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 스님, 법정 스님에 던진 비수 같은 글 |
<특별 기고>"개인적 소신집착으로 국리민복 상습 외면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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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함께 자연에 찬사를 보내고, 무소유사상(無所有思想)을 강조하여 범속(凡俗)을 초탈한 것 같이 승속(僧俗)의 찬사를 받는 법정스님이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국책사업에 정면으로 반대에 나선 것 같다. 그는 지난 4월 20일 자신의 설법도량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법회에서 불교계를 향해 “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이자 모독”이라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고 불교계를 향해 봉기(蜂起)를 촉구하는 것 같은 발언을 했다.
그 발표는 불교방송을 통해 전국에 확산되었다. 법정스님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정부 국책사업을 반대해오던 불교환경단체에 유익할 발언을 해왔다. 그러나 법정스님의 발표는 불교계 전체 공론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와 불교계를 위해 우리는 법정스님의 그동안 운동행적(運動行跡)에 심사(深思)하고 찬반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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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법철 스님 |
그러나 법정스님은, 불교적 용어로 말하면 자연보호를 외치다가 방하착(放下着)할 수 없을 지경의 소신집착(所信執着)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는 소신집착으로 정부의 국책사업을 흔들어 좌절시키려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천문학적인 국민혈세를 낭비하게 하는데 직-간접적 역할을 하고 있다. 바꿔말해 소신집착(所信執着)으로, 대의인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외면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법정 스님은 스님이다. 그런데 일면 한국사회의 또 하나의 종교적인 권력자로 등장했다. 그가 자연보호를 운위(云謂)하며 어느 국책사업을 지적하여 “불가(不可”를 말하면 그의 승속(僧俗)의 추종자들이 반대에 나선다. 국리민복을 위해 대통령이 국책사업을 주장을 해도 무시되고 대통령은 속수무책이다. 공사판 시공사(施工社)는 천문학적 비용을 허비해도 속수무책이다. 공사판에 노동하여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는 노동자들도 개탄 속에 속수무책이다.
법정스님적 소신집착에 동요되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부 고속도로를 완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법정스님은 당시 박대통령의 월남파병도 맹비난 했다. 그가 좋아하는 정치인은 고교 동문이요, 선배인 김 대중(DJ) 전 대통령인 것 같다. 사상이 같아서인지 선후배의 돈독한 정인지, 법정스님은 DJ를 향해 필봉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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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김상문 기자 |
천성산 도룡농 사건은 어떤가? 비구니 지율 스님은 2조 5천억가량의 국민혈세를 간접적으로 낭비하게 만들면서 경부고속전철의 천성산 터널을 못 뚫게 반대했었다. 도룡농을 법정에 올려 인간을 위한 법정을 조롱하기조차 했다. 당시 통치자 노무현 대통령은 지율의 국민에 대한 방자, 오만무례로 국민혈세를 낭비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지율 스님이 하는 대로 묵인했다.
앞서 언급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법정스님의 발언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율 스님은 의사들이 가가대소(呵呵大笑) 하는 일백일의 단식투쟁 기록을 세웠다.
부안군 방폐장에 대한 사연은 어떤가? 부안에 방폐장(放廢場)을 유치하면 2조가 넘는 정부지원 약속이 있었다. 부안 토박이 주민들은 정부지원 2조는 부안발전 천재일우 기회라고 환호했다. 그런데 외부인들이 부안주민들을 겁주고 투쟁하게 만들었다. 자연보호에 맹종하는 승려 추종자들은 부안군수를 내소사(來蘇寺)에 유인하여 몰매 때리는 비겁한 짓에 관여하면서 까지 방폐장 유치를 막았다. 부안의 폭동으로 결국 방폐장사업은 경주시가 가져갔다. 방폐장 문제로 경주시민이 단 한 명이라도 불상사가 있었나? 자연보호를 외치는 승려들 탓에 부안, 정읍경제 살리는 절호기회를 놓쳤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부안에는 승복혐오증(僧服嫌惡症)이 걸린 사람도 있다. 승려가 시주 밥 먹고 할 일인가?
부산의 어느 길거리에는 시민들이 법정스님이 부산에 오는 소위 래부환영(來釜歡迎)의 현수막을 걸어놓고 기뻐하고 있었다. 경부고속전철이 하루속히 개통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은 정작 고속전철이 그 동안 개통되지 못한 것은 도룡농 생명을 지독히 사랑하는 지율 비구니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자리를 빌어 경부고속철을 봉쇄해도 불교계에 거세게 항의하지 않고 피해를 감내하며 묵묵히 지켜보는 부산 기독교, 천주교, 등 제종교인들과 일반 부산시민들에게 필자는 조계종 승려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사과하고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나 부산의 사찰 주지스님 몇은 필자에게 개탄 속에 속사정을 말해왔다. 지율 스님의 고속전철봉쇄 이후 수많은 부산 불자들이 개탄하며 개종을 했다는 지적이다. 자연보호가 좋다지만 국리민복에 반(反)하는 운동을 상습 업(業)으로 삼는 것에 실망을 느꼈다는 것이다. 일부 부산불자는 항의의 뜻에서 ‘부처님 오신날’에도 봉축 등을 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불교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느냐는 것이다. 도룡농 사건으로 승복혐오증이 걸린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피눈물 속에 간절히 도움을 청하며 죽어 가는 고통 속의 인간들은 외면하고, 도룡농 보호를 위해 2조5천억을 낭비하는 데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친 한국불교계의 한계인가!
법정스님은 자연보호와 무소유를 찬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소신집착에 반(反)하는 선배스님들을 향해 저격(狙擊)하듯이 맹비난하여 불교계에 화제를 모은지 오래이다. 1960년대 말, 법정스님이 해인사의 뒷방에서 독서와 문장력을 키울 때이다. 당시 해인사는 방장(方丈)인 이성철스님이 앞장서 해인총림(海印叢林=종합수도원)을 만들고, 승속의 수행방법의 하나로 ‘불전삼천배(佛前三千拜’를 시행하도록 했다. 그 ‘불전삼천배’를 두고 돌연 법정스님은 찬물을 끼얹었다. 불교신문 여시아문(如是我聞)의 칼럼란에 불전삼천배를 ‘굴신운동(屈伸運動)’이라는 제목으로 폄하, 비난하여 이성철 스님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법정스님은 조계종 정화불사 선봉장인 이청담 종정을 향해 “강남 봉은사 땅을 참새가 쉴 수 있는 땅조차 남기지 않고 팔아먹은 자”라며 맹비난 했다. 또한 1994년 ‘4,10 승려대회, 때 당시 송서암 종정, 서의현 총무원장은 개혁대상이라며 승려대회를 여는 승려들을 향해 지지하고, 부추기는 성명을 발표했다. 불 붓는 나무에 법정스님은 기름을 끼얹어 준 것이다. 마침내 송서암 종정은 불신임을 당하여 내쫓기고, 서의현 총무원장과 종정 사서실장인 임원두 스님도 속세의 사형격인 ’멸빈‘의 중징계를 받았다. 황진경 전 총무원장도 지나친 법적용으로 멸빈을 당했다. 그 외 많은 승려들이 지나친 법적용으로 중징계를 받았다. 법정스님이 지지하고 부추겨 승리한 당시 집행부는 반대편에 선 승려들을 중징계를 해버렸다.
필자는 그들의 사면을 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한지 오래이다. 법정스님은 단 한번도 억울하게 중징계를 당한 스님들에 대해 사면을 촉구하는 자비의 글을 쓰지 않았다. 여전히 독야청정(獨也淸淨)이요, 자연보호의 소신집착일 뿐이다. 일생을 조계종단에서 보낸 승려들을 누가, 무슨 권리로 길거리로 내쫓는다는 말인가? 명성(名聲)을 위해선지, 한독(寒毒)한 성품인지, 절 집 선후배에게 필탄(筆彈)을 날린 법정스님이기에 필자의 논의와 지적에 대해 격노(激怒)하거나 상심(傷心)해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선배를 향해 필탄(筆彈)을 날리는 것은 법정스님 고유한 전매특허가 아니지 않는가? 필자도 수차 정문일침(頂門一鍼)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법정스님의 능력에 경탄한 일이 있다. 1996년 5월, 동아일보 1면 우측 톱에 ‘5천원짜리 염주와 1200억’이라는 제목의 박스 기사가 있었다. 서울의 3대 고급요정 (청운각, 삼청각, 대원각)중의 하나인 대원각(大苑閣) 여주인 김영한(金英韓.81)씨가 1200억 상당의 요정인 대원각 등을 법정스님에게 기증하고, 법정스님은 답례로 5천원짜리 염주를 그녀의 목에 걸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김영한은 동기(童妓)로서 자유당 국회부의장이 머리를 올려준 이로 알려졌다. 그녀는 기생방을 차려 장안의 권문세가, 재력가 등과 특히 일본인들의 기생관광사업으로 치부(致富)한 노기(老妓)이다. TV에서 하룻밤에 돈을 부대자루로 가득 벌었다고 자랑했다.
필자가 볼 때 그 돈은 재래시장 길가의 노점상의 돈에 비교하면 자랑할 수 없는 돈이었다. 왜냐면 대원각은 일본인을 위한 기생관광의 본산이요, 일본인을 위해 우리의 누이들에게 고운 한복을 입혀 미주가효(美酒佳淆)와 풍악속에 춤을 추게 하며, 일본인들에게 정조방매(情操放賣)를 강요하여 번 화대(花代)인 것이다.
법정스님은 대원각을 길상사(吉祥寺)로 개조하여 자신의 법회도량으로 만들어 놓고, 회주가 되더니 무슨 포석인지, 회주를 떠났다고 언명했다. 조계종 법에는 사찰을 창건하여 조계종에 공찰(公刹)로 만들면 창건주는 평생주지의 권한이 주어지고, 사후에는 상좌가 창건주의 지위를 승계하게 된다. 법정스님은 노기(老妓)덕에 금생에 길상사 창건주 지위에는 불변하다. 열반할 때까지 길상사는 그의 설법도량이요, 열반 후 영단에서 향화(香花)를 받게 되었다. 노기(老妓)덕에 큰 행운을 얻은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모 그룹 회장 부인이 후원회장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전한다.
13.000여명 조계종 승려 가운데 법정스님처럼 복수용(福受用)을 하는 승려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무소유 소리는 더더욱 충천하다. 어느 월급장이 부인이 무소유 글을 읽고, 호주머니에 먼지 뿐일 것 같아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무소유를 유소유(有所有)로 만들어 주기 위해 남편 봉급 한달치를 송금했다고 말해 배를 안고 웃었다.
해괴한 풍경이 유행되고 있다. 무소유와 자연보호를 주창(主唱)하던 법정스님이 노기(老妓)로부터 행운을 얻자 일부 정신나간 자들은 무소유와 자연보호는 행운을 부르는 주문(呪文)으로 여기고 사기, 협잡배까지 무소유와 자연보호를 장광설(長廣舌)로 떠드는 자들이 있고, 음굴(淫窟)같은 곳에서 주초(酒草)로 찌든 자까지 무소유와 자연보호로 호령치는 세상이 되었다. 승려의 무소유정신과 자연보호는 민심얻는 첩경(捷徑)이 되었다. 도처에 주문을 외워대는 소리가 충천한 것 같다. 진짜 무소유와 자연보호자들이 무색해지는 세상이다.
대운하(大運河)던 소운하(小運河)던 대다수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과 또 대다수 국민들이 선택할 것이다.
태고 원시림에서 노니는 지론을 가진 법정스님을 위해서인가,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인가? 승속을 선동하는 뜻은 나변에 있는가? 소신집착인가, 어떤 정권을 위한 사회혼란의 정치포석인가? 김정일정권의 광우병 선동을 복창하며 대한민국 전복의 기회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좌파 성향의 인사들이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시점에 조도(助刀)하듯이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것인가, 진정 자연보호를 외치는 것인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소식은 무슨 소식인가? 월남 패망을 불러온 승려들처럼 대운하반대를 외치며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도 촉구하는 소식인가?
끝으로, 승려의 자연보호에는 동의한다. 산문출송(山門黜送) 당해 떠나는 승려도 산사의 자연을 보호하며 떠난다는 것이 산사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자연보호 소신집착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국리민복의 국책 환경개발사업을 상습적으로 방해하여 천문학적인 국민혈세를 낭비하게 한다면 이는 자연보호를 빙자한 국정 농단이다. 국가민족에게 큰 폐(弊)를 끼치는 것이다. 그 폐단의 누적은 대다수 국민들의 원성이 고조(高潮)되게 하고, 불교배척의 시대를 자초할 뿐이다. 마각(馬脚)의 위선(僞善)을 꾸짖는 소리도 고조될 것이다. 출가승려의 사명은 정각속에 불교중흥이요, 불교중흥을 위해서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수호이다. 그것이 한국 호국불교정신이다. 국리민복을 상습 외면하는 자연보호 소신집착은 이제 방하착(放下着)해야 할 것이다. 무소유를 주장해온 법정스님이여. bubch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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