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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노래.Old Pop

박인환의 木馬와 淑女

by 설렘심목 2013. 9. 3.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은 1950년대를 극명하게 살다간 시인입니다.

비록 31세의 짧은 생애를 마쳤지만 온 몸으로 불태운 그의 詩魂은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님은 지금도 모든 이의 가슴에 사랑받는 명동의 연인으로 
영원한 명동 백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유작시처럼 살아있는 우리들의 푸른 시그널이 되어.....

주점에서 막걸리를 저으며
詩를 읊조려 보던 그시절이 생각납니다.

 

 


                               뭉클한 세상사. 세월은 오고 또 가고... 만나고 헤어지고..

                     미라보 다리. 세느강은 어디로.. 사랑은 흐릅디다 그려.

                파란 가을 하늘에 싸늘한 바람 불어오면
                        낙엽에 술잔 뿌리며 그대 생각하리라.

                                  붉은 단풍물이 주루룩 다시 심장을 물들인다 하여도...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厭世主義, pessimism)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낡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木馬 와 淑女 - 박인희 낭송

 


 

사진:헤르만 헷세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고 들어본 목마와 숙녀, 박인희의 낭랑한 목소리로 처량하게 젊은이들의 고독을 대변하듯 음률을 토설했기에 목로주점을 찾든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은 만 30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한 천재시인 박인환이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동족 간 살상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 인생에 대한 허무와 애상을 노래한 시로 유명하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가 태어 난 정확한 시기는 1950년 6월 6.25전쟁 직후의 어둡고 암울한

당시의 분위기와 시대상을 반영한 탓에 우울하고 적막함이 곳곳에 묻어 있다.

시에 등장하는 목마는 동심을 상징하고 숙녀는 버지니아 울프를 상징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과연 누구일까?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한 충격으로 여러 차례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이는 등의

비극적 인생을 살다가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영국 여류 소설가로 어쩌면 박인환이 버지니아 울프를 닮으려고 한 건 아닌지...


떠나가려는 가을에 곳곳에 단풍이 교태를 부리지만 떨어진 낙옆을 밟으며 쓸쓸함과 고독을 가져오며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늦 가을에 어울리는것 같은 詩다.

 


 

 

눈을 털며 주막에 들고 싶었던 청년, 순백의 영혼...

이제는 로맨스그레이를 바라며

빛바랜 사진첩에나 갇혀 있는가?

무엇이 참인가 목마르게 찾아 헤매던 날들.

휘휘 손을 내저어 밤새워 찾아봐도

뵈는 건 빈 술잔 뿐이었다.

 

참 자유란 무엇인가

무엇으로 우리는 자유할 수 있을까?

 

진리와 자유를 목마르게 찾아도 갈증만 더하던 날에

그것은 놀랍게도 많은 것들을 짓밟고

어느 날 내 안에서 고요히 소리치고 있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