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찌만행과 소련 빨치산의 처형
동료 여성의 밀고로 나치에게 잡혀 만행을 비웃는 또 한명의 희생자가 교수되고 있다 소련에 이용당하여 빨치산활동을 하다죽는다 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달게하고
독일군1명이 당하면 프랑스에서는10 배의인명을 앙갚음으로사살시켰다. 소련에서는20 배의 보복처형을 했었다. 결과적으로 해방이 되었던양,독일군을 처음 환호하던 우크라이나인들도 스탈린제국의 붉은군대보다 더위험한 악랄한 인종집단임을 곧 깨닫는다. 이러한 잔학한 인종정책으로 독일군은 점령지사방에 ,적개심으로 똘똘 뭉친 적군을심는 역할을하여 일선에서 멀어진 후방사이에 광활한 러시아 곳곳의 숲속에서, 쉴새없이 악착같은 소련빨치산들의 습격을받았다. 독일군은 소련정규군보다 더골치아픈 독일군의 목숨을노리는 소련빨치산들과의 끊임없는 2중고의 피해를입고 끔찍한 쌍방의 살륙전을 반복해야만 했다. 1942년10월 14일 우크라이나 미조크(Mizoch) 에서 점령군 독일의 또다른 세력인 악명높은 나치의 비밀경찰 , 게슈타포에게 가혹하고 처절한 인종범죄를 당해야했다. 점령지의 유태인들은 모조리 색출되어 격리되었으며 노동력 제공이 가능한 젊은층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학살 당했다. 또한 독소전에서 잡혀온 러시아의 전쟁포로와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젊은 노동인력을 대거 독일의 군수품공장에 사역 목적으로 강제로 차출되어 독일 각지로 송출되었다. 벨라루시에서는 민스크 게토가 제일 대표적인 유태인집단 격리지역이었다. 이곳에서는 처음부터 저항이 없었던 폴란드 게토와는 달리 유태인들을 격리후 곧바로 유태인들의 봉기가 일어났는데 독일군은 1941년 8월 보름기간동안 이곳에서 5000여명의 유태인들을 학살시켰다. 독일군은 민스크에서 파르티잔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민간인들도 전시 파르티잔 동조 본보기로 대단위로 학살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독일군의 만행으로 반감을 가진 벨라루시인들은 공산주의자가 되어 파르티잔에 가담하게된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3년기간동안 벨라루시가 소련군에 해방이되기전까지 약 50여만명의 벨로루시인이 파르티잔에 가담하여 철로폭파와 후방교란의 게릴라전으로 활약했다. 벨라루시의 파르티잔들은 1412일 동안 독일군을 상대하여 벌였던 전투로 독일군 11128명을 사살시켰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제일 잘 알려져있는 악명높은 나치독일의 유태인 집단학살의 사례는 1942년 10월14일에 자행된 Mizoch 에서의 유태인 부녀자와 어린이들을 대량학살한 사건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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