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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시사.

'암살의 달인(達人)' 양성조직: 김정일정치군사대학

by 설렘심목 2011. 10. 14.


'암살의 달인(達人)' 양성조직: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주요교육내용, 암살·자폭론·혁명역사교육·게릴라전술
金泌材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Steyr Mannlicher)사가 개발한 CAPN 독침과 발사기.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 ‘폴로니움-210’을 독침에 충전시켜 암살에 사용하면 피암살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2004년 이후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의 불법 밀매 보고서에 등재된 250건의 도난사건 중 14건이 폴로늄-210과 관련이 있다.
 김정일이 가장 신뢰하는 대남공작요원들의 대부분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하 군사대학)에서 양성된다. 연간 100-200명의 대남침투 요원들을 양성해내는 것으로 알려진 이 대학은 지난 92년 학교 창립 35돌을 맞으며 북한의 교육기관 사상 처음으로 김정일의 이름을 사용했다.

5년제 군사대학의 교과과정은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를 비롯한 사상교양이 40%, 전투원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신체단련 사격·격술 등이 40%, 사진 운전 등 기술교육이 2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체적인 교육과정은 우선 일상적인 정치사상교육 즉 당과 수령을 위해서는 자신의 육신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다는 사고의식을 가진 친위전사로 교육시키고 있다.

실제로 김정일은 대남사업을 장악하면서 ‘자폭론’을 교과목에 집어넣도록 했다. 전투원이든 공작원이든 ‘자폭론’을 배워야 한다. 그 예로 ‘철학교재’를 들 수 있다. 전체 5장 21절로 된 이 책은 1장-철학이란 무엇인가, 2장-주체의 혁명적 세계관, 3장-주체의 혁명적 수령관, 4장-주체의 혁명적 인생관, 5장-혁명적 자폭관으로 되어 있다.

군사대학과 봉화정치대학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1학년 때부터 배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정보원들은 자폭을 ‘옆집에 물 길러 갔다 오는 정도’로 여기게 된다고 한다. 군사훈련의 내용은 기초적인 훈련을 단련하기 위해 태권도는 평균 3∼4단 이상이며, 수영은 먹을 것만 있으면 바다나 강에서 수십 시간 이상은 살 수 있도록 육성하고 있다. 또 하루 저녁 약 1백50리 정도는 지형지물에 관계없이 5∼6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군사전술 및 비합법 훈련의 내용으로서 육상에서 이루어지는 유격전술훈련, 습격, 매복, 암살, 납치훈련, 전투조훈련, 각종 군사 장비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격전술훈련은 유사시 후방에서 제2전선을 구축하는 산악 및 도시 게릴라전법을 말한다.

습격훈련은 일정한 목표물을 불시에 매복 기습하며 암살 납치 또는 소규모 인원으로 다수를 테러하는 것이다. 전투조훈련은 2∼3명이 한 개조를 구성해 중요시설폭파, 군사정찰, 고정간첩간의 연락공작 및 일정한 장소까지의 안내와 공작장비지원, 암살, 납치 등의 훈련을 말한다.

각종 군사 장비를 다룬다는 것은 육상에서 움직이는 각종 수송수단을 다루는 법, 아주 작은 권총에서부터 비반충포까지 발사할 수 있는 등의 기술을 말한다. 해상전술훈련에는 항해전술, 엔진운전법, 통신, 수중폭파, 수중잠수훈련 등이 있다.

항해전술훈련이란 배가 정확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항법, 즉 군사학적 측면을 접한 항해사 기술과 선박엔진 운전법 선박통신을 자유자재로 교신하여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보통 5톤급 이상 2백 톤급 이하의 선박은 군사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단독으로 운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편, 김정일은 대남사업 지휘에 발을 들여놓은 79년 이후 전투원들에게 정신력과 함께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해에 전투원 3명이 남한에 침투했다가 나무꾼에 발각되어 10여 일간 국군 포로망에 걸려 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3명은 그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들 전투원 3명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정일은 “이번에 동무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고, 또 무쇠 같은 체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전체 전투원들이 훈련을 강화해 하룻밤에 40-80km를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전투원들은 매일 20kg이상의 모래 배낭을 메고 혹독한 행군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작원들에게는 이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고정간첩 활동을 주로 하기 때문에 정보활동 환경 자체가 자유스러운 사회생활이기 때문이다. 또 주요 활동도 자료수집이나 인물 포섭이어서 행군을 굳이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84년부터 이들도 행군을 해야 했다.

이유는 그해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그해 가을, 네팔 등지에서 활동하던 북한공작원이 노출되어 여권과 공작금을 챙겨 나오지 못한 채 북한으로 비상복귀하게 됐다. 이들은 40일간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중국국경 등 3개국 국경을 행군으로 돌파하고 북한에 복귀했다. 이들은 이후 영웅으로 부각되어 김정일을 접견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공작원도 행군을 강하하도록 지시했다. 이 때부터 북한의 공작원들은 물론 해외로 드나들면서 잠시 쉬는 초대소 인원들에 이르기까지 매일 4km, 주말 20km, 월말 40km미터씩 뛰게 됐다. 이처럼 군사대학에서 혹독한 교육을 마친 북한의 대남 공작요원들은 100% 작전부 등에 취직한다. 건강이 나빠 퇴교한 학생도 워낙 신분과 실력이 좋기 때문에, 각 군(郡)에 있는 조선로동당 군당 위원회 지도원으로 채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상상을 뛰어넘는 공산권 국가의 요인 암살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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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망명 뒤 사망한 리트비넨코.
1. 1978년 불가리아 反체제 인사인 게오르기 마르코프가 런던 워털루 브리지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중 한 남자가 다가와 우산으로 찌르고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며칠 후 사망한 마르코프를 부검한 의사들은 미세한 금속 파편들이 그의 허벅지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파편들은 우산 끝에서 주입된 것으로 생화학 무기에 사용되는 맹독성 물질 리신(ricin)을 함유하고 있었다.

2. 1990년대의 자유 시장경제 체제하에서는 사업가들이 암살자의 표적이 됐다. 모스크바의 기업가 이반 키벨리디는 1995년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숨졌다. 나중에 경찰은 화학무기에서 추출된 것으로 보이는 독성물질이 그의 전화기에 묻어져 있음을 발견했다.

3. 2000년 푸틴 집권 이후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암살이 다시 시작됐다.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해 줄곧 러시아의 푸틴 정권을 비판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폴로니움-210’에 노출되어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 런던의 식당에서 모 이탈리아인을 만나 식사한 뒤 귀가하자마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2003년에는 언론인이자 의회 의원으로서 부정부패 사건을 조사 중이던 유리 쉐췌코치킨이 고열과 심한 구토 증상으로 입원한 후 2주 만에 사망했다. 살갗이 벗겨지기까지 했던 그의 죽음은 독살로 추정됐지만 입증은 되지 않았으며, 러시아 당국은 그의 의료기록을 기밀로 처리했다.

4. 2004년 9월 푸틴의 신랄한 비판자였던 여성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는 비행기에 앉아 당시 초등학생 1,200명을 억류하고 있던 체첸 테러범들을 설득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비행 중 차를 한잔 마신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결국 그녀는 의식을 회복했지만 2년 후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총을 맞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