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마주치기 싫었던 만남이었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다.
항암주사 한번에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김없이 빠지고,
항암주사 두번에 백혈구 수치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떨어지고,
항암주사 세번에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 항암주사를 여덟번 맞았다. 그리고는 5시간의 대수술, 다시 33차례의 방사선 치료….
방사선에 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다 못해 짓무르고 정신까지 몽롱해졌던 서른 세 번의 치료를 견뎌냈다.
암과의 그 모진 만남을 청산하기 위해서.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제 나는 평생을 암세포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런 생각들은 절망감과 함께 심한 우울증으로 나를 휘몰았다. 삶에 대한 아무런 의욕도 없이 하루를 3년보다 더 지겹게 느끼고 있던 어느 날 누군가가 작은 신문 스크랩 한 장을 보내왔다.
불세출의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 생존율이 50%밖에 되지 않는다는 고환암과 뇌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를 7연패한 사나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장거리 사이클대회를 일곱 번이나 연달아 우승한 사람 이야기였다.
극한의 치료가 끝났을 때 그의 체중은 평소보다 반으로 줄어 있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은 허황되다 싶은 목표를 세우고 재활운동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1년여의 몸만들기 끝에 세계 최고 사이클 경주에서 우승한 것이다.
그는 요즘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암은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주신 최고 선물"이라고.
아직도 수술받은 오른쪽 팔이 완전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오른팔을 못 쓰는 왼손 피아니스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연습하던 그 암울한 시기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가!
반갑지 않은 병마와의 만남이 나에게 긍정의 힘을 일깨워 주었고,
고통을 통해 성숙해지는 정신의 오묘함을 가르쳐 주었다.
세상만사에 양지만 있을 수는 없다.
햇살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고 산이 높을수록 계곡은 더 깊은 법이다.
세상이 고통스러울수록 그 아픔의 순간을 극복한 후의 환희와 고마움은 더 소중한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하며...
암을 `하늘이 주신 내 인생 최고의 선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서혜경 피아니스트ㆍ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