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과 행동이 행복을 부른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 시대를 넘어 인류의 고민과 사색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2300년 전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의 고민도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행복한 삶에 대한 그의 고민과 해법이 담긴 책이 바로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이다.
그의 철학적 고민을 읽노라면, 마치 현대의 어느 철학 교수의 담론인 듯 착각이 들 정도로, 그가 인식한 삶의 모습들과 탐구의 내용들이 시공을 뛰어넘어 현재의 우리 삶의 모습과 인간의 속성에 그대로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민하고 깊이 있는 통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eudaimonia)은 ‘좋은 것’, ‘최고 선(善)’ 이다. 행복은 그것 자체만 추구해도 되는 완결성, 자족성을 갖는다. 다른 어떤 것도 곁가지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좋음(agaton)’은 모두 행복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을 외적인 좋음, 영혼에 관계된 좋음, 육체에 관련된 좋음으로 유형화한다. 행복에 이르는 좋음의 길이 여럿인 셈이다.
공통적인 점은 어떤 길로 행복에 다가가든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탁월성(arete)이다. ‘가장 좋음’만이 행복과 연결된다. 특히 우리가 인간적인 탁월성을 말할 때는 육체의 탁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탁월성을 말하는 것이다. 탁월성은 감정(pathos), 능력(dynamis)의 영역이라기보다 품성상태(hexis)의 수준을 말한다.
영혼은 이성(logos)을 가진 부분과 이성이 없는 부분을 포괄한다. 이성이 작동하는 영역에서 탁월성은 지적 탁월성과 성격적 탁월성으로 나뉜다. 지적 탁월성은 학습에 의해, 성격적 탁월성은 좋은 행위(praxis)가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길러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즐거움과 고통에 관련된 성격적 탁월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다양한 욕망과 즐거움, 고통에 대한 탐닉이나 회피 등의 선택적 상황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용의 상태가 합리적 선택일 수 있으며, 이런 품성이 최고의 탁월성이며 이는 곧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갖가지 미혹에 빠질 때 늘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선 경험이 많지 않은가? 그때 어떤 욕구, 즐거움을 선택을 하느냐는 바로 자신의 품성과 이성의 수준에 달려 있고, 그에 따라 행복의 빛깔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성격적 탁월성을 갖춰야 하고, 그 탁월성은 중용으로 달성된다. 플라톤 역시 대화편 <필레보스>에서 적도(適度: to metrion)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중용은 지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는 상태이다.
감정의 영역에서 이런 중용을 취하는 일은 쉽지 않다. 두려운 감정이 일어날 때 지나치게 대응하는 것은 넘치는 것으로 무모함이지만 비겁하게 구는 것은 모자람이다. 이때의 적정한 중용의 감정이 바로 ‘용기’이다. 즐거움과 고통과 관련해 넘치면 '무절제', 모자라면 '목석 같음‘이 되고 만다. 여기서 ’절제‘가 중용이 된다.
탁월한 품성은 성장 과정에서 여러 감성과 행동의 경험과 학습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감정과 행위들이 반복해서 이루어지도록 습관화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행복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 습관에 달렸다. 탁월한 품성을 기르고 스스로 고귀하고 소중한 것에서 중용의 즐거움을 찾아 이를 실천하는 것에 익숙할 때 행복은 어느덧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미래한국)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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