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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식 칼럼] '김정은의 核'보다 심각한 문제들-안보불감증

by 설렘심목 2013. 2. 27.

[박두식 칼럼] '김정은의 核'보다 심각한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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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3:04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 상태… 우리는 이것을 막거나 대응할 실질적 방안 없다는 사실 드러나

그런데도 누구도 이 상황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이게 새 정부가 떠안은 안보 현실

박두식 정치부장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날, 조선일보 정치부는 비상이 걸렸다.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북한은 보름 전부터 핵실험을 예고했었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후 한두 달 이내에 핵실험을 했던 과거의 예를 보면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언제 하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였다.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사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3차 핵실험이 던져준 충격은 1·2차 핵실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의 핵무장 역시 오래전에 예고된 시나리오에 따라 가고 있다는 게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다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모두 이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해 왔을 뿐이다.

조선일보 정치부가 총동원돼 한·미 정부의 전·현직 관리들,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을 두루 인터뷰한 것은 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우리에게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방법이 과연 있는 건지, 북의 핵무장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의 대응 조치는 무엇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그 결과는 북한 핵실험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누구도 자신 있게 답(答)을 내놓지 못했다. '남북대화 계속' '중국을 통한 북한 설득'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 가입 검토' '전술핵 재배치' '독자적인 핵무장' 등 여러 의견이 나왔다. 하나같이 성공 확률이 높지 않거나, 치러야 할 대가가 엄청난 탓에 의견을 내는 사람조차 주저하는 듯했다. 본래 답이 없는 문제를 놓고 해법을 찾겠다고 머리를 짜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우리는 북한 핵 앞에 무방비로, 벌거벗은 채 놓여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안보 상황은 국가적 재난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이 68년 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폭(原爆)의 절반 수준인 TNT 7000t 정도의 규모인 만큼 핵무장까지는 시간이 남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장거리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북한 핵 문제를 임박한 위협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핵실험의 폭발력은 실험 계획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는 것이고, 지진파의 규모만 갖고 폭발력을 측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3번의 실험을 통해 북한이 상당 정도 핵 능력을 끌어올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평가절하한다 해도 북한은 언제든 서울의 주요 시설을 마비시키고, 대량 인명 살상이 가능한 수준의 폭발력을 갖춘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010년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두 동강 났을 때 초반에는 누구도 '북한의 소행'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당시 정부도 "예단하지 말라"고 했었다. 서해의 조류(潮流)와 수심, 폭침 당시의 상황이 도저히 군사적 도발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실제 이런 유(類)의 공격은 세계 해전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해내는 것이 북한 권력이고 북한 군부다. 북한이 우리를 향해 핵 공격을 결정한다면 그 방법이 꼭 미사일이나 비행체를 통한 것일 필요가 없다. 북한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상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집단이다.

핵은 실제 사용하기 위해 갖고 있는 무기가 아니다. 핵 보유는 상대의 핵 공격에 대한 억지(抑止) 차원이라는 것이 60년 넘은 국제사회의 정설이다. 이런 룰이 적용될 수 없는 경우가 북한이다. 올해 29세가 되는 북한 권력자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북한 내부 상황은 말 그대로 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 대량살상무기들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안보 현실이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계자, 그리고 국민까지 이 현실을 정면으로 보려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방문 앞까지 닥친 위기를 보고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불감(不感)의 단계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는 이 같은 북한 핵위기 속에서 출발했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갈리게 되는 결정적 사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도 통한(痛恨)의 심정을 감추지 못했던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박 대통령에게 북한 핵 문제가 그런 사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이 이 문제만큼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대선 때의 공약을 고집하지 말고 실질적인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 그 출발은 국민과 함께 우리의 안보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