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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랑.시사.

지금쯤 국회에서 열심히 함께 뛸지도 모를 고첩

by 설렘심목 2010. 9. 30.

'옛날 옛적에' 간첩 식별법이 있었다.

'새벽에 산에서 내려오거나 바닷가를 배회하는 자, 한밤중에 몰래 북한 방송을 듣는 자, 정부 시책을 비난하고 북한을 지지 찬양하는 자, 남한의 물가나 지리를 잘 모르는 자' 등. 지금 보면 코미디다. 하지만 그때는 국민 모두 숙지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별법에 걸려들어 붙잡힌 간첩이 과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설령 검거됐다 해도 그 간첩은 아마도 조무래기였을 터.

대부분의 거물 간첩은 스파이 세계에서 '두더지(mole)'로 불리는 고첩(고정간첩)이기 때문이다.

 

두더지는 적어도 10년 이상, 멀리 내다보고 미리 적 내부에 심어놓는 간첩이다. 이런 '두더지 심기'를 그랜드 투어(Grand Tour·투어에는 '임무 기간'이라는 뜻이 있음)라고 한다.

 

두더지들은 적의 정치 군사 첩보 등 주요 기관에 침투해 장기적으로 정보를 빼낸다. 그 과정에서 요직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영국인 소련 간첩 해럴드 '킴' 필비와 동독 간첩 귄터 기욤이 그 예.

 

1934년 소련 KGB에 포섭된 필비는 39년 영국 해외정보국(MI6)에 침투한 뒤 정체가 탄로나 63년 소련으로 망명할 때까지 거의 30년 동안 각종 정보를 소련에 넘겨줬다. 그 사이 그는 MI6의 국장직을 넘볼 만큼 고위직에 올랐다.

 

동독의 정보조직 중앙관리국(HAV) 소속인 기욤은 56년 서독으로 위장 망명한 뒤 공산당과는 적대적인 사민당에 가입, 정관계에서 출세를 거듭한 끝에 빌리 브란트 총리의 정무보좌관까지 지내면서 약 20년간 간첩활동을 벌였다.

 

물론 아시아에도 두더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중국 공산당 간첩으로 국민당군 부사령관까지 지낸 리창. 그는 일찌감치 1939년 국민당 첩보 조직에 침투, 45∼49년에 치러진 국공내전(국민당과 공산당이 중국의 패권을 놓고 싸웠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리창의 암약을 비롯해 양측간 치열했던 첩보전을 그린 중국 TV 드라마 '잠복'이 요즘 중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양안관계 개선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한 듯.

이 소식을 접하면서 60년 넘게 대치 중인 남북한, 특히 남한에서는 어떤 두더지들이 암약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어쩌면 나중에 "그 사람이?"하고 경악할, 혹은 "과연!"하고 무릎을 칠 인물이 두더지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