀어넣은 성경 구절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
내 머리에 빗을 대면서 이발사는 예수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난 이미 10년 전에 전사한 <챨리 콜슨>을 회상하고 있었다. 면도만 하려 했지만 그의 너무도 실감나는 이야기를 그냥 놓치기가 아쉬워 이발까지 하도록 했다. 이발사는 머리를 깍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전했는데 그 사람도 유대인으로서 나처럼 한 때는 제 마음대로 다니며 그리스도를 욕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욱 관심이 끌려 움직이지도 않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발이 다 끝나서 이발사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 기차를 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할 말을 덜 한 것 같았다. 그때는 굉장히 추운 2월이어서 길이 대단히 미끄러운 빙판이라 넘어지기 쉬운 때였다. 역까지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그 이발사는 나를 도와서 역까지 바래다 주었다.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꼭 붙잡아 주었다. 그는 여전히 자기의 <사랑하는 주님>에 관해 얘기하면서 유대인에게나 또 다른 사람에게나 자기의 가장 귀한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이 자기 기쁨이고 일이라는 것을 말했다. 내가 그를 돌아다 보니까 그의 눈에는 눈물 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 눈에는 나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 이렇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돕고 또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이야기해 주는 것은 어쩐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역에 이르러 잠시 악수를 할 때 그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아직도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여보세요선생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게 성함을 가르쳐 주시거나 명함을 한 장 주시겠습니까 ? 제가 적어도 석달 동안만이라도 선생님을 기억하면서 기도하지 않고는 잠을 자지 않기를 약속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부탁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계속 두드리시고 또 마음에 갈등을 더하셔서 그를 선생님의 구세주로 발견하시기 전 까지는 평안이 없기를 원합니다.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메시아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명함을 내주며 그의 호의에 감사했다. 그도 자기 명함을 내주며 “.혹시 우리 주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어려우시겠지만 제게 소식을 전해 주시겠습니까 ?.” “.예 그렇게 하죠.” 난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그 후 48시간이 못되어 이 이발사의 기도가 기적적으로 응답될 줄은 전혀 꿈을 꾸지도 못했다.
날씨가 너무 춥고 바람이 강해서인지 기차엔 사람들이 별로 없고 내가 탄 칸에는 반도 채워있지 않았다. 그런데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10분 내지 15분 동안에 빈 자리를 이리 저리 자꾸 옮겨 앉았다. 승객들은 내가 자꾸 불안한 모습으로 자리를 바꾸는 것을 보고 아주 의아해 했다. 난 아무 생각도 없었고 다만 무엇인지 불안과 초조가 따르는 것을 느낄 따름이었다. 워싱턴에 도착한 뒤 신문을 한 장 샀는데 그 중에서 가장 곧 눈에 띈 것은 그 시에 있는 가장 큰 교회당에서 부흥회를 연다는 광고였다. 그 광고가 눈에 띄자 마자 내 마음 속에서는 “그 집회에 반드시 참석하라.” 는 음성이 들여 오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예배에 참석한 적도 없고 혹 마음에 그런 생각이 나도 곧 묵살해 버리곤 했었다. 아버지는 내가 커지면 유대교 선생 곧 <랍비>가 되게 하시려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사깃군>인 예수를 경배하는 곳에는 절대로 안 가기로 약속했을 뿐 아니라 예수라는 이름이 나오는 책은 만지지도 않기로 마음 먹고 오직 내가 집에서 배운 것만 충실히 지켜 왔다.
( 3 ) 그런데 부흥 집회 소식에는 집회 때마다 특별한 노래 순서가 있다는 것이었다. 난 음악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은근히 관심이 생겼고 그런 핑계를 삼아 바로 그날 밤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예배당에 들어서니까 이미 사람들로 꽉 찼는데 안내하는 사람이 나를 보더니 팔목을 잡고 좌석 맨 앞줄에 앉히는 것이었다. 바로 설교자 앞인데 그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유명한 전도자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찬송에 매혹되다시피 하였는데 설교가 5분도 안되어 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에 관한 애기를 설교자에게 일러 주었는지 그 전도자는 내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외치는 것이 아닌가? 계속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고 가끔 내게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는 것이었다. 좀 언잖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그 설교에 굉장히 큰 관심이 끌리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내 맘 속에는 얼마
전에 만났던 그 사람 즉
<뉴욕>의 어떤 이발사와 나를 보며 찬송하며 세상을 떠난 <챨리>의
이야기가 생각났는데 그 전도자도 그들과 똑 같은 말을 외치고 있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우연이
아닌 것을 느끼면서 난 깊은 감동을 받았고 어느 새 눈물이 두 뺨에 흐르고 있었다. 난 깜짝 놀라서 눈물을 잽싸게 닦으면서
전통적인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난 내가 이런 그리스도인의 교회에 들어와서 눈물을 보이다니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설교가
끝나자 그 전도자는 혹시 그리스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은 사람은 집회 후에 잠시 남아 달라는 광고를 했다. 남 빨리 그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벌떡 일어나 문을 막 나서는데 누가 내 옷을 잡는 것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부인이었다.
"
선생님 용서하세요." 아마 군인이신가 보군요. 제가 설교 시간에 줄곧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지금 죄에 대한 갈등이 생기신것 같으니
그냥 가시지 마십니요. 이곳에 주님을 찾으려고 오신 줄로 믿는데 아직도 그 그리스도를 못 만나셨군요. 이리 들어오세요. 저와 잠시 동안만 애기
하시겠습니까 ? 허락하시면 제가 선생님을 위해 기도해 드리고 싶습니다." "부인 저는 유대인입니다."! 아. 그러세요, 그렇지만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들 뿐 아니라 유대인을 위해서도 죽으셨는걸요! 그 음성과 태도는 큰 힘이 있었다. 난 그 부인을 따라 방금
내가 나왔던 앞 줄로 다시 돌아 들어왔다. " 선생님, 함께 무릎꿇고 기도하시겠습니까?" " 부인, 저는 그런 것을 해 본 적도 없고 또 안할
겁니다." 유대인들은 나팔절과 구속절 등 일년에 두번씩의 명절 때 외에는 기도할 때 무릅을 꿇은 일이 없었고 그리스도인들 같이 바닥에 꿇는 것은
스스로 패배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그 부인은 조용한 음성으로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선생님, 제가 만남 주님은 너무도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사실 무릅꿇지 않는 유대인이라도 능히 회심시킬 수 있답니다. 저는
마음에 그 분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확실히 믿는답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나는 꼿꼿이 서 있는데 그 부인은 혼자 바닥에 무릅을 꿇고 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고 마치 어린 아이가 아빠에게 말하듯이 기도했다. 난 어찌나 겸연쩍은지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그는 마치 인자한 어머니 처럼 내 손을 잡았다. "오늘 밤에 주무시기 전에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으시겠어요?" "부인 저는 내 하나님께 기도하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지 예수의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나의 그리스도이고 선생님의 메시아
입니다."
( 4
)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곰곰 히 생각해 보았다.
“왜 이 그리스도인들은 낯선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 왜 그 죽어가던 사병은 구원받지 못한 내 영혼에 그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었을까 ? 그건 내가 미워하는 그들의 예수의 사랑 때문인 것이 틀림없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사랑하고 경배하는 예수를 좀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난 부리나케 걸으면서 혹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것이 참다운 종교라면 잠이 들기 전에
알아봐야 하겠다고 작정했다. 갑자기 성경구절 몇 개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가
“. 오.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세주이시고 유대인들이 지금도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 시고 또 나 같은 죄인도 회심시킬 수 있다면 나를 구원하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리하면 내 평생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그렇지만 내 기도는 아마 천장까지 밖에 못 올라간 것 같았다. 약 반 시간 이상이나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더니 땀이 비 오듯 했다.
머리에 열이 나서 나는 서늘한 담벽에 이마를 갖다 대었다. 고통은 심했지만 아직 회심한
것은 아니었다. 일어나서 방안을 이리 저리 서성거렸다.
아마 너무 깊이 내 종교에 묻혀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다시는 무릅을 꿀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서성거리기를
그때 내 마음 속에는 한 가닥의 밝은 빛이 새어
들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나의 메시아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너무나도 간절히 찾고
찾으면서 내 마음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이번에는 의심이 전혀 없이 내 맘속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파도처럼 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주관 자요 <임마누엘>이시었다.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자.이시며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3-5) 이 말씀이 마음 속에 빛으로 깨달아지자 나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가
바로 나의 주님이신 것을 믿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 받았고 할례나
무 할례와 상관없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 그리스도를 통해 그를 믿는 나를 구원하신 것이다. ( 5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새로운
행복이 맘에 넘쳤고 아내도 이 기쁜 소식을 들으면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좋아서 서재의 문을
떠 밀다시피 하여 나와서 아내를 찾았다. 난 아내의 목을 껴안고 볼을
비비면서 “.여보 드디어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외쳤다. 아내는 나를 떠밀면서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누굴 만나요?.” 하고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
나의 메시야요 구주시란 말이요.” 내
말을 들은 아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방으로 획 돌아가더니 15분쯤 후에는 옷을 다 챙겨 들고
나와 그 추운 겨울 새벽에 집을 나갔다. 바로 길 건너에 친정이 있어서 아내는 그리로 가버린
것이다. 다음 날 이웃 사람을 통해 쪽지를 전해 왔는데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한 더 이상 나를
남편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듣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고 또 그날 <워싱톤>의
<군의관 총회>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날부터 난 매일 한번 씩 아내에게
편지를 쓰며 그 중에 한 장 이라도 읽기를 기도했으나 54일 동안 한번도 답장도 없었다.
53일
째 되던 날 밤 딸애는 내가 죽는 꿈을 꾸었다. 두려움이 생겨서 다음 아버지 편지는 꼭 한번 읽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그 애는 문간에 서서 우체부만 기다렸다. 기다린 대로 편지를 받자 마자 가슴속에 감추고 이층으로 달려 올라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편지를 뜯어 읽기
시작 했다. 연거퍼 세번이나 읽었다. 그 편지는 딸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그 애가 아랫층에 내려왔을 때 아내는 딸애가 운 것을 곧 눈치챌 수 있었다. 내
편지를 내 보이면서 딸은 꿈 얘기도 하였다.
“엄마,
미안해요, 아빠 편지를 읽었어요. 아빠를 나쁜
분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에요. 어떻게 나쁜 사람이 그렇게 사랑스런 편지를 아내와 자식들에게 쓸수
있겠어요? 엄마. 이 편지를 꼭 읽어 보세요.”
아내는 편지를 받아 가지고 옆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었다. 하루 종일 방에 들어 앉아 있었다. 책상 서랍을 찾아 다른
편지들도 읽었다. 편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갈등은 더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내는 그날 내 편지를 다섯 번이나 읽었다는 것이다. 편지를 읽으면서
아내는 계속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엄마, 왜 우세요 ?.” “가슴이 답답하다.
나 좀 쉬련다.” 그날 밤 나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는 내 아내를 만나주셨고 구원받았다. 아내는 구원 받은 지 1년 9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죽던 목요일 아침, 임종을
앞두고 아내는 이웃들을 불러 침상에 둘러 앉게 하고 함께 조용히 찬송을 불렀다.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것, 나의 소망과 생명이 되신 주…..> 약하고 작았지만 아내는 분명한 음성으로 찬송하며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 6 )
난 독일에 사는 어머니께 편지를 냈다. 그것은 내가 구원받은 직후였고 내 간증을 쓴 편지였다. 어머니도
이 진리를 알고 믿게 되기를 바라면서 열 내명의 자식 중에 장남인 나를 믿어 주기를 바랬다. 사실
구원받은 이후로는 이웃들과 친구들에게 이 기쁨을 나누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마치 시편 기자와
같았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새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시66:16) 어머니가 그리스도께 돌아온다면... 그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난 몇장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가운데 독일 우표가 붙은 것이 눈에 띄었다. 거기엔 오랫 동안
그리던 어머니의 서투른 글씨가 적혀 있었다. “여보! 드디어 어머니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난 큰소리로 외치면서 부리나케 편지를 뜯었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다만
냉혹한 이야기 뿐이었다.
“< 맥스>야,
이제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난 너를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슬퍼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너를 쳐서 눈멀고 귀가 멀어 저주하실 것이다.
넌 아비의 종교를 떠났고 <사기꾼>
예수를 따라 유대교를 버렸다. 어미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 후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머니의 영혼이 안타깝고 그리스도가 더욱 귀할 따름이었다.
구원받은 지 1년 반쯤 지난 어느 날 나는
그리스도인들의 간증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서너 사람이 이야기한 뒤에 어떤 나이 많은 부인이
일어섰다.
[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마 이것이 저의 마지막 간증이며 기도 제목이 될것입니다. 어제 의사의 말에 따르면 제가 너무 많이 나빠져서 아마 이 땅에서 며칠 더 지내지 못할 것 같다고
합니다. 곧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 더 기쁩니다. 그런데 제 아들은
이 나라의 군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군사였답니다. 지난 독립 전쟁 때
중상하여 병원에서 유대인 군의관에게 수술을 받았으나 닷새 후 죽었는데 군목이 내 아들의 편지와 함께 성경을 보냈답니다. 그런데 그 편지 안에는 그 유대인 군의관이 곧 구원받게 되도록 이 어미에게 간절한 기도제목을
썼답니다. 혹 내가 세상을 떠나도 여러분들이 그 이름도 모르는 어떤 유대교 군의관이 꼭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난 이 간증을 들었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더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난 벌떡 일어나 그 부인 앞으로 걸어가 부인의 손을 잡았다. “여보세요 사랑하는 자매님, 그 아들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내가 그 사람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고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답니다.” 회중 가운데는 감격과 찬송과 감사가 넘치고 나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서 그저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한 어린 영혼의 간절한 기도가 시작이 되어 나는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으로 결국 십자가에 온 것이다. 이제 머지 않아 나도 천국에서 그 [챨리]를 만날 것을 기대하며 내 평생 이 간증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전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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