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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위장술 - 착한 거부, 나쁜 투표와 착한 뇌물, 나쁜 수사..곽노현을 말한다.-고대현논설위원

by 설렘심목 2011. 9. 12.
[중앙일보 고대훈]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소설 '마장전'에서 사대부의 위선을 풍자했다. 말거간꾼(마장)의 입을 빌려 말 흥정처럼 진심을 숨기고 술수를 쓰는 게 사대부의 사귐이라고 비꼬았다. “물을 건널 때 부유한 자가 갖신에 덧신을 껴 신는 것은 진흙이 묻을까 염려해서다. 신 바닥도 아끼거든 하물며 제 몸이냐 오죽하겠느냐”라고 일갈했다. “벗 사귐에 있어 충(忠)이니 의(義)니 하는 것은 가난한 이에게는 일상적이지만 부귀한 이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라는 게 끝맺음이다.

 

 진정한 사귐은 선의(善意)에서 출발한다. 선(善)은 양(羊)처럼 온순하게 말하는 입(口)이다. 밀고 당기는 거래가 끼어들 틈이 없다. 거래는 거짓의 사귐이다. 악의(惡意)가 깔려 있다. 머릿속에 주판알 튕기면서 적당히 타협한다. 정치적 거래에선 대의·정의·명분 등 거대담론을 등장시킨다. 돈과 명예, 권력이 거래의 목적임을 숨기기 위한 치장일 뿐이다. 의도에 따라 사귐은 약(藥)인 동시에 독(毒)을 의미하는 파르마콘(pharmakon)이 된다. 연암은 이를 갈파한 것이다.

 

 법률용어로서 선의는 어떤 사실을 모르는 것이며, 악의는 아는 것을 말한다. 윤리적으로 좋고 나쁘다는 뜻과는 무관하다. 우리 민법·상법에서는 거래가 선의 또는 악의로 이뤄졌느냐에 따라 보호 여부를 판단한다. 거래의 법칙은 상생이지만 틀어지고 어긋나면 공멸한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법학자다. 법에 정통하다. 교육감 선거 후보 단일화에 양보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준 2억원을 '선의'라고 했다. 법률적으로 선의는 결백을 의미한다. 선의의 돈이기에 죄가 없다는 기발한 궤변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는 포도가 너무 높이 있어 못 따먹으니까 “어차피 시어서 먹지도 못할 거야”라고 했다. 위선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다. 곽 교육감은 선의를 프로이트가 말한 자기방어기제로 들고 나왔다. 자기합리화를 위한 억지다. 선의는 지난해 논란이 됐던 '기교사법'과 흡사한 법공학적 산물이다.

 

 삶에서 때로 악취를 피할 수 없다. 심한 악취에 빈번하게 노출되면 코는 마비된다. 무상급식 투표 때 재미를 본 '착한 거부, 나쁜 투표'를 패러디해 '착한 뇌물, 나쁜 수사'로 덧칠하려는 세력이 있다. 악의의 뒷거래라는 본질을 호도하는 발상이다. 대가성이 의심되는 구린 돈을 선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교육자에게 뭘 배울 수 있을까.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