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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그림&좋은글

책속에 길이 있다. 겸손한 자에게 열리는 길..

by 설렘심목 2011. 3. 9.

 

죽을 때까지 책을 읽자

 

전국교통도로 안내책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라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학교에서 배운 말을 틈만 나면 무시하려 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어렸을 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책 속에 무슨 길이? 하는 지적 반항심으로 나는 책갈피 사이를 뒤졌다. 길이 안보여, 책을 허공에 들고 막 흔들어도 길은커녕 지분(紙粉)만 떨어졌다.

나이 들어서야 ‘책 속에 길’이 다른 것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길이 있느냐고 묻지 마라. 거의 모든 길이 책 속에 있다.

 

예를 하나 들겠다.

음주운전을 했다. 그런데 겁대가리 없이 차를 몰았다. 아니 과속을 했다고 해도 좋다.

과속 이야기부터 할라치면, 나는 교통경찰관에게 잡히면 얼른 차를 세워놓고 재빨리 차에서 내려,

경찰관이 내게 다가오기 전에 그에게로 먼저 간다. 그리곤 ‘스승의 날’ 에 찾아뵌 스승에게 인사를 드리듯이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원만한 도로소통을 위해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하고 인사를 한다. 혹은 “우리 모두를 살리는 공무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하고 경외심 가득찬 인사를 해도 된다.

 

딱지를 떼려는 경찰관의 권력 영역을 십분 존중해주는 것이다. 경찰관이 올 때까지 차문을 열고 벌레 씹은 얼굴로 앉아서 기다리다가 경찰이 다가오면 삐딱한 시선으로 칙 눈을 올려뜨면서

 

“내가 과속했나? 나 100킬로밖에 안 밟았는데 …. 이보쇼, 거 좀 봐 주쇼?, 내가 누군지 몰라?”,

 

“사람이 고속도로 좀 달리다 보면 과속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 인간들은 천하의 바보똥개들이다.

 

차에 앉아서 교통경찰을 기다리는 그 인간들은 공간과 인간 심리, 권력영역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의 대처 자세에 대해 무지한 인간들이다. 과속을 해놓고도 그 지배적 자세에 편안하게 그냥 앉아 기다리면서 선처를 요구하다니,.. 참으로 바보똥개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이 서 있으면 신하들은 앉지 못한다.

 

앉아서 경찰관을 걸어오게 만든다는 것은 덜 떨어진 녀석들이나 하는 짓이다. 과속한 먹이에게 딱지를 떼기 위해 걸어오면서 교통경찰의 권력이 강화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왜 과속을 해놓곤 교통경찰의 반격을 받을 수작을 벌일까,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절대로 안 그런다. 나는 비굴할 정도로 공손한 얼굴로 과속을 재빨리 인정하고 운전자의 위치에서 벌 받을 약자의 위치로 내 위치를 이동시킨다.

 

교통경찰도 비록 제복을 입었지만 인간인지라 내가 겸손하면 할수록 감정이 누그러진다.

 

“배탈이 나서 얼른 휴게소에 가서 설사를 하기 위해 과속을 했는데, 앞으로는 식탐을 줄이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꼭꼭 씹어 먹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알아듣게 애교 섞인 발음으로 말하며 용서를 빌어도 좋다.

내가 공손하면 교통경찰은 그렇잖아도 무서운 딱지를 끊는 사람인데, 더욱 그 우세한 입장이 강화된다. 말로만 공손하면 안된다. 몸짓으로도 표현해야 한다.

중학교 1학년생처럼 교통경찰이 느낄 수 있을 만큼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다.

몸은 이때 꼿꼿하게 서지 말고, 조금 구부리는 게 좋다.

대부분의 교통 경찰은 이런 과속자들에게 대단히 관대해진다.

다섯 번 걸리면 세 번은 주의만 받고 무사통과할 수 있다.

 

교통경찰은 딱지를 뗄 권력도 있지만, 봐 줄 권력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 충분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그대로 해보시기 바란다.

 

오래 전이었다. 음주운전을 하고 차를 몰다가 단속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검사 받기 전에 미리 알아서 차를 갓길에 정차시켰다. 그리곤 재빨리 차에서 내려, 음주를 시인했다. 그리곤 그들의 조사에 적극 협조했다. 세 사람의 경찰관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높았다. 높은 계급의 경찰관은 내게 대단히 호의적이 되었다. 음주측정기에 숨을 불어넣는데, 나는 용을 쓰지 않았다.

“더 세게 부세요!”, 경찰이 말했다. 그래서 말했다.

 

“경찰관 선생님, 만약 선생께서 지금 내 입장이라면 세게 부실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세 사람 중에 계급이 높은 자는 나를 봐주고 싶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마침 운 좋게도 저 뒤에서 어떤 운전자가 옆자리 사람과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높은 계급의 그 자는 재빨리 졸병들 둘을 그쪽으로 보냈다.

그리곤 내가 불어 제낀 수치를 면허정지를 해야 할 수치 바로 아래 소숫점에서 멈춘 상태로 기록했다. 그리곤 내 직업을 물었고, 그는 내 직업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길거리의 ‘반짝 우정’ 이 싹텄던 것이다.

두 졸병이 돌아왔을 때, 그 경찰관은 이 사람은 면허정지를 당할 만큼 마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봐준다고 발표했다.

나는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미칠 것 같은 기쁨에 차서 무사히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지혜를 어디서 배웠는가?.나는 책에서 배웠다. 어떤 책이냐면, 데스몬드 모리스라는 동물행동학자가 쓴 <털 없는 원숭이>라는 책이 그 책이다.

쪽수까지 밝히고 싶지만,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지라 책명만 가르쳐 드린다.

‘짝짓기’, ‘기르기’ 다음에 ‘싸움’ 장(章)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자도 실제 교통경찰의 태도를 여러 차례 실험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책 속에는 과속을 해도 딱지를 안 떼일 수도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런 길을 아는 자는 조금 응용하기만 하면, 심지어 음주를 하고도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 속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다.

바닷가 어느 작은 왕국에서 하느님도 시샘할 정도로 서로 사랑하다가 망한 연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도 있고,

 

아메리카 대륙에 콜럼부스라는 녀석이 당도하기 전에 중국 ‘넘’ 들이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도 있고,

 

실연의 상처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에서 식은 화로를 끼고 있는 불쌍한 시인도 있고,

혼자 성불하기 미안해 친구에게 자기가 목욕했던 물에 처박아 같이 성불한 중들 이야기도 있고,

 

팔만대장경도 무지한 자에게는 빨래판으로 보인다는 교훈도 있고,

 

끓인 물도 식히면 산소가 다시 스며든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고,

 

중국에는 오래 전부터 식인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 뿐인가. 트란실바니아의 에르체베트 바토리 백작부인(1560~1615)은 어느 날 심심해서 하녀들을 추운 날 성 안뜰에 세워놓고 물을 부어 얼음조각상을 만들기도 했다는 사실도 책 속에 있다.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데도 단어는 안 외고 맨날 영어공부 걱정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내 얼굴에 침을 뱉으라.’는 극우보수 논객의 얼굴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침을 뱉어주겠다’는 젊은 논객의 답변도 있다.

 

아름답게 살다가 용사답게 깨졌던 인디언 추장들의 연설문도 책 속에 담겨 있고,

 

기후변화에 무관심한 지도자들이 맨날 경제성장만 하면 상책이라고 믿는 한심한 선택에 대한 우려도 있다.

 

책 속에는 하여간에 다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게 아니다. 모든 길은 책 속에 있다.

심지어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책은 우리에게 그런 친절한 안내도 해준다.

 

50이 넘었으니 이제 정말 제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통해 우리는 500세는 너끈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이 틀렸다고 믿는 자는 ‘책’ 일랑 아예 담 쌓고, 주식 투자법이나 부동산 안내책이나 읽다가 번돈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기 바란다. 내 안타까움이 너무 과했나? 과했다면 반성하겠다.    

 

- 금연못각  최성각 -    

- 이제부터 내 인생 내가 디자인한다

2005년 1월 10일 초판 1쇄 펴냄  2005년 3월 30일 초판 5쇄 펴냄  지은이 / 권용철 외 11인  

기획 / 풀꽃평화연구소     펴낸곳 / (주)샘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