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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예수!!

어디로 가십니까? 천국은 여기 있습니다.!

by 설렘심목 2010. 2. 7.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한주일 깜박할 새 가고 일년가고 십년가고 인생의 종점이 어디입니까?

세월이라는 급행열차를 타고 어디로 가십니까?

 

 어떤 사람이 차를 타고 가면서 옆의 사람 보고 “ 어디까지 가십니까?

 물으면 서울을 간다든지 광주나 부산을 간다고 목적지를 말해야 할터인데 ,..

“글쎄요 나도 모릅니다. 그냥 가는대로 가지요”한다면, 바보나 정신병자로 취급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번 죽고 그 후에 심판 받는 것은 정한 일이라"(히9:27)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늙어서도 죽고, 젊거나 어렸을 때도 죽을 수 있습니다.

내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어느 시인은 인간의 죽음에 대해 탄식하며 말하길

 

"  영웅도 죽고 열사도,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다 죽도다. 요단강물을 거스릴 자가 어디 있으며  西山落日 지는 해를 막을 자가 어디있나!

슬프도다, 죽는 길을 뉘 면할소냐! 고금 세계에 천만 사정이 꿈과 같이 지낸다.

 춘삼월에 피는 저 꽃은 시월에 짧은 목숨을 한탄하고 있구나! "


그렇습니다. 모든 인생은 들의 꽃과 같습니다

인생이란 마치 하룻길을 가는 나그네 같으며,

또한 조석으로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인생은 덧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덧없는 인생을 이렇게도 노래했습니다.

"내가 아기가 되어 울고 웃고 있을 때는 시간이 기어갔다.

 내가 소년이 되어 꿈속에서 좋아할 때에는 시간은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자 시간은 달음박질하였고

 내가 이제 백발이 되자 시간은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9-10)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잠간 동안 가는 중에도 눈물과 괴로움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근심과 걱정과 고통을 빼 놓는다면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것으로 버티어 나가는 듯합니다. 채제공(蔡済公)이란 사람이 말 하기를 “아기가 세상에 나오자 마자 우는 것은 인간이 세상에 떨어지자 마자 만가지 근심이 생기는 까닭이라.”하였습니다.


 인생살이 7-80을 살다가 마친다 하더라도 뒤돌아 보면 수고와 슬픔뿐인 것이 인생이요,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이사야도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시로 풀리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이사야40:6-8)고 하였습니다.

실로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인생의 영화는 풀잎의 꽃과 같은 것입니다.


 젊음을 누릴 때는 꿈과 용기와 힘이 솟아나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차지할 것과 같은

패기있고 아름다움 모습이지만 피었던 꽃이 떨어지듯이 젊음도 잠시입니다.

언젠가 길을 걷다가 길거리의 얼굴이 온 통 주름살과 머리는 온 통 백발에다

허리는 꼬부랑 할머니가 동냥을 하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 할머니도 아가씨 때는 싱싱하고 화장하고 멋부리고 다녔을텐데...

인생이란 별수없이 저렇게 늙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가사도 있습니다.

" 홍안 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英雄 豪傑 烈士들아 뽐내지 말아 流水같은 세월은 너를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는 너를 기다린다. 간다 간다 하더니 청춘이 가고요 온다온다 하더니 백발과 죽음이 왔도다. "  영웅 호걸, 열사, 홍안 소년 미인들도 세월이라는 인생의 수레를 비껴갈 수 없습니다.


 “형제들아 남은 때가 얼마 되지 못한고로 아내 있는 자는 없는 것 같이 하면 우는 자는 울지 않는 것 같이 하면 기뻐하는 자는 기뻐하지 않는 것같이 하며 사는 자는 없는 것같이 하며 이 세상을 슬때에 만족하게 쓰지 말라 대개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가는 것이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바라노라”(고전7:29-32).


인생의 덫

 필자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가을밤이면 쥐덫을 놓곤 했습니다. 한창 가을 추수로 인해서 마당에는 곡식들이 널려 있을 때 쥐들도 자기 때를 만난 듯 여기 저기서 몰려 옵니다.

 이때 큰 널빤지로 손수 쥐덫을 만들어서 땅에서 약 한뼘 정도 높게 설치하여 쥐덫 널빤지 위에 맷돌짝이나 큰 돌맹이를 얹어놓고 고정시킨 다음 좀더 좋은 먹이를 그 속에 놓아두면 쥐가 그 먹이를 먹으려고 쥐덫속에 들어와서 건드리게 되어 한 마리에서 더러는 두 세마리까지도 잡혔습니다. 그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정신 없이 뛰고 있을 때 그 때에 예상치 못한 불행이 그들을 휘몰아 간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들 마음속에 역사하는 악영인데(에베소서2:2-3)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靈)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욕심을 발동하여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항상 미끼를 줍니다.죄악의 낙을 주는것입니다.쥐덫에 걸린 쥐처럼 인간들은 죄의 노예로 결박하여 지옥으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내세

 사람에게 진정한 문제는 죽은 뒤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영생과 영벌을 받는 것입니다. 천국을 가는 사람도 있고 지옥을 가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이냐 지옥이냐 어디행 차를 탔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야 천당을 가는지 지옥을 가는지 누가 가본 사람이 있냐고 하면서...

來世 문제를 불문에 붙이는 인간이 태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핑계치 못하고  내세 문제를 여러가지 모양으로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현재를 보아서입니다.

현재가 있으면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면 미래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머니 복중에 십개월 있을때에 그 캄캄하고 부자유한 곳에 있을 그때 이 세상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였으나 실지로 나와 보니 이러한 세상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내세를 지금은 희미하게 알지만은 이 육신의 가죽을 벗어 버릴 때에는 알 것입니다. 죽음이란 이런 세상에서 저편 세상에 들어가는 門인 것입니다. 죽음은 새출발일 수도 있고 죽음은 영원한 고통과 끝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의 욕망이 증거합니다.

 누구나 악착스럽게도 애를 씁니다. 慾望이 있으면 대상이 있습니다. 食慾이 있으면 음식이 있고, 色慾이 있으면 이성이 있고 知慾이 있으면 학문이 있음같이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 누구나 生慾이 있으니 영생의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양심이 증거합니다.

죄인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의인의 마음은 참 평화가 있습니다.


넷째로 이 세상에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세계에 나타나는 인과보응, 즉 하나님의 공의는 내세를 증명합니다.

죄에는 현재 들어나 즉시 치르는 것도 있고, 뒤에 드러나 결과로 불행이 따라 오는 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다 드러나지 않아 악한 사람이 잘 사는 일도 있고 선한 사람이 힘든 일도 있지요. 그리고 의로운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호소할 곳이 없는가 하면, 불의한 자가 뻔뻔히 성공과 승리로 일생을 멀쩡히 지내는 일이 있으니 이것이 반드시 내세의 보응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다섯째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테반 집사님의 죽음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테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는데 스테반은 죽어가면서 “천국을 보고 천국의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어린양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죽으면서 두 마디 기도를 하였는데 첫 번째 기도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는 기도로 자신의 영혼을 천국에 계신 예수님께 맡기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죽으면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께 직접 기도한 것입니다.


 스테반집사가 돌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투성이가 되어도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천국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집사가 천국을 보고 하나님의 보좌와 그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죽어가면서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천국을 본 자들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환난이 닥쳐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스데반뿐 아니라 사도바울 계시록을 쓴 요한같은 이들은 살아서 천국을 본 사람들입니다.


여섯째, 우리의 눈이 모든 문제 보다도 우리의 구주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으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나니라(행17:31).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

말씀만 선포한 것이 아니라 친히 사람의 죽엄과 생명의 부활로 또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시며 우리의 중요한 인생의 사대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결론으로  "당신은 왜 사느냐?" 묻는다면

"나의 근본 조물주 하나님을 찾아 공경하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요 ,이 세상은 잘살아도 한세상 못살아도 한세상이고 이 세상은 예과이니 내세 본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다." 라고 대답할것입니다.

 李聖鳳,「愛的 講壇」(서울:明文堂,1987),p.186.


그래서 인생의 근본은 하나님이시오, 사는 목적은 진리로 사는 것이요 ,인생의 미래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이니 예수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사는 목적에 있어서 진리의 생활이요 예수는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죽음을 대비하라

인생살이 힘들 때는 긴 것같지만 영원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합니다. 마치 이런 시절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순식간에 일생이 다 가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인생의 종점이 언제 홀연히 찾아올지 아무도 예상치 못합니다. 불행과 죽음은 참으로 덫과 같이 돌연히 임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 땅에서 자기의 인생이 다하기 전에 반드시 예수를 믿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모든 사람은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전도서12:7). 이는 모든 사람은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죄에 대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9:27)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는 영원한 지옥 유황불못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은 자기의 죽음의 시기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전도서9:12)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로운 자라도 자기의 죽을 날을 알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모든 사람은  비로소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밤중에 큰 지진이 일어나면 피할 자가 없습니다. 이는 지진이 언제나 일어난다고 예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갑자기 옵니다. 결코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는 살고 죽는 권한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피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의 죽을 날을 미리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죽는 것도 본인이 원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리석게 이 세상에 천년만년 살 줄로 착각하고 전혀 내세를 준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가 군대생활할 때 보니 제대 한 달남겨 둔 고참들은 하루 하루 지날때마다 달력에다 29,28일 줄어드는 날짜를 가위표를 해갑니다. 하나님없이 하루 하루 가는 것은 점점 무덤에, 지옥에 가까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것이 미련한 인생이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형수가 지하에 있는 사형 집행장에 끌려 내려가다 계단을 잘못밟고 넘어질뻔 하자 “아이구 죽을뻔했다”라고 합니다. 몇분있다 죽을 인생도 이러합니다.


 사람들은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 음부에 내려가느니라”(욥기21:13)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를 알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욥21:14-15)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들의 복록이 그들의 손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욥21:6)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부자 한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해 풍년이 들자 그는 많은 수확을 거두어 창고를 크게 확장하고 여러해 동안 농사를 짓지 않아도 먹을만한 양싱을 장만해 놓고 자기 영혼에게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누가복음12:19)고 했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은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12:20)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돈을 모으기에만 힘쓰고 또 모아놓은 돈으로 그저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영혼의 구원과 멸망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곧 불행과 심판과 영원한 고통이 임할 것입니다. 사람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아 그것을 누리며 오래 살고 싶어해도 이는 사람의 욕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죽은 후에 좋은 곳으로 갈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필자는 이미 천국에 갈 준비를 다 끝내고, 지금은 세상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서시히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언젠가 필자를 부르시면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올라갑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는 사람을 향하여 야고보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4:14)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루속히 예수님을 믿고 구원함을 얻어 영생의 안정권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날 때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벌거벗고 나왔으니 벌거벗은 채로 갈 것이요, 빈 손으로 왔으니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재물만 모으기에 혈안이 되지 말고 내세를 위하여 착실하게 준비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갑시다.


이 세상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를 감옥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서는 범죄한 사람을 지옥 유황불못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21:8). 죄인이 가는 곳은 죽음이요,심판이요,지옥입니다.


그러나, 심판을 원치않으시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에덴(낙원)이란 동산에서 죄악과 불신이 없는 영원한 축복과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범죄함으로 그 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으며(사59:2)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타락하여 고생하고 유리하며 수고하고 애쓰는 것과 지옥의 심판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말씀에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라고 하셨으며,

 

또한 에스겔서 33장11절에는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하시면서 간곡하게 돌아올 것을 바라셨습니다.


또한 에스겔서18장23절에서는 “내가 어찌 악인(죄인)의 죽는 것(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고 하시므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지옥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신약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고 계신가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악과 불신 가운데서 떠나 하나님의 사람과 은혜 안에 들어오기를 거절하고 있으며 머뭇거리거나 지체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세상 죄악이 말세의 징조를 나타내고 있는 이 때에도 세상을 마감하지 않고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사망과 영원한 심판, 지옥의 형벌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미뤄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곧 당신과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돌이키므로 멸망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게 되기를 바라셔서 아직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마땅히 자기의 창조자 되시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를 믿고 그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며 하나님을 높여드리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근본 도리이고 삶의 목적입니다(전도서12:13).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