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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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
*이 글은 建國 대통령 李承晩이 1920년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발행했던 <태평양 잡지>에 게재한 논문이다. 1917년 레닌의 공산혁명 이후 全세계 정치인 지식인들이 '러시아의 유토피아'를 찬양할 당시,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공산당의 當不當'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자유평등주의자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무조건 반대한 것이 아니고 '합당한 것과 부당한 것' '옳고 그른것'을 간결하면서 정확하게 지적한다. 공산정권 등장 6년째에 발표한 이 논문으로 이승만은 서방진영 최초로 공산주의 모순을 분석, 그 종말을 예고하는 비판자가 되었다. 당시 언어생활의 어법과 문체등 사료적 가치를 살리기 위해 原文 그대로 전재한다.(뉴데일리 편집자) 원문: <(5) 정부도 없고 군사도 없으며 국가 사상도 다 없이한다 함이라. 이에 대하야는 공산당 속에서도 이론이 많을 뿐더러 지금 공산당을 주장한다는 아라사(러시아)로만 보아도 정부와 인도자와 군사가 없이는 부지할 수 없는 사정을 자기들도 다 아는 바라 더 설명을 요구치 않거니와, 설령 세상이 다 공산당이 되며, 동서양 각국이 다 국가를 없이하야 세계적 백성을 이루며, 군사를 없이하고 총과 창을 녹여서 호미와 보습을 만들지라도, 우리 한인은 일심 단결로 국가를 먼저 회복하야 세계에 당당한 자유국을 만들어 놓고, 군사를 길러서 우리 적국의 군함이 부산 항구에 그림자도 보이지 못하게 만든 후에야, 국가주의를 없이할 문제라도 생각하지, 그 전에는 설령 국가주의를 버려서 우리 2천만이 모두 다 밀리어네어(백만장자)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치 아니할지라. 우리 한족에게 제일 급하고 제일 긴하고 제일 큰 것은 광복사업이라. 공산주의가 이 일을 도울 수 있으면 우리는 다 공산당 되기를 지체치 않으려니와, 만일 이 일이 방해될 것 같으면 우리는 결코 찬성할 수 없노라.> 해설: 공산주의는 계급을 국가보다 우선시한다. 계급을 대표하는 黨이 국가 위에 군림한다. 공산주의의 이 국제주의를 이승만은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다. 나라를 잃은 민족이 나라를 되찾아 자주독립국을 만들려 하는데 그런 국가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민족의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민족반역질이란 지적이다. 국가주의를 버리면 백만장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독립, 즉 광복사업에 도움이 되면 공산당이라도 좋지만 방해가 되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공산주의자들의 계급우선은 국가를 부정하고 애국심을 말살하며 반드시 事大主義와 민족반역으로 흐른다는 것을 간파한 名言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계급주의가 아니라 애국주의 위에 꽂은 분이다. ,,,,,,,,,,,,,,,,,,,,,,,,,,,,,,,,,,,,,,,,,,,,,,,,,,,,,,,, 原文: <(3) 지식계급을 없이하자 함이니, 모든 인민의 보통 상식 정도를 높여서 지금에 학식으로 양반 노릇하는 사람들과 비등하게 되자 하는 것은 가하거니와, 지식계급을 없이하자 함은 불가능하며, (4) 종교단체를 혁파하자 함이라. 자고로 종교단체가 공고히 조직되어 그 안에 인류계급도 있고, 토지 소유권도 많으며, 이 속에서 인민압제의 학대를 많이 하였나니, 모든 구교 숭배하던 나라에서는 이 폐해를 다 알지라. 그러나 지금 새 교회의 제도는 이런 폐단도 없고 겸하야 평등 자유의 사상이 본래 열교[裂敎:改新敎] 확장되는 중에서 발전된 것이라. 교회 조직을 없이하는 날은 인류 덕의상 손해가 다대할 것이며,> 해설: 지식계급을 없애면 無識者가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 일반 국민들을 교육하여 지배층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야지 지식계급을 없애서 계급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생각은 下策이다. 천주교가 권력을 잡고 사람들을 착취한 과거에 너무 얽매어서 종교를 없애자는 주장도 短見이다. 改新敎는 평등과 자유 사상을 발전시킨다. 그런 교회를 없애는 것은 인류의 도덕 발전에 큰 손해를 끼친다. ,,,,,,,,,,,,,,,,,,,,,,,,,,,,,,,,,,,,,,,,,,,,,,,,,,,,,,,,,,,,,,,, 原文: <(2) 자본가(資本家)를 없이하자 함이라. 모든 부자의 돈을 합하여다가 공동히 나누어 가지고 살게 하면 부자의 양반 노릇하는 폐단은 막히려니와, 재정가(財政家)들의 경쟁이 없어지면 상업과 공업이 발달되기 어려우니, 사람의 지혜가 막히고 모든 기기미묘한 기계와 연장이 다 스스로 폐기되어, 지금에 利用 厚生하는 모든 물건이 다 진보되지 못하며, 물질적 開明이 중지될지라. 자본을 철폐하기는 어려우리니, 새 법률로 제정하야 노동과 평등 세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나을 터이며,> 해설: 공산당식으로 자본가를 없애면 경쟁이 사라져 기업이 발달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商工業 발전의 길이 막히고, 사람의 지혜도 써 먹을 데가 없어지며, 기계와 도구와 상품을 제대로 만들 수 없어 물질적 풍요를 이룰 수가 없다. 자본가를 없애지 말고 노동세력에 자본가와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게 더 낫다. ,,,,,,,,,,,,,,,,,,,,,,,,,,,,,,,,,,,,,,,,,,,,,,,,,,,,,,,,,,, 原文: <(1)재산을 나누어 가지자 함이라. 모든 사람의 재산을, 토지 건축 등 모든 부동산까지 다 합하여다가 평균히 나누어 차지하게 하자 함이니, 이것을 가난한 사람은 물론 환영하겠지마는, 토지를 평균히 나누어 맡긴 후에 게으른 사람들이 농사를 아니하든지 일을 아니하든지 하야 토지를 다 버리게 되면 어찌 하겠느뇨. 부지런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야 게으른 가난장이를 먹이어야 될 것이오, 이 가난장이는 차차 수효가 늘어서 장차는 저마다 일 아니하고 얻어먹으려는 자가 國中에 가득 할 것이며,> 해설: 李承晩은 공산주의가 私有재산을 부정하고 재산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정책이 결국은 가난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경쟁과 차등이 없어지면 인간은 게을러진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이들을 부양해야 한다. 무위도식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난다. 나라는 가난해지고 생산물이 줄어들어 나눠 먹을 것도 없게 된다. 오늘의 북한을 90년 전에 예언한 글이다. 그것도 아주 쉬운 말로써. 이게 天才의 특징이다. 李 박사는 인간의 본성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로 건국한 다음 국민들에게 자율과 경쟁과 책임의식을 가르치려 하였다. ,,,,,,,,,,,,,,,,,,,,,,,,,,,,,,,,,,,,,,,,,,,,,,,,,,,,,,,,,,,,,,,,, 역사를 바꾼 李承晩의 연설-"공산당, 당신들은 賣國奴요 파괴세력" 李承晩은 先制공격으로 역사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가 2010년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연평도 도발 직후 평양의 금수산 기념궁전을 폭격하도록 명령하여 김일성의 屍身을 날려버리고 김정일-김정은을 昏絶(혼절) 시켰을 것이다. 李承晩의 공산주의자 배격 연설은 한반도 정세를 賣國者(매국자)와 愛國者, 파괴자와 건설자, 敵과 동지, 善과 惡으로 가른 역사의 分水嶺(분수령)이었다. 오늘의 한반도 정세는 그 연설의 결과물이다. 趙甲濟 孫世一씨가 月刊朝鮮에 연재중인 ‘李承晩과 金九 평전’ 82회분(월간조선 2011년 1월호)을 읽다가 통쾌한 대목을 발견하였다. 1945년 12월19일 저녁 7시30분 李承晩은 서울중앙방송국(KBS)를 통하여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였다. 그때 李 박사는 모든 정당과 政派(정파)를 통합한 汎國民 조직으로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李 박사는 이 일을 방해하는, 朴憲永이 이끄는 공산당을 지목, 결별 선언을 한 것이다. 당시 공산당은 대중 조직이 가장 강하였다. 30여년 만에 귀국한 李承晩은 카리스마는 있었으나 直系(직계) 조직은 없었다. 하지 사령관의 美軍政 당국도 공산당을 建國 과정에 참여시키려고 하였다. 트루먼 행정부도 아직은 對蘇(대소) 봉쇄정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이런 가운데 李承晩은 이 역사적 연설을 통하여 공산당 극렬분자들을 반역자요 파괴자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반역세력이고 파괴자들이므로 국가 건설과정에서 함께 갈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연설은 建國 지도자에 의하여 이뤄진, 2차 대전 이후 공산당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정면 대결 선언일 것이다. “(공산당 극렬분자들은) 제 나라를 파괴시키고 他國의 권리범위 내에 두어서 독립권을 영영 말살시키기로 爲主(위주)하는 자” “양의 무리에 이리가 섞여서 공산명목을 빙자하고 國權을 없이하야 나라와 동족을 팔아 私利와 영광을 위하여 부언낭설로 인민을 속이며, 徒黨(도당)을 지어 동족을 위협하며 軍器(군기)를 사용하야 재산을 약탈하며, 소위 공화국이라는 名詞(명사)를 조작하야 국민 전체의 분열상태를 世人에게 선전하기에 이르렀더니, 요즈음은 민중이 차차 깨어나서 공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매 奸計(간계)를 써서 각처에 선전하기를 저희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민주주의자라 하야 민심을 현혹시키나니, 이 극렬분자들의 목적은 우리 독립국을 없이해서 남의 노예를 만들고 저희 私慾(사욕)을 채우려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李承晩은 선전 선동 부분에서 공산당에 결코 지지 않는 戰略과 기술을 가진 분이었다. 그는 공산당이 소련을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이라고 찬양하는 것을 약점으로 잡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분자들이 러시아를 저희 조국이라 부른다니,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희 조국에 들어가서 저희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찾아서 완전히 우리 것을 만들어 가지고 잘하나 못하나 우리의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지고 살려는 것을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形容(형용)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가 저희 조국에 갖다 붙이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지 않는 것이니, 우리 삼천만 남녀가 다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결심이다.” 李 박사는 박헌영 김일성이 이끌던 남북한 공산주의 세력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 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이 자들이 스탈린의 졸개로서 소련을 위하여 봉사하는 賣國奴(매국노)들이란 점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폭로한 정치인은 해방공간에서 오로지 李承晩 한 분뿐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한국 사람의 形容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 가” 소련에 갖다 바치려는 반역자로 묘사하였다.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소련을 위하여 복무하는 간첩들이란 지적이었다.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得勢(득세)하던 시절에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표현인데, 적중한 예언이기도 하다. 65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한 분석이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들, 즉 從北(종북)세력은 민주투사나 한국인의 形容을 하고 있으나 賣國奴 김정일을 위하여 복무하는 간첩세력인 것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법도 제시하였다. “먼저 그 사람들을 誨諭(회유)해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 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함께 나아갈 것이오…” 거짓선동엔 진실의 햇볕을 비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변할 수 없는 공산주의 골수분자들이 아니라 附和雷同(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을 설득의 대상으로 보았다. 李承晩(이승만)은 교정이 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은 ‘親父兄(친부형) 親子姪(친자질)이라도 원수로 대우해야 한다. 大義를 위해서는 愛憎(애증)과 親疎(친소)를 돌아볼 수 없는 것이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서 공산주의자들을 파괴자, 민족주의자들을 건설자로 규정하였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는 협동이 못되는 법이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개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기 전에는 완전한 합동은 못된다.” 李 박사는 끝으로 이렇게 호소하였다. “이 큰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치 못하면 종시는 다른 해방국들과 같이 나라가 두 切分으로 나뉘어져서 동족상쟁의 禍(화)를 면치 못하고, 따라서 우리가 결국은 다시 남의 노예 노릇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경향 각처에 모든 애국애족하는 동포의 합심 합력으로 단순한 民主政體下에서 국가를 건설하야 만년무궁한 자유복락의 기초를 세우기로 결심하자.” 이 연설은 70세 老鬪士(노투사)의 위대한 先制공격이었다. 급소를 얻어맞은 조선공산당 박헌영은 중앙위원회 대표 명의로 ‘세계민주주의전선의 분열을 책동하는 파시스트 이승만 박사의 성명을 반박함’이라는 長文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표현은 극렬했지만 守勢的(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다. 박헌영 등 공산세력이 주도한 좌익의 통일전선체인 조선인민공화국은 李承晩이 귀국하기 전에 그를 主席으로 추대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래 놓고 그를 파시스트라고 공격하니 국민들에겐 잘 먹히지 않았다. 대중의 李承晩에 대한 신뢰는 공산당의 선전 선동이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뿌리를 박고 있었다. 李承晩이 공산당을 賣國세력으로 규정한 지 1주일이 지난 12월2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美, 英, 蘇 3國 外相 회담은 남북한에 대한 5년 기한의 신탁 통치안을 발표하였다. 金九, 李承晩이 주도한 反託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朴憲永의 조선공산당은 熱火(열화)와 같은 민심에 동요하여 贊反(찬반)을 정하지 못했다. 지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서울 주재 소련영사관을 찾아가 지침을 받으려 했으나 영사관측은 본국으로부터 훈령을 받지 못하였다고 했다. 박헌영은 12월28일 밤 비밀리에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다. 그는 김일성 등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간부들에게 신탁통치에 대한 남한의 민심이 반대쪽이라고 설명하였다. 김일성도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모스크바에 갔던 북한주둔 소련군 民政사령관 로마넨코가 평양으로 돌아온 다음날 朴憲永에게 지침을 하달하였다. 신탁통치를 결의한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朴憲永은 1946년 1월1일 밤 평양을 출발, 2일 새벽 서울에 도착, 김일성과 보조를 맞추어 조선공산당 이름으로 모스크바 협정, 즉 신탁통치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李承晩의 1주일 전 예언대로 극렬공산주의자들은 民心을 거스르고, 소련의 지령에 충직하게 복무함으로써 회복이 불가능한 敗着(패착)을 두었다. 좌익은 賣國세력, 우익은 民族진영이 된 것이다. 右翼(우익) 주도의 反託, 좌익 주도의 贊託 政局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김구의 臨政(임정)세력을 오른쪽으로 몰았다. 그 뒤 한 동안 李承晩-金九 연합전선이 형성되면서 좌익은 더욱 고립된다. 李承晩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先制공격으로 역사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가 2010년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연평도 도발 직후 평양의 금수산 기념궁전을 폭격하도록 명령하여 김일성의 屍身(시신)을 날려버리고 김정일-김정은을 昏絶(혼절) 시켰을 것이다. 李承晩의 공산주의자 배격 연설은 한반도 정세를 賣國者와 愛國者, 파괴자와 건설자, 敵과 동지, 善과 惡으로 가른 역사의 分水嶺(분수령)이었다. 오늘의 한반도 정세는 그 연설의 결과물이다. 공산당엔 공세적으로 나가야 이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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