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9 주일예배<히3:7-19. 하나님의 안식>
[남녀의 사랑은 대부분 “이렇게 될 줄은 알면서도 당신이 무조건 좋았어요.”라는 노래가사처럼 감정이 이성을 억누를 때 일어나는 본능적 끌림과 착시이다. 이는 목이 말라 허덕이는 사슴처럼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일이 시작된다. 그렇게 후손이 태어나고 세대가 바뀌어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원형으로써 희생을 바탕으로 출발한다. 널 위해 내가 아파도 그래서 네가 아프지 않고 행복하다면 내 아픔 따위는 차라리 감사의 제목이 될 것이며 견딜만한 것이 된다. 이 참사랑을 하나님은 만민이 보도록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로 계시하셨다. 보고 인지하는 전시가 아니라 다 보되 다 아는 것이 아니요, 다 알아도 다 믿는 것이 아닌 계시적 선언이었다.]
지난 역사, 성공했던 실패였든 과거만큼 미래를 정확히 일러주는 스승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한 민족의 역사를 벗어나 오늘 우리 교회와 가정과 개인이 가야 할 믿음의 분명한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택한 당신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후 인생이 과연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기 시작한 구약성경입니다. 애급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 받는 길은 그 신분에 있어서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옮기는 큰 격차를 갖는 만큼 많은 과정을 거칩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으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예배한다는 것으로 감사합니다. 중국이나 북한 변방에 가보지 못했어도 이만하면 참 복된 인생임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사는 우리들의 신분이 북한 주민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이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중국만 가도 천국이고 중국에서는 한국에 가면 살 길이 열렸다고들 합니다. 2년만 고생하면 돌아가 고급주택을 마련합니다. 우리는 핵위협, 이념전쟁과 갈등이 없는 저 하와이나 스위스 알프스 산자락아래 복지천국 어느 그림 같은 동네에서 노후를 보내는 게 로망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 이 땅에서 육체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 비해 장차 가게 될 그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거기, 천국의 삶은 여기와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사모합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 가게 될 약속의 땅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걸맞는 안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이란 말은 하나님이 언약하신 약속의 땅에서 이뤄질 평화의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평화의 삶이 약속의 땅에서 이뤄질 안식과 함께 주어지는데 그것은 순종하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18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한절씩 살피며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기로 합니다.
7-1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부드럽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 과거 믿음에 실패한 조상들이 하던 것처럼 불신앙으로 인해 안식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 하나님이 안보이면 즉시 찾아드는 게 불안과 공포와 염려입니다. 여기서 우린 불신앙의 정체를 봐야 합니다.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할까? 본문 9절엔 조상들이 분명히 40년간 하나님의 활동을 눈으로 보고 증거된 경험이 있는데도 거역했다고 합니다. 불순종은 인간의 잣대 곧 자기생각과 규모와 기대치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할 때 흔히 일어나는 어긋남입니다. 내가 이정도 기도했고 이만한 노력을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최소한 이러저러한 정도는 열어주실 거라는 기대, 이 기대가 무너질 때 불순종하게 됩니다. 주지할 사실은 불순종이 드러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게 아니라 자기기준에 맞춘 순종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미숙함입니다. 내 성실과 최선이 과연 주께서 바라시는 건가? 아니면 혹 내 의식구조와 관성적 사고에서 해석된 순종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순종의 헷갈림을 줄이기 위해 호세아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 들어가 그 자비하심과 명철과 엄위함을 바로 알아야 그분의 깊고도 기뻐하시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에선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이유가 인간의 마음이 미혹돼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생들이 항상 하나님 외 다른 것에 눈이 팔려 하나님 밖에서도 더 나은 무엇을 취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질 때 하나님만이 길이라는 것을 놓치게 되는데, 이때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며 그때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 즉 평화와 부요가 깨지게 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3-15절입니다. 아직 회개의 기회가 있을 때 서로 권면하고 일깨워 주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닫지 않도록 하라. 처음 예수님 믿기 시작했을 때 가진 어여쁜 마음을 흔들리지 말고 굳게 잡아 지금 이 경고를 유의하여 듣고 너희 선조가 했던 고집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16-18절입니다. 하나님말씀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광야에서 시체로 엎드려진 자가 누구인가? 애급에서 나온 자들이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40년간 모든 것을 베푸셨는데 늘 불순종해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 불순종한 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해 들이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을 진노케 함으로 뻔히 눈에 보이는 가나안 땅을 40년이나 걸려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열두지파의 대표들을 보내어 정탐하게 했을 때 이들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빼고는 모두 낙심하고 절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불신앙의 열 지파 대표들과 그들을 따르는 일당들을 재앙으로 죽이셨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그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가네스바데아의 실패라고 일컫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가데스바네아의 실패는 거듭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난관을 뚫고 나아가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들은 언약대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는 전쟁이 그친 평화와 풍요가 있습니다. 화목과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이 됩니다.
1. 현실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고 느끼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믿고 느끼며 이해합니다. 언제나 믿음이 앞서가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항상 옆에 계신 것을 인정해드림으로 많은 것들을 알아갑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받아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안식, 즉 하나님이 인도하신 약속의 땅에서 누리는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곁들어 일러드립니다. 늘 들어왔듯이 천국과 언약의 땅은 꼭 몸을 버린 사후만이 아닙니다. 우린 여기서 몸을 입은 채 주님나라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분양 전에 모델하우스가 있고 음식매장에도 시식코너가 있으며 화장품도 샘플을 제공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약속이 아닙니까? 거기 가기 전 육체를 가진 채 경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면 그는 결코 주를 배신하거나 주님의 사역의 주체인 교회와 자신을 추슬러 소홀하지 않을 줄 압니다. 여기서 주의할 일은 신비현상이라는 것 거듭 지적합니다. 오직 말씀으로 받는 성령의 감동과 인격적 교감을 통해 주님을 경험하고 그 깊은 사랑에 빠지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임마누엘의 믿음을 가진 코람 데오의 사람, 주님 눈앞에 살면서 언제나 동행의 손길을 믿음으로 느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결코 혼자가 아닌 것을 알기에 외로워하거나 서러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여도 서운해 하거나 억울해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보다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영원한 안식의 품이 비교하지 못할 큰 영광인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3. 순종의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수천 번의 제사보다 순종을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온 중심과 삶을 아낌없이 헌신하고 그 분의 말씀에 늘 달려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순종의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의 품을 사모하며 믿고 그 영원한 최고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거기에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안식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평강이요, 영원한 평화와 안식입니다. 거기 약속의 땅이 마련돼 있고 진정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물이나 인격이나 도덕이나 명예나 건강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오직 주님을 잘 믿는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동행의 삶을 살며 주님께 합당한 자들이 들어가고 순종하는 기쁨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델하우스, 시식코너, 현장체험, 샘플화장품, 이제 여기서 몸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체험해 남은 육신의 날을 믿음으로 충분히 이겨서 언제나 하나님의 안식과 풍요가 넘치는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우리 모두이기 기대합니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세상과 육신과 자신을 이길 수 없는 연약이 우릴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주님만 붙들고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나약한 믿음을 불쌍히 여기시니 주여, 여기 이 땅에서 그 나라를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