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사제단은 어떤 단체인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폭로로 6·10 민주화 항쟁에 기여
민주화 이후 좌경화 변질 -
1989년 문규현 신부 불법入北
국보법 폐지·反美 운동 앞장, 제주 해군기지 반대에도 개입
사제단 회원은 약 3~500, 뜻
다르면 교단 지도부에 反旗한국주교의 공식 지도기구인 주교회의로부터 인준받지 않은 임의 단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7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을 한 뒤 구속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 김승훈·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젊은 사제들과 평신도 등 1200여명이 그해 9월 서울 명동성당에서 시국 선언을 발표하면서 정의구현사제단이 출범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이후 '민주구국선언문' 발표, 김지하 시인 구명 운동, 인혁당 사건 진상 규명 운동 등을 전개했다. 유신과 제5공화국으로 이어지는 독재 시대에 민주화와 인권의 보루로서 정의구현사제단의 명성은 1980년대 들어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 진상 규명 운동을 통해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1987년 5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조작을 폭로해서 6·10 항쟁의 도화선을 당김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50대 신부들이 실무 책임을 맡고 있지만 정의구현사제단의 실질적 주역은 여전히 창립 때부터 참여해온 원로 그룹이다. 초창기 사제단의 '투 톱' 중 김승훈 신부는 2003년 세상을 떠났지만 함세웅(71) 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설립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원장으로 사제단의 대부(代父)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원의 이사장인 김병상(81) 몬시뇰과 부이사장인 송기인(75) 신부, 이사를 맡고 있는 심용섭(74), 안충석(74), 양홍(73), 황상근(72) 신부 등도 '사제단 1세대'의 중추다.
정의구현사제단은 한국 천주교의 공식 지도 기구인 주교회의로부터 인준받지 않은 임의 단체이다. 엄격한 위계질서를 갖고 있는 천주교는 모든 산하단체가 주교들의 통제를 받지만 사제단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때로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 천주교 최고 지도부에 반기를 든다. 2010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4대강 찬반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다"고 발언하자 사제단은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사제단 원로들은 '교구장 용퇴'를 요구했다. 함세웅 신부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 김수환 추기경이 "탄핵 문제로 국론이 분열돼서는 안 된다"며 촛불 행사 자제를 당부했을 때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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