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종교학에서 종교의 요소는 속죄관, 윤리관, 내세관이 확립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세상종교는 이 세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세 요소가 참되며 진실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종교라 일컫는 것에 대하여 이방신과의 관계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므로(행17:22, 25:19)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종교의 범주에서 구별하여 기독신앙이라는 말로 일컫는 것이 올바른 줄로 압니다.
종교가 신과 사람과의 관계라고 할 때 성도에게서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가 됩니다.
곧 주를 위한 삶이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한 삶이란 주님이 말씀하시고 명령하신 것을 사명으로 알아 그것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이후 우리를 향해 예배를 계시하시고 그 예배드림이 우리의 사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공생애가 점차 무르익어갈 시점에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가시고자 길을 떠나셨습니다.
이는 유대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중 피를 흘리기까지 핍박이 심해지자 그곳을 떠나 아직은 덜 자극을 주는 그러한 장소에 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신의 증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항복하거나 자신을 노출시키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더욱이 그의 제자들은 아직 연약했기에 많은 핍박에 노출시키시려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서는 지름길에 위치한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요단강 건너 지금의 요르단의 먼 길을 돌아서 가셔야만 합니다.
당시 정통 유대인들은 신앙과 혈통에 있어서 혼혈 유대인인 사마리아사람들을 멸시하여 상종하지 않으며 그 땅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으며 저들 속에서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리우는 것보다 더 큰 욕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별도로 그리심 산에 예배당을 짓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한 번 거절당했던 땅 사마리아 길로 들어서셨습니다.
세계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사마리아가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하신 길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사마리아로서는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을 통과하심으로 이제 사마리아는 복음이 이스라엘 나라 밖으로 전파되는 첫 장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에 있는 야곱의 우물 곁에 앉으셨습니다.
때가 한낮이라 불볕 더위와 긴 여로로 예수님께서는 지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가 홀로 쉬고 계실 때 예수님은 남들이 멸시하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 여인과 네 가지 주제를 가지고 참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십니다.
⑴ 생수에 관한 주님의 교훈(7-15절)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필연적인 사건에 의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목적을 향하여 거룩한 섭리의 발걸음을 옮기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그 여인에게 가르치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10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 알았더면 네가 구하였으리라”.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시키심으로써 그 여인을 회심시키고자 하십니다.
⑵ 사마리아 여인의 남편에 관한 것(16-18절).
예수님께서는 다음 대화로 그 여인의 양심을 일깨워 보다 쉽고 진실하게 은혜에 의한 죄 용서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도무지 그 짐을 예수님께로 가져오지 않고는 못 견딜 마음을 심어주심으로 영적 치유의 과정을 통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⑶ 예배할 장소로 관한 교훈(19-24절).
대화의 깊이가 더해짐으로 사마리아 여인은 이 낯선 나그네를 "주여"라고 부르게 되며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식하기 시작하여 무엇인가 좀 더 배우기를 원하는 간절한 심령으로 바뀝니다.
⑷ 메시야에 관한 내용(25-26절).
그 여인은 혼합 신앙적 환경 속에서도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25절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전혀 반대할 마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야로부터 사실을 듣고자 했으며 그 시기까지 자신의 믿음을 보류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메시야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충분히 명확하게 말해 주실 것이요, 숨김 없이 말씀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26절)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이와 같이 정확하게 자신을 드러내신 일이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일반적인 확신의 수단인 예수님의 기적을 볼 기회도 전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 중에 유대의 관원 니고데모가 있었습니다(요3:1-21).
그런데 유대 최고 종교지도자이면서 존경받고 있는 인물임에도 그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거듭남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여인은 참으로 미천한 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의 대화가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사귀기를 원하는 정직하고 겸손한 심령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온전히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에 깊은 감격과 은혜로 들어가는 우리의 자세인 것입니다.
본문 23-24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⑴ 예배란
한자로는 예를 갖추어 절하거나 공경하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
‘샤하’ ‘엎드린다’ 혹은 ‘따른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대등해지거나 그 위로 올라가려는 죄악된 심성을 강제로라도 가라앉히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바드’ ‘섬긴다’ 아바드는 명사형일 때 에벧은 종, 노예가 됩니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자주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신약
‘라트류오’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것으로 섬긴다. 사용한다는 뜻으로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레이툴게오’ 정치적 공동체의 봉사를 의미하는 말로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하는 것이 예배의 일부임을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의 라틴어 leitourgia는 leos(백성) + ergon(일))의 합성어로 예배가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일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프로스쿠네오’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또는 ‘손에 입 맞춘다’는 뜻으로 웃어른에게 대한 예의와 존경과 복종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에 대하여 “합당한 가치를 돌려드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29: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감격과 헌신의 행위(눅7:37-38)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계 4장 5장에 보면 네 생물, 24장로, 천천의 천사들, 모든 만물들이 성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리는 모습을 통해 천상 예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그것은 세상과 구별시켜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어 그를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림에 있습니다.
우리가 올릴 바른 예배
휘티어(Whittier)는 “예수에게 사랑을 받은 자는 진실로써 말한다. 주께서 축복하시려는 더 거룩한 예배는 잃은 자를 회복하고, 상한 영을 잡아매고, 과부와 고아를 키우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말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령하고 참된 예배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⑴ 공동으로 드려지는 예배여야 바른 예배입니다.
공예배란 교회가 선포한 공적인 모든 예배 모임을 가리켜 말합니다.
우리 교회의 공예배는 주일 낮, 밤, 수요, 금요, 새벽 기도회 등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 역시 공예배에 버금가며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만한 산 제물이 되기에 충분한 모임입니다.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공동 행위의 공(公)고백을 통하여 주님께 드려집니다.
물론 개인이 주께 드려지는 헌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개인의 헌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연결되어야 바른 헌신이 됩니다.
교회의 일원인 각 개인이 머리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붙어 있어야 각 지체는 자유롭게 완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법입니다(엡 2:22).
이런 의미에서 가정교회(일부 신앙의 자유가 없는 국가에서 모이는 가정교회와는 다른), 무교회주의는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동체로서의 예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⑵ 대상이 정확해야 바른 예배입니다.
유대인들은 모리아 산(지금의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에 사마리아 인들은 과거 산발랏이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운 이래 그곳에서 예배드림으로 나름대로 신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1절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네가 지금까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가르침을 받아 왔던 것은 매우 사소한 문제이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것은 장소적인 문제가 아니라 너희는 너희가 알고 있지 못한 것을 예배하고 있으나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창조의 하나님으로, 우주의 주인으로 섬기고 있지 않고 민족심에 따른 지방신으로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드려질 예배에 있어서 무엇보다 우선하여 성경에 이른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고 드릴 때 안심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장소가 순결하고 온전치 못하더라도 예배는 진실할 수 있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22절에 "우리는 … 예배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기꺼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 가운데 자신을 포함시키고자 하십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하찮게 여겨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⑶ 드려지는 각자의 마음 중심이 정확해야 바른 예배입니다.
본문 23-24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예배에 있어서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으로 그리고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배하는 자는 성령의 강한 내적 증거를 입은 자들입니다.
예배에의 부름으로 시작하여 평강과 축도까지 성령 안에서 인도됩니다(고후13:13).
그러므로 참으로 예배하는 자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에 압도되어지는 자입니다.
그 속에 진리를 사모함과 진리를 위해 수고하고자 하는 결단이 있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마리아 여인이 가진 뛰어난 영적 탄력성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람은 예배하는 피조물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것은 사람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예배를 받기 위하여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를 위해 거룩한 처소로 불렀습니다.
예배가 도전을 당할 때 그 인생, 그 가정, 그 민족은 깊은 어둠에 잠긴 것을 역사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예배는 사명입니다.
우리는 평소의 6일간의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룸이 예배요 주일에 모여 공적 예배를 드림이 또한 예배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필수적인 사명임을 깨닫고 주일의 바른 예배와 삶의 현장을 통해 영광을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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