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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 주일예배<욘2:1-4. 니느웨와 다시스>

by 설렘심목 2020. 4. 9.

2020.04.05. 주일예배<2:1-4. 니느웨와 다시스>


[고급향수도 내 코가 막혀 있으면 헛일이고 산해진미가 앞에 쌓여있어도 속이 아파 먹지 못한다면 이것도 헛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각양 아름다운 것은 내 감각이 정상일 때 그 가치를 드러낸다. 영원한 생명을 담은 진리의 말씀도 내가 받지 못하고 믿지 않으면 모두 허망한 소설이 된다. 참과 거짓, 허와 실을 바로 안다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귀한 인생자산이다. 예수를 만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인도에 몸을 맡겨 그 몸이 주의 거룩한 처소가 되면 가장 진실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길을 가게 된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스라엘 여로보암 2, 주전 8세기경에 앗수르는 힘이 점점 쇠약해져서 기가 죽어 있었는데 거기다 두 번에 거친 악성질병이 나라를 쓸어 백성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이때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에 경고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선지자이고 니느웨는 바벨론의 수도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이나 앗수르에 갖는 적개심은 매우 큽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바벨론에 가서 회개를 외치라는지 요나는 심기가 불편합니다. 그래서 욥바에서 배를 타긴 탔는데 선교지인 동쪽 니느웨 방향이 아니라 서쪽 다시스로 가는 배에 타 맨 밑층으로 내려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다시스는 은금보석이 풍부해 솔로몬이 3년 한번 씩 가서 화려한 보석을 싣고 올 정도로 무역활동이 왕성해 매력적이고 그만큼 타락과 부패가 심한 곳으로 선교가 꼭 필요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요6:29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어디를 가든 거기는 고난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곧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가든지, 있던지, 보내든지 해야 거기가 천국, 하나님의 형통이 다스리는 샬롬의 현장인 것입니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위태로워지자 선원들이 어떠한 이유로 이 위험이 닥쳤는지 제비를 뽑습니다. 요나가 뽑혔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요나의 잘못이 분명합니다. 요나가 말합니다. 9절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이 풍랑으로 인한 급박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요나는 자신을 바닷물에 던지라고 자청합니다. 완전한 회개입니다. 완전한 회개는 완전한 옛사람의 청산과 새 삶의 출발을 끌어내는 위력이 있습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 하나님이 이미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속에서 사흘밤낮을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합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가 그렇게,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는 기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기도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들으시고 대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백성들의 신음을 귀 기울여 들으시는 하나님이신 줄 우리가 믿습니다. 모세를 애급에 보내신 것도 그 땅에서 학대받고 신음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의 고통과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그 아픔을 아셨기 때문이라고 출3: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니느웨는 택한 민족도 아니며 패역한 백성들이었으나 그들의 악독이 지나치자 요나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돌이킬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2:2절을 함께 읽습니다.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보고 듣고 반드시 대답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요나가 무서운 풍랑에 자신을 던지라고 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결코 쉽게 행할 수 없는 담대한 믿음의 본입니다. 이러한 담대한 믿음은 완전한 회개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완전한 회개는 완전한 죽음의 각오를 동반하는 결단을 말합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다시는 그러한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 죄와의 결별을 단호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향해서 실제로 몸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요나는 거기까지 갔습니다. 112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 내가 아노라 하니라.”아멘.

거듭 이르는 말씀이지만 만 가지 복 중에 깨닫는 복이 최고의 복입니다. 요나는 불순종 중에 고난이 닥치자 즉시 깨달았습니다. 깨닫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는 즉각 몸으로 회개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두려운 풍랑의 깜깜한 바다 가운데에 던지라고 자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던져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큰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 두셨다가 물에 던져진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짐승의 뼈도 다 녹여 흡수하는 위장 속에서 요나는 멀쩡한 몸으로 다만 회개의 아픈 기도를 했습니다. 진정 돌이킨 자의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시는 주님을 찬미합니다. 스올은 지옥이나 음부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불순종한 자가 죄로 인해 던져진 심판의 장소는 거기가 어디든 스올입니다. 심판의 장소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병원 응급실, 어떤 이는 형무소, 심지어는 값비싼 자기 집의 안방 따듯한 벽난로 앞 명품 소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소가 문제는 아닙니다. 고통은 어디서든 참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회개하는 자가 정녕 진실로 돌이키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게 함으로 진정한 회개를 이룹니다. 그 회개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물고기를 준비하셨고 물고기속에서 죽지 않고 응답받는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2.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요나의 고백을 우리 함께 잘 살펴보기 원합니다. 본문 23절에서 요나는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물이 나를 둘렀고요나가 바다에 던져진 것을 요나는 자신이 회개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던지셨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요나의 아름다운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길 원합니다. 요나는 자신 안에 회개할 갸륵함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회개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 줄 알고 고백합니다. 놀라운 겸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무능함과 이기심 외에 쓸 만한 게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돌이킬 마음이 복인 줄 믿습니다. 이렇게 겸손했기에 요나는 그 생명을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짐 받게 된 것입니다.

4절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요나의 믿음입니다. 건강한 믿음입니다. 유약한 믿음은 시험 앞에서 흔들려 돌아서거나 실망합니다. 건강한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잘 버티고 믿음의 힘으로 책망을 받아 혼쭐이 나도 다시 일어나 성소를 향합니다. 넘어져도 일어나기를 계속하는 힘 있는 믿음, 요나의 믿음입니다. 이 요나의 힘찬 믿음위에 하나님이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3. 갇힌 자를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18절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라고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설명합니다. 본문 210절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의 자유는 요나의 것이 아닙니다. 사명완수를 위한 자유였고 그 자유는 요나의 생명을 보장하신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알아야 하고 또 행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건강과 생명이 주님 손에 붙잡혀 확실한 보장 가운데 있으려면 그것은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오직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사명을 감당하려 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요나를 풀어 자유롭게 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몸과 영혼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건강과 물질을 주신 주님의 목적을 깨닫고 우리의 목표도 그것이 되길 노력하면 그게 바로 만복의 기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늘 원하고 기다리십니다. 우리도 역시 주님 곁에 바짝 다가서서 귀한 사역자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오히려 마귀는 조롱합니다. 네 하나님 어디 있냐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직은 다 걷히지 않은 안개 같은 벽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니느웨와 요나의 다시스, 우리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주를 위해 걷어내야 할 휘장이 있습니다. 요나의 고백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오늘 봅니다. 언제나 우리 신음소리에 귀 기울여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신 줄 이제 우리가 믿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인간 쪽에 있다는 것 잊어선 안 됩니다. 정답은 어디에 있습니까? , 정답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속히 이뤄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닮아가는 신앙인격과 자신을 쳐서 낮추는 거기, 주님의 다스림이 머문 거기서 정답이 열립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면 우린 즉시 낮아져 보다 겸손해 질 것입니다. 기꺼이 몸을 드려 헌신할 수 있을 겁니다. 요나처럼 자원하여 회개로 바다에 풍덩 빠질 수 있습니다. 억지로 끌려 던져지면 사망의 수렁이지만 믿고 몸을 드리면 거기는 은혜의 바다가 됩니다. 그 믿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영생하시는 말씀에서 와야 합니다. 주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들음에서 믿음이 나니 예배에 모든 것을 거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에 여러분이 참여하고 있다는 이 사실 하나가 인생의 가장 큰 복인 줄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을 만나는 최상최선의 시간입니다. 예배하는 여러분을 예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