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가 인기를 얻거나 비판을 받는 것은 반(反)지성주의 때문이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의 ‘닥치고’는 가카(각하·대통령)를 향한 말이 아니다. 그 ‘닥치고’는 프랑스의 사르트르처럼 행동하는 지성인을 흉내 내는 조국을 향한 것이고 그의 강남좌파적 기획인 ‘진보집권플랜’을 향한 것이다.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에서 조국의 ‘진보집권플랜’의 결점을 “진보적 엘리트 특유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공기처럼 흐르는,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이라고 표현했다. ‘진보집권플랜’의 서문을 읽은 그의 소감인즉 ‘재수 없을 수 있겠다’였다. 그래서 그가 쓰게 된 것이 ‘진보집권플랜 B’로서의 ‘닥치고 정치’다.
반지성과 마초주의는 동전의 양면
김어준의 반지성은 무식과는 다르다.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봤다는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의 소감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나 게르니카는 프라도 미술관이 아니라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에 있다. 정말 그가 게르니카를 직접 본 것일까.
그의 반지성은 A급이 되기를 원했으나 A급이 되지 못한 B급의 콤플렉스 표현이다. 물론 A급이 보는 세상만이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A급이 보지 못하는 B급들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닥치고 정치’는 읽을 만하다. 그러나 예민한 감각도 거짓 위에서는 의미 없는 것이다.
‘눈 찢어진 사람이 BBK 사건의 에리카 김과 불륜관계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재산이 10조원이 넘는다’ ‘나경원은 1억 원짜리 피부과에서 피부 관리를 받았다’ 등 나꼼수가 한 희대의 특종(?)은 하나씩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진중권은 나꼼수를 향해 너절리즘(너절한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날렸다. 입에 걸레를 문 진보이긴 하지만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진중권의 지성과 나꼼수의 반지성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깨에 잔뜩 힘주고 서 있는 4명의 나꼼수 진행자의 사진을 보라.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마초의 이미지다. 그들은 어디로 보나 반듯한 조국과도 다르고 히스테리컬한 현학적 핏대 진중권과도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 ‘딴지일보’의 김어준을 벌써 잊은 모양인데 ‘딴지일보’는 포르노적 상상력과 가학적 정치풍자의 결합이었다.
마초가 사실에 얽매이는 것은 쫀쫀한 것이다. 이것저것 재가면서 말하는 것도 그렇다. 게르니카가 프라도에 있건 레이나소피아에 있건 뭐가 중요해. 나경원이 피부과에서 실제 얼마를 냈건 1억 원까지 받는다잖아, 그냥 써. 비키니가 남성에겐 위로인 걸 어떡해. 마초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말을 빌리면 ‘쫄지 않는 애티튜드(atttitude)’다. 지성적 애티튜드는 애당초 마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지적 양아치 나꼼수를 다루는 법
나꼼수 기획자 탁현민이 얼마 전 시위에서 선보인 삼보일퍽(三步壹fuck)도 마초적 감성의 과격한 표현이다. 삼보일퍽은 삼보 후에 한 번 절하는 대신 삼보 후에 팔뚝을 치켜들고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것이다. 그 무례함은 서양으로 말하면 누군가를 향해 결투를 신청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만 상대편이 결투에 나서지 않을 것을 뻔히 아는 비겁한 결투 신청이다.
기실 그들은 겁이 많은 지적 양아치들이다. ‘쫄지 마 씨바’를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것은 실은 쫄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나경원 1억원 피부과 이용설’ 조사가 끝나가자 수감 중인 정봉주 다음은 주진우 차례라고 설레발을 치고 다니는 것도 쫄고 있기 때문이다. 양아치들은 쫄게 해줘야 정신을 차린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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