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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necessariis unitatem...
"In necessariis unitatem, in non-necessariis libertatem, in utrisque caritatem!"
("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자유를, 양자에 있어서 사랑을!")
흔히 어거스틴의 좌우명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이 문장은,
실제로는 훨씬 후대의 무명의 신학자인 멜데니우스가 한 말이다.
이 문장은 1620년대 독일의 루터파 교회들과 개혁파 교회들의 온건한 신학자들 사이에서
발표되었고, 잉글랜드의 온건한 신학자들 사이에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17세기는 교회사적으로 정통주의 교리 논쟁의 시대였는데, 정통과 이단을 구분 짓고,
그 결과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도,
이런 통합적인 사고를 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기독교의 희망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필립샤프, 교회사 7, 독일종교개혁, 크리스챤다이제스트 pp. 542-546. 참조)
삼위일체 논쟁을 비롯하여 교회사에 나타난 주요한 논쟁들은
심지어 종교개혁 논쟁들까지도,
겉으로 보기에 우리가 국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전투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교회사의 위대한 논쟁들은 진리를 위한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인들의 이전투구나 목사-장로 간의 세력다툼과도 그 궤를 달리 한다.
진리를 위한 투쟁이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대외적으로 명분 내걸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명분이 분명하다면 즐겁게 싸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교회의 역사에는 진실로 진리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분명한 객관적 명분이 없는 다툼들이 훨씬 더 많았다.
합동과 통합의 분열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래도 거기엔 에큐메니칼이라는 대외적인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교단, 같은 교회 내부의 무수한 분열은 이권 외에 내세울 명분이 뭐가 있을까?
교회가 이권을 쫓다가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 정신차리기 전에
꼭 유념해야 할 문구이기에 위의 경구를 다시 한번 적어본다.
"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자유를, 양자에 있어서 사랑을!"
[출처] 일치와 자유와 사랑|작성자 taekha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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