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urice Ravel
라벨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흔히 오케스트레이션의 마술사라고들 하지요.
그의 관현악은 교묘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프랑스적인 전통을 이어받은 탓인지도 모릅니다.
세련된 것을 좋아하고 -이것은 음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다양한 요소를 갖추되 정돈된 모양의 선율을 쓰는 것,
그것이 라벨이 이어받은 프랑스적인 전통의 하나였겠죠 .
물론 라벨이 표현한 음악적 세계는 꿈인 듯 현실인 듯
상상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습니다만, 잘 들어보면 굉장히
용의 주도한 면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일생을 통해 많은 작품들을 세련된 관현악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그 중에는 다른 작곡가의 곡을 편곡한 것도 있고,
자신의 곡을 편곡한 것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역시 그러한 곡입니다.
원래는 1911년에 피아노 곡으로 작곡되었지만
이듬해에 발레를 위한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었습니다.
발레 음악에서는 음악의 내용적 측면,
일종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춤과 이야기의 진행 그리고 음악이 서로 어우러지니까요.
이 곡을 바탕으로 한 발레에는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아델라이드와 꽃말" 그럼 어떤 내용의 음악인지 살펴볼까요.
감상적이며
우아한 왈츠
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아델라이드와 꽃말 - 발레의 줄거리
배경은 1825년 무렵, 파리의 고급 기녀 아델라이드의 집입니다.
무도회가 열리고 주인공과 아델라이드를 연모하는 미남 청년 로렌다가
초록빛 살롱에서 꽃말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는 내용이지요.
여기에 로렌다와 3각관계를 연출하는 부유한 공작이 나와서
이야기를 한층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끕니다.
제 1곡 Moderato , G장조 3/4박자.
아델라이드 집에서의 무도회. 많은 남녀가 즐겁게 춤을 줍니다.
그녀는 방을 돌면서 손님을 환대합니다. 곡은 화려한 기분이 나는 합주.
처음 4마디 다음에 나오는 목관과 바이올린에 의한 상승적 악구는
즐겁고 유려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곡은 제1, 제 2왈츠로 전개됩니다.
제 2곡 아세 랑 Assez lent, g단조 3/4박자.
2곡: Molto Adagio
"아름답고 우아하며 애수를 띤 청년 로렌다의 등장.
" 아델라이드와 꽃송이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그가 바치는 미나리아재비꽃(혹은 봉숭아)은 매력에 찬
그녀에 대한 찬미를 뜻합니다. 이 곡은 제 1곡과는 대조적인 선율인데,
스페인의 옛 춤곡인 사라방드에 가까운 우아함과 우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세 개의 선율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오보에와 파곳으로,
다음에는 플루우트 솔로로. 마지막에는 처음의 선율
-오보에와 파곳에 의한-을 삽입하고
그 위에 떠오르는 플루우트 솔로의 가락을 들려줍니다.
제 3곡 Moderato , G장조 세 도막 형식 3/4박자.
3곡: Moderato
아델라이드가 준 국화가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닌 것을 알고
로렌다는 생각을 돌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아델라이드는 역시... 도도합니다.
이 곡은 경쾌하면서 조금 차디찬 빛깔을 하고 있습니다.
스코어 속에 나타난 음의 빛깔과 다채로움은
관현악의 마술사 라벨다운 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제 4곡 아세 아니메 Assez Anime , C장조 3/4박자.
4곡: Molto Animato
"아세 아니메"란 더욱 역동적으로, 라는 뜻입니다.
앞서 나온 곡의 끝을 맺는 바이올린의 테마가 이 곡의 테마가 됩니다.
이 선율이 먼저 플루우트의 여린 선율로, 그 다음에는 클라리넷,
다시 플루우트와 클라리넷을 돕니다.
약간 집요한 성격의 이 주제는 소박함과 더불어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요.
이 장면은 이야기가 잘 되어가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
돈 많은 공작이 나타나 로렌다가 당황하는 부분입니다.
(불쌍한 로렌다! ) 중후함은 공작의 분위기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네요.
이 중후한 선율은 차차 pp 가 되고 다음 곡 주제의
첫 한 박자를 클라리넷에 남기면서 끝이 납니다.
제 5곡 프레스끄 랑 Presque lent, E장조 3/4박자.
5곡: Piu Lento
"거의 렌토와 같은 빠르기로."
공작은 아델라이드에게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는
상자와 해바라기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여기서 해바라기는 헛된 부富를 뜻한대요.>
앞서 남은 한 음을 이어받은 클라리넷이 테마를 연주하면
잉글리시 호른이 이어 받으면서 곡이 전개됩니다.
현과 목관이 아라베스크를 수놓고 다양한 감정을 그려냅니다.
중간에 바이올린이 등장하는 부분을 빼고는 약간 쓸쓸함이 느껴지는 곡이지요.
제 6곡 아세 비프 Assez vif, C장조 3/2박자.
6곡: Molto Vivace
로렌다는 계속 아델라이드를 따라갑니다.
그녀는 그때그때 적당히 그를 대하면서 거절하지만
로렌다는 꿋꿋이 따라다닙니다.
이 곡에서는 박자가 3/2, 6/4 등으로 변화를 하는데요,
빠른 진행과 더불어 줄거리의 내용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박자가 변화하면서 주제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대조와 융합을 거듭합니다.
전체 곡 중에서 가장 눈부신 느낌을 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제 7곡 모엥 비프 Moins vif, A장조 3/4박자.
7곡: Vivace
공작은 아델라이드에게 춤을 추자고 신청합니다만,
아델라이드는 받아들이지 않고 로렌다를 상대합니다.
(불쌍한 공작! ) 풀이 죽어 한 구석에 있던 로렌다,
아델라이드는 그에게 춤을 권합니다.
로렌다는 사양하다가 끝내 함께 춤을 춥니다.
음악은 앞서 나온 곡의 마지막에 목관으로 취주되는 가락을 주제로 합니다.
약간 궁금증을 주는 듯한 서주가 끝나면 경쾌한 왈츠가 시작됩니다.
왈츠의 주제는 제 2바이올린에서 제 1 바이올린으로 옮겨가고,
점점 전개부는 화려해집니다.
이 곡은 전 곡 중에서 가장 다채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를 제외하고는 이 곡이 가장 긴 축에 속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곡이 그리고 있는 정취 역시 명랑함에 다름 아니지요.
에필로그 Epilogue 랑 lent , G장조 3/4박자.
8곡: Lento
파티는 끝이 나고... 피곤해진 아델라이드.
혼자 창에 기대어 지친 얼굴로 라일락 향기(쾌락의 상징이래요! )를 맡습니다.
로렌다가 발코니에 나타나 실망의 상징인 측백나무의 꽃과 금잔화를 던지고,
권총으로 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고 가슴에 꽂고 있던 장미 한 송이를
살며시 떨어뜨리면서 그의 가슴에 몸을 던집니다.
이 곡은 잉글리시 호른이 연주하는 테마로 여리고 슬프게 시작됩니다.
곡이 고조하려다가는 가라앉으면서 전개하는 가운데
제 1곡 이후의 가락들이 슬쩍 나타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클라리넷의 가락이 피로한 기분으로 낮게 연주됩니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주제는 하프와 현의 음으로 고요히 사라지면서
음악과 함께 발레도 막을 내립니다.
이 곡은 1912년 4월 22일, 파리 샤트레 극장의 트로바 무도회에서 초연 되었습니다.
연주 시간은 약 17분 정도입니다. 이 곡을 피아노 곡으로 들어보면
다소 강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는데요,
라벨은 이 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하면서 부드러운 분위기와 색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맛깔스러운 관현악적 요소, 바로 그것이 라벨다운 면이 아닐까 생각이 되는군요.
그는 개인적으로 이 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슈베르트의 예를 따라
왈츠의 연쇄를 작곡하려고 한 나의 의도가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곡은 원래 작곡될 때부터 순수하고 명석한 요소로
일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건실한 화성, 입체적인 묘사.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순한 면도 있습니다만
사실 이러한 단순성은 라벨이 오랫동안의 추고를 거듭하여 얻어낸
생략과 긴축의 미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 곡은 17분 정도니까 관현악이나 발레로서 그리 큰 작품은 못됩니다만,
악기군 배분의 복잡함이나 다양성 그리고 풍부한 느낌으로 볼 때
독특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이 곡에 대해 그는 "앙리 드 레니에"의 시집을 인용해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헛된 일을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즐겁고 또한 언제나 새로운 기쁨이다."
이 말로부터 우리는 그의 의도를 하나 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 곡을 쓰는 것은 하나의 유희와도 같았던 것이지요.
이 곡은 그의 다른 왈츠인 '라 발스 La Valse' 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오히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Pavane pour une infante d funte' 와도
흡사한 루이 왕조 풍의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들으시면서 프랑스 풍의 세련됨과 왈츠 음악의 흥겨움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글 : jaeky705 이재경
라벨(Maurice Ravel, *1875 시부르 †1937 빠리)
드뷔시가 죽은 후에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음악가로 평가되는 작곡가.
빠리음악원에서 베리오로부터 피아노를, 제달즈로부터 대위법을,
포레로부터 작곡을 공부. 라벨은 주로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작품활동에만 전념.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거나 성악가들의 반주를 할 때만이 피아니스트로 활동.
하지만 암스텔담, 베니스, 스웨덴, 영국, 스코트랜드, 미국(1928)에서는
자신의 음악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함.
1929년 옥스포드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음.
1933년부터 몸에 마비증상이 나타나 작곡활동이 불가능해짐.
라벨은 이미 20세에 나중에「스페인 라프소디」의 제3악장으로
쓰이게 되는 「하바네라」를 작곡한다.
전통적 음악기법에 대한 그의 긍정적 수용현상은 그가
제달즈와 포레로부터 수업을 받던 학창시절부터 이미 잘 나타난다.
라벨의 초기작품활동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쇼팽, 리스트, 샤브리에,
포레, 림스키 코르사코프 등이다.
1890년경에 라벨은 사티의 화성학적 실험들로부터 한동안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드뷔시의 작품 「프렐류드」도 그의 작품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 5인조그룹 중에서는 특히 보로딘이 라벨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드뷔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라벨의 상당 작품들에서는
프랑스 로코코의 목가풍이 반영되어 있다(예, 라모에 근접된 양식).
쿠프랭과 라모 이상으로 라벨의 흥미를 끈 것은 스카를랏티의 기교적 측면이었다.
이것은 이미 리스트에 가까운 그의 작품
「물의 희롱」(Jeux d'eau)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리스트의 역동적인 기교주의와는 다르게
라벨의 기교적 작품들은 세밀한 음향구성에도 강하게 집착하는 면을 보여준다.
라벨의 음악에는 유희적인 놀이와 고풍스러운 멋, 감각적인 것과 지적인 것,
자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등이 잘 조화되어 있다.
라벨의 멜로디는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한 선을 가진다.
화성에서는 높은 3도층들이 즐겨 사용된 반면
증3화음이나 온음음계 등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폴리포니적 작곡경향은 현악사중주나 피아노삼중주의
파싸칼리아 등에서 자주 찾을 수 있다. 복조성도 가끔씩 발견된다.
라벨의 작품에서는 또한 오스티나토 기법 등이 곡의 뼈대로 자주 사용된다.
예로써 G장조 피아노 콘체르토의 중간악장은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오스티나토 기법을 연상시킨다.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당시에 대성공을 거두었던 「볼레로」역시
멜로디와 기본음향은 변하지 않으면서 음색만이 바뀌는 특징을 보인다.
이곳에서는 한개의 오스티나토 리듬과 두개의 오스티나토 선율이 많은 악기들이
점차적으로 참여하면서 도취적인 ff로 상승한다. 라벨은 이 곡에서
단순성을 이용하여 의식적(儀式的) 효과를 거둔다.
즉, 모티브작업도 없고 섬세한 형식도 없으며,
전조조차 하지 않다가 끝에 가서야 E장조로 전조한다.
라벨은 오랫동안 심도있게 숙고를 하는 반면 빠르게
악보를 써내려가는 작곡방법을 가졌다.
작품을 위해 쓰여진 스케치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라벨의 주요 작품들: 물의 희롱(1901), 현악사중주 F장조(1902-03),
소나티네(1903-05), 거울(1904-05), 밤의 가스파르(1908),
스페인 라프소디(1907-08), 스페인의 시간(1911),
감상적이고 고상한 왈츠(1911), 다프니스와 클로에(발레곡, 1909-12),
피아노삼중주(1914), 쿠프랭의 무덤(1917), 왈츠(1920),
치가느(1924), 어린이와 요술(오페라, 1925),
피아노콘체르토 G장조(1929-30), 볼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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