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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유서

by 설렘심목 2010. 5. 28.
Ludwig Van Beethoven (1770.12.16 본 출생 ~ 1827.3.26 빈 사망)


 

하일리겐시타트에서 1802년 10월 6일 씀
 
나의 아우 카를과 요한 베토벤에게 나의 사후(死後)에 읽혀져 이행되기 바라며...

내가 심술궂고 고집이 세고 또한 사람들을 멀리 한다고 너희들은 생각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무슨 그런 잘못을 범하고 있는가? 내가 그런 인간으로 보이는 숨은 원인을 너희들은 모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나의 마음과 정신은 친절하고 다정한 감정으로 넘쳐 있었고 훌륭한 행위를 행하고자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니 6년간이나 절망적인 병에 걸린 데다 무식한 의사 때문에 더 한층 병이 악화되어 다음 해야, 또 다음 해야 낫겠지 하는 희망에 현혹되어 왔으나 마침내 불치의 병이라는 단안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이를 고치려면 며칠이 걸릴 지 모른다). 나는 원래 열렬하고 쾌활한 천성으로 태어나 사교도 좋아하는 성질이었으나 일찍부터 고독을 강요받아 쓸쓸한 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생각을 깡그리 잊어버리려 하였으나 자기의 귀가 나쁘다는 이중의 슬픈 경험으로 해서 언제나 무참하게 좌절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나는 귀머거리이니 좀더 큰소리를 해달라거나 외쳐달라거나 하는 말을 남에게 할 수는 없었다. 아아! 나의 경우 남보다 더 완전해야 할 하나의 감각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옛날의 나는 가장 완전한 상태로서 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서도 좀체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것이었다.
 
아아, 나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기꺼이 너희들과 어울려야 할 때에도 그냥 망설이기만 했던 것을 용서해 다오. 그 때문에 내가 오해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르므로 나의 불행은 이중으로 슬픈 것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남들과 어울려서 기분전환을 한다던가 세련된 교제나 사상의 교환 같은 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꼭 필요한 때 이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 앞에 나가지 않으려 하고 있다. 나는 유형(流形)을 당하고 있는 사람처럼 살지 않으면안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갈 때에는 나 자신의 불구가 발각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이상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 반년 동안을 시골에서 보내며 될 수 있는 대로 귀를 사용하지 말라는 현명한 의사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이 일은 현재의 나의 기분과도 잘 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사교를 원하는 마음에 쫓겨 의사의 지시를 어긴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 곁에서 있는 사람은 멀리서 연주하는 플루트를 듣고 있는데 내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던가 또 목동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전혀 들리지 않을 때는 이보다 더 한 굴욕은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나는 거의 절망상태에 빠진 채 하마터면 자살을 기도할 뻔한 일까지 있었다.

나를 만류한 것은 예술뿐이었다. 자신에게 부과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창작을 완성하기 전에는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 때문에 나는 이 비참한 생존을 견뎌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도 비참하여 뭔가 급격한 변화를 만나기만 해도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떨어지는, 자극 받기 쉬운 몸인 것이다. 인내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때문에 나는 그대로 실천해 왔었다. 냉혹한 운명의 실을 끊어버리는 순간까지 이 결심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도록 끝까지 버틸 것을 원하고 있다. 지금보다 좋아질는지도 모르고 혹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각오는 되어 있다.

28세에 벌써 철학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아아! 수월한 일이 아니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예술가에 있어서는 더 한층 쉬운 일이 아니다. 신은 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어람(御覽)하시고, 그것을 지실 하고 계시고 인간애와 선행을 구하는 원망(願望)이 거기에 깃들어 있는 것을 알고 계신다. 아아! 사람들은 언젠가 여기에 기록된 말을 읽고 얼마나 나를 냉대했던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자연의 모든 장애를 받으면서도 거룩한 예술가와 인간의 행렬에 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불행한 자는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자기와 동류의 사람이 한사람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너희들 나의 카를과 요한이여. 내가 죽거든 곧, 만약 슈미트 박사가 건재하다면 나의 이름 아래 나의 병상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여 그 서류를 나의 병력서(病歷書)에 첨부해다오. 그렇게 하면 나의 사후에 적어도 나 아닌 다른 사람과 나와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화해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너희들 두 사람이 나의 얼마 안되는 재산(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상속자라는 것을 선언한다. 그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고 서로 도와다오. 너희들이 나를 거역한 데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듯이 오랜 옛날에 용서했다. 아우 카를에게는 특히 최근 나에게 대해준 친절에 감사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나보다 훨씬 행복하게 번거러움 없는 생활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너희들의 아이들에게는 덕행을 권한다.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금전이 아니다. 역경에 있는 나를 고무한 것은 덕행이었다고 나는 경험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자살을 가지고 내 생애를 끝내지 않았던 것은 나의 예술의 덕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덕행의 덕분이었다.

다들 잘 있거라. 서로들 사랑해가며 살아가 다오. 모든 친구들, 특히 리히놉스키 공과 슈미트 박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공에게서 얻은 악기는 너희들 중의 어느 누군가가 잘 보관하고 그 때문에 다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무슨 유일한 일에 도움이 될 때는 곧 팔아버려도 좋다.
무덤 밑에 있다 하더라도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면 이 이상 기쁜 일이 없다. 기꺼이, 나는 죽음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리라. 나의 예술적 전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아직도 있는 동안에 죽음이 닥쳐온다면 나의 운명이 아무리 무자비하다할 지라도 그 죽음은 아직도 이른 죽음이 될 것이다. 좀더 죽음이 늦게 닥쳐올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 있어서도 나는 만족할 수가 있다. 한없는 고통 상태로부터 죽음이 나를 해방시켜주는 것이 될 터이니까. 언제든지 오라. 나는 용감하게 그를 맞이하리라. 잘들 있거라. 내가 죽은 뒤도 나를 잊지 말아다오. 너희들이 행복해지기를 빌어온 나이기에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돼 주기를 바란다.

 

LUDWIG VAN BEETHOVEN

하일리겐시타트에서  1802년 10월 10일

 

이것으로 너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참으로 슬프다! 그러나, 저 잊지 못할 희망, 적어도 어느 정도는 쾌유하리라 생각하고 이곳으로 왔을 때 가졌던 희망, 그것을 지금은 모조리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을 나뭇잎이 떨어져 시들고 마르듯이 그 희망도 꺾이고 말았다. 여기에 왔을 때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는 떠나간다. 아름다운 여름날에 이따금 나를 고무해 주던 저 의연한 용기까지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졌다.

오오 신이여! 마지막으로 단 하루라도 좋으니, 순수한 환희의 날을 나에게 내려주시옵소서. 참된 환희가 나의 가슴에 일지 않게 된 지가 오랩니다. 오오, 오오, 어느 날에, 오오 어느 날에 신이여, 또다시 자연과 인간의 전당에 서서 내가 그 환희를 맛볼 수 있을 것인지, 절대로 얻어질 수 없는 환희일 것인지. 아아, 그렇다면 너무나도 냉혹합니다.

 

*         *          *

 

베토벤, 그는 이 유서를 작성하기까지 엄청난 정신적인 고뇌가 있었다고 한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에는 실패를 했다.

그리고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귀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하일리겐시타트에 요양을 가서 자살할 것을 생각하며 유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불후의 명곡들을 작곡한다.

교향곡 3번부터 9번까지는 그가 하일리겐시타트 유서를 작성한 후에 작곡된 곡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곡들은 이 이후에 작곡되었다고 무방할 것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 이 소나타의 제목이 ''템페스트''가 된 것은 베토벤의 제자 신틀러가 이 곡을 이해하기 위한 힌트를 달라는 부탁에 베토벤이 "그렇다면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라."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곡을 완성할 당시의 베토벤은 귓병이 악화되어 하일리겐시타트에서 전지 요양을 하고 있을 때였고, 자살을 생각하면서 그 유명한 ''하일리겐시타트 유서''를 쓸 무렵이었다니 그의 정신적인 고뇌가 얼마나 엄청났고, 또한 그 고뇌가 이 곡 속에 그대로 녹아 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고뇌를 생각하며 이 곡을 듣다 보면 사무치게 마음에 와 닿는 무언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