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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전한다 고로 존재한다
글: 김헌식 (, 미래콘텐츠 문화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
한 마을에서 랍비들은 악한 욕동(drive)을 잡아 가두었다. 그러자 다음 날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하러 가지 않았다. 마을에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고 닭장에는 달걀도 나오지 않았다. <탈무드>에 실린 한 이야기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욕망을 버린 채 자적하는 월든 호수에서의 삶을 세상에 이상적인 삶의 표본으로 전파시켰다. 『러쉬』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정말 소로는 행복 했을까 묻는다. 그 호수의 삶을 지루하고 맥 빠진 삶이라고 했다. 욕망을 놓으라고 한 부처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부처는 자아를 찾기 위해 아내와 자식을 버린 사람이기에 본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부처의 후예들이 권하는, 명상 30분씩 하기로 행복 해지는 것은 한계가 크다고 지적한다.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원시의 삶은 행복해 보이지만 평균 수명은 짧았고, 질병과 자연재해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또한 현대에 누리는 문명의 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골의 삶을 동경하지만 현대인들은 도시의 삶이 주는 풍요로움을 시골에서 발견할 수 없으며, 전원 별장에 항상 붙어 있는 사람도 없다.
도전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행복하려면 여유와 휴식이 필요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을 피하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이나 관광, 그리고 치유에 관한 산업이 부각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스를 피한다고 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어떤 것에 도전하고 시도하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꼴찌에게 상을 주는 것은 전체를 망치는 길이라는 주장까지 한다.
성장과 경쟁을 멈추고 돈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많이 부여하면 행복한 세상이 되지도 않는다고도 말한다. 복지국가에서 우울증, 마약복용이나 자살이 많은 것은 스스로의 도전과 성취를 통해 도파민이나 엔돌핀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스트레스와 경쟁충동이 자연스러운 행복감을 준다고 본다. 이는 자녀에게도 중요하다. 예컨대, 존스홉킨스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임신부가 낳은 아이가 발육과 인지 검사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돈에 대해서도 단호하다. 돈이 욕망이며 현대사회의 병폐이고 이를 위한 경쟁과 갈등이 말세를 낳는다는 견해에 대해 동의한다. 돈은 분명 스트레스를 준다. 그렇다고 돈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돈은 경쟁과 도전의 성취 결과 중 하나이며 경쟁과 도전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경쟁과 도전의 스트레스를 딛고 큰 기회와 성공을 이루는 사람이 경쟁과 도전을 기피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모든 것을 버리고 야자수 그늘에서 늘어져 있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삶에는 심지어 친구도 없고 더 이상의 큰 즐거움도 생기지 않는다. 할 이야기도 맨날 야자수 아래 늘어진 이야기뿐이다. 무엇인가 경험하고 같이 무엇인가를 할수록 우정도 깊어진다.
여러 사람들과 끊임없이 섞여 지내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성취를 이루어냈으며 이는 조직이나 사회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혼자만의 자족감에 젖어 있는 이들일수록 그 안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타인에게 무례하거나 잔인했다. 고대부족들은 타부족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몰살 시킨 것으로 유적 발굴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은 타인과의 경쟁과 협력에 대한 의식이 없으며 무조건 없애야 이득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현대의 경쟁은 상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이다. 이방인과의 경쟁은 생존 경쟁력을 증가시켰다. <죽음학회보>의 통계연구 논문에 따르면 별명을 얻은 야구선수는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오래 살았다. 영국의 농장주들이 젖소에게 별명을 붙였더니 우유를 평균 6% 더 생산했다. 별명을 얻는 것은 다른 이들보다 경쟁을 통해 주목을 받기에 가능하다. 운동선수가 안 좋은 별명을 얻어도 오래 살았다.
도전의 경쟁, 그 가치와 생산성
토드 부크홀츠는 『러쉬』를 통해 ‘우리는 경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전에 ‘우리는 움직인다, 고로 존재한다’ 즉,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말로 압축한다. 제니스 키콜트와 도날드 글레이저의 면역 연구에 따르면 은퇴를 하고 집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면서 배우자의 잔소리나 듣는 이들은 질병에 더 잘 걸렸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자기 통제권이 없는 스트레스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이나 도전의 움직임은 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만들어 주는 스트레스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인간에게 움직임은 노동과 일로 가치를 발현한다. 일하는 사람은 장수하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단명했다. 60대 남성의 인지능력을 비교 했더니 미국과 덴마크 사람들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사람보다 두 배 높았다. 그들은 80~90% 덜 일하기 때문이었다.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많아지자 일없는 사람들이 한 것은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정권이었다. 이는 도전과 경쟁이라는 말로 확대될 수 있다. 그는 에덴주의자를 집중적으로 성토한다. 에덴주의자들은 성경의 에덴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만들면서 그러한 상태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며, 스트레스, 경쟁, 위험, 불안 등이 없는 상태가 행복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도파민이나 엔돌핀은 돌지 않는다. 도파민은 1등을 했다고 해서 나오는 흥분 호르몬이 아니다.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을 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파민이 나오면 성취 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토드 부크홀츠는 우리는 행복을 위해 투쟁해야 하고 멍들고 피투성이가 되어도 그 싸움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며 그렇게 더 나은 삶을 살았던 투쟁의 조상의 자손이라고 한다. 그 경쟁 충동이 기아와 역병, 외적의 침입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그 경쟁이 더 많은 씨앗을 뿌리고 의학품을 만들어 왔으며 편리한 도구와 기계들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믿는 상상력은 시차 선호(time preference)를 낳아 도전하고 일을 하게 만든다.
이는 국가경제에도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본다. 한 개인의 생존력을 국가와 사회에 확장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은 한 나라의 경제력은 부존자원에 따른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홍콩은 바위투성이이고 네덜란드와 일본은 가라앉고 있다. 이스라엘 땅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파슬리가 자라기도 힘들다. 미국은 멕시코보다 농경자원도 적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부족함을 채우려는 의지가 생존력을 좌우하고 상황을 이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펑펑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경제 그대로다. 그 이유는 부가가치가 높은 방대한 자원이 발견되면 부를 창출하려는 도전의지가 꺾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자원을 장악하려는 태만한 세력만 득세한다. 군부나 독재정권이 이러한 나라들에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한 정권의 공통점은 도전과 경쟁을 철저하게 억누른다.
지난 60년 동안 세계은행의 해외 원조는 거의 다 실패했다. 도전과 경쟁의지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자원이 많은 나라는 해외 원조에 의존하는 병폐까지 낳게 되었다. 경제학자 에릭 라이너트도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에서 제3세계 나라들이 여전히 가난하고 오히려 수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복지 식민지에 빠진 원인을 탐색한다. 그 원인은 단순히 지원에만 의존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순 지원이 아니라 그들이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익중심의 시장경제에서만이 경쟁이 가치를 발휘하는 것만은 아니다. 경쟁은 자선과 기부에도 불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얼마나 기금을 마련하고 많은 예산을 쓰는가를 두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굶주린 사람들을 정작 돌보지 않는 무능한 자선단체들이 퇴출되기 시작했다. 가장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라는 미국에는 140만 개의 자선단체가 있다. 곡간 속에 인심난다는 것이다.
도전과 성취는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
저자는 심지어 경쟁을 불행의 원인으로 보는 심리학자나 신경경제학자들을 나쁜 학자들이라고 한다. 다만, 어떤 경쟁이냐 즉, 공정한 경쟁인가, 소모적인 경쟁인가, 파탄을 위한 죽음의 레이스인가를 따져야 한다. 현대인에게는 자신들을 위해 일을 하고 경쟁하고 도전해야 한다. 남을 위해 일을 하고 경쟁하고 도전하는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고 에덴주의자들이 비판하는 타락한 삶이다. 착하고 선하며 비경쟁적인 일도 의무에 따라 억지로 하게 되면 오히려 악영향을 남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무엇인가 성취를 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그것은 각자 개인마다 다르다고 했다.
간병인 대신 직접 물을 주며 화초 키우기에 나선 노인들은 오래 살았지만, 간병인이 대신 물을 준 병동의 노인들은 세상을 떠났다. 자신 스스로 직접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는 질병도 이기는 것이다. 최상위 소득자들은 하위 20%보다 두 배 이상 일했고 이는 그들이 스스로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자기제어와 통제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주당 44시간 일하는 사람 가운데 자기 사업자 비율이 약 30% 많았고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과 비교할 때 63%나 많았다. 그럴 때 자신의 일에 몰입을 하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조직 경영에서 각자의 통제감을 일으키는 경쟁은 전체의 수익을 높인다. 1980~90년대 연 30%의 전설적인 투자 수익율을 낳았던 줄리언 로버트슨은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경기자가 되는 심리를 이용해 구성원들의 높은 생산성을 이끌어냈다.
이는 우리나라 대중문화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한도전> <1박2일> <남자의 자격>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과제와 미션을 부여받고 그것에 도전하고 성취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여기서 출연자들은 성취를 통해 그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도전 과정에서 스트레스와 부담감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났을 때 돌아오는 결과를 기대하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수다>에서는 기존 가수들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미션을 수여받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가한다. 그들 간의 경쟁은 더 노골적이다. 가수의 진보가 이루어지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노래들이 창출된다. 예전에 잊혀졌던 노래들이 최신 유행곡이 되어 음원 시장과 공연장을 지배한다. 출연 가수들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들 스스로가 높은 가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러쉬』가 말하는 도전과 경쟁의 가치는 젊은 세대의 오늘에도 시사점을 남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몇 푼의 알량한 장학금, 반값 등록금이 아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희망, 그리고 가능성이다. 88만 원을 벗어나는 기회와 도전만 있다면, 그리고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돌아오는 선순환이 있다면, 새로운 세상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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