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8.10 독도의 기적'! 58년전 8월10일, 이승만 대통령은 독도 등대 점등식을 세계에 공개했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 했다.
이번에도 8월 10일! 같은 날에 같은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나. 58년전 바로 이날은 ‘독도는 우리땅’임을 세계에 알린 날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깜짝 방문’한 이날,
이승만대통령은 1954년 8월10일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미리 독도에 등대를 세워놓고 미국 방문 일정에 맞춰 전세계를 향해 등대 점등식을 열었던 것이다. 일본과 미국이 깜짝 놀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올해는 ‘평화선’을 선포한지 꼭 60주년! 이승만 대통령이 독도를 포함한 영해를 ‘평화선’으로 선포(1952년 1월18일)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대마도를 도둑질했던 수법으로 진작 독도를 먹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승만은 독도의 등대점등식을 왜 하필 방미 기간에 하라고 지시했던가. 1954년은 6.25남침전쟁이 휴전(1953년7월27일)한 일년 후. 미국은 한일우호관계 회복을 극동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이승만 대통령을 공식 초청한다. 국제공산주의를 내세워 동유럽과 중국 대륙, 한반도 절반을 차지한 소련의 신식민주의 패권을 뒤늦게 깨달은 미국. 냉전시대가 본격화되자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 한국과 일본을 화해시켜야만 했다. 이승만은 그러나 독립운동과 건국준비 때부터 줄곧 미국의 ‘좌우합작’ 압력 등을 거부해온 불굴의 지도자가 아닌가. 게다가 전쟁중에도 일본을 집중 지원하는 미국이 싫었다. 전쟁물자 공급을 도맡은 일본은 패전 10년도 안되어 일약 떼부자가 되다니. 그것도 한국을 강점했던 범죄자가 한국전쟁을 이용해 경제부흥을! “이게 무슨 돼먹지 않은 소리야? 정상회담 필요없다. 백악관에 안간다.”
1954년 7월30일 오전 10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2차 회담이 끝나게 되면 발표할 공 동성명 문안을 보자 이승만은 분노했다.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에 우호적이고...운운’하는 대목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들이 날 불러놓고 올가미를 씌우려는 모양인데... 이러면 아이크 만나지 않겠다.”
백악관의 독촉과 측근들의 건의에 마지못한 듯 이승만은 뒤늦게 아이크(아이젠하워)와 마주 앉았다. 아이크는 한일국교수립이 시급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사전에 일본과 합의한 뒤였다. “이대로는 안된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일본과는 상종 안하겠다.”
이승만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놀란 아이크는 화를 내며 옆방으로 가버렸다. 진작부터 화났던 이승만이 소리쳤다. “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 회담은 결렬 직전. 화를 삭인 아이크가 다시 회담장으로 나왔다. 이번엔 이승만이 벌떡 일어섰다. “먼저 간다. 외신기자클럽 연설 준비 때문에...” 백악관을 나와 버렸다.
“겁쟁이들이 하나님이 다 차려준 밥상을 걷어찼다. 한반도 통일전쟁은 이제부터다.” 마중 나왔던 닉슨 부통령의 얼굴이 벌개졌다. 7월28일 미국 양원합동 의회 연설은 미국정부와 미국민들의 심장을 흔들었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한반도에서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피는 현명치 못한 사람들의 휴전으로 헛되고 말았습니다. 세계의 자유인들이 살 길은 오직 하나, 그것은 ‘악의 힘’에 유화적이거나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중국을 다시 찾지 못하면, 자유세계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바보같은 휴전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친구들이어, 공산주의를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 마시오. 치명적인 바이러스입니다. 퇴치 투쟁에 나서야만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내 주장이 강경합니까?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누구든지 유화적이면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끔직한 세력입니다. 자,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궐기합시다!”
휴전을 결사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염원했던 이승만은 ‘성스러운 통일전쟁’을 즉시 다시 하자고 거듭 주장했다. 매카시 의원의 공산당 고발로 반공분위기가 고조되어있던 당시 미국회의원들은 33차례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소련 간첩으로 체포된 미국무성 실세 알저 히스(루즈벨트 대통령 측근)가 유죄판결을 받은 직후이기도 했다.
이튿날 이승만은 미리 준비한대로 판문점의 ‘중립국 감시위원단의 철수’와 ‘휴전협정 백지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직접 발표했다. 언론들은 바빴다. '외교의 달인' 이승만 특유의 현장 외교 전술은 눈부실 정도였다. 양국에서 동시 발표된 한미정상간의 공동성명서에는 ‘한일관계’에 대한 단어가 한 개도 없었다. 한국이 미국에 요청한 군사-경제원조 7억달라도 물론 합의되었다.
그때, 일본의 '독도 장난'이 있었다. 뉴욕타임즈(7월31일자)에 ‘다케시마를 한국이 점령, 일본 주장’이란 제목이 붙은 기사가 2개면에 걸쳐 실렸다. 이승만도 이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100만인파의 환호속에 ‘영웅 퍼레이드’를 벌인 이승만은 마지막 기착지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측근에게 지시했다. “준비는 끝났는가. 등대에 불을 켜라.”
1954년 8월10일, 무인도 독도에 등대불이 켜졌다.
대한민국 국토의 동쪽 끝 땅임을 알리는 등대불! 일본에 남의 땅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등불이었다.
1948년 건국과 동시에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수십차례 요구했던 이승만. 김일성의 6.25남침으로 물거품 되자 일본이 탐내는 독도에 등대를 건설하고 점등식을 준비해 왔던 이승만의 빅카드. 한일관계 회복을 밀어붙이는 미국에게 보란듯이 미국 방문 중에 ‘독도는 한국땅’임을 선포하는 ‘깜짝 외교 쇼’를 벌였던 것이다. 국토방위는 전쟁만으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통치자의 의지와 국민의 애국심이 등대불로 불타야 하는 것!
우연의 일치일까. 58년 시차를 둔 같은 날 두 대통령의 독도 지키기! 이승만과 이명박의 ‘8.10 역사 이벤트’!! 독도 이력서에 5천만 소유주의 지워지지 않을 인증이 또 찍혔다. 선대가 물려준 영토를 지키는 것은 ‘국가보위’ 첫 째 의무다. 그 소중한 우리 땅 독도 앞바다를 일본에게 ‘공동수역’으로 열어 준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도대체 무슨 까닭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에 무슨 책 잡힌 것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뜬 금 없이 일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다니... 나라 땅을 적에게 내주는 ‘친일파’는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 인보길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공동대표 MB식 克日스타일! 8월의 승전보! 이승만이 지킨 독도, DJ가 日에 양보! 이승만 '평화선'-박정희 '전관수역' ->김대중 '어업협정'서 바다 내줘 2012년 8월 10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아주 중요한 날이 되었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이 현직대통령으로서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자기나라 땅에 간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으나, 십 수 년 전부터 집요하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강대국 일본과의 관계를 놓고 볼 때 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전직대통령들이 껄끄럽게 여겼거나 작전상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독도를 방문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일제 36년간 한반도를 지배하다 2차대전에서 패망하고 쫓겨간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떳떳하게 주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김대중정부 때 체결한 소위 신한일어업협정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1952년 1월 18일, 인접해양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 즉 이승만 라인에서도 독도는 우리 영토임을 만천하에 공포했었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5년 6월 22일에 체결된 한일 어업협정에서도 독도는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어업수역)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러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8년 9월 25일 소위 신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를 중간수역(공동관리수역)으로 빼버리고 나면서, 일본은 이를 계기로 끈질기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독도영유권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떼나 써보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독도가 중간수역 즉 한일 공동관리수역으로 빠져나가자 법적인 논리적인 근거가 생겼다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시작,. 그러더니 8년 전 부터는 일본 국방백서에 아예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명기를 해놨다고 하니, 오늘날 독도 영유권 문제는 김대중전대통령이 그 빌미를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과거의 전직 대통령이 잘못 저지른 일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였기에 이대통령이 직접 팔 걷어부치고 독도를 전격 방문하여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임을 만천하에 각인 시켰습니다. 현정부에서 하는 일이면 무조건 반대부터하고 비난하는 이들은 긁어부스럼 만들었다며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을 받게 하려는데 일조했다거나 대일본 카드를 다 써버렸다며 비난을 일삼습니다. 도대체 저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대북 이슈에서는 북한 편들고, 대일 이슈에서는 일본 편을 들어주니 어느 나라 국민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토문제에서는 단호한 입장이 필요합니다. 다른 나라가 영토를 침탈하겠다는데도 그냥 기회나 엿보고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불리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나 하고 앉아 있어서는, 영토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도 대한민국 영토라는 역사적 기록물들이 전 세계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전쟁이나 물리력으로 영토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법입니다. 패망한 일본이 독도도 되돌려주는 것이 합당하고, 1998년까지는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해방후부터만 치더라도 70여 년 간 실효적 지배를 해왔는데 왜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불리하다고 지레 짐작, 겁부터 먹어왔었는지 지금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정서와는 다르게 독도 문제에 대처해 온 것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세계 2위였던 경제대국 일본하고 독도 영유권 가지고 분쟁하다가 지게 되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까봐서 겁을 먹고 이러저러 핑계를 대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에 반해 이대통령은 단호하게 영토수호 의지를 세계 만방에 보여주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이런 정도의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수 십 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에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힘겨워 하던 차에 이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인해 한 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함을 온 국민들이 느꼈습니다. 그동안 역대 정권들은 반일감정만 앞세워왔었지 시원한 대응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이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반일(反日)이 아닌 극일(克日)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보여준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심한 일이 벌어 졌다. 대통령 하겠다는 분들에게 기자가 대통령 당선되면 독도에 갈것이냐고 물었더니.. 박근혜후보와 김두관후보는 간다고 했고 한분은 대통령 출마도 아리송한데 역시나 이것도 아리송이고 나머지 대통령 하겠다고 서로 내가 적임자라고 잘난체 하시는 분들은 즉답을 피했다고 하는데...그분들 어디나라 사시는 분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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