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그림&좋은글

떡 한개의 행복..여보..미안해..사랑해요.

by 설렘심목 2011. 3. 15.
 
     
    떡 한 개의 행복 
    
     
    냉동실에서 인절미 한 개를 꺼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밤 열 개를 삶아서 속껍질까지 깎아 
    비닐봉투에 담았습니다. 
    이번에는 김치냉장고에서 동치미 무 한 개를 꺼냈습니다. 
    서투른 솜씨로 잘게 썰어 타파 통에 넣고 국물을 넉넉하게 부었습니다.  
    혼자 사는 나 먹으라고 교회서 나누어 준 동치미입니다. 
    이것을 썰 때마다 늘 “먹고 싶다. 참말로 먹고 싶다.”를 속으로 되뇌면서도 
    한 조각도 입에 넣지를 못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준비는 끝났는데 떡을 너무 늦게 내놓아 아직도 굳어 있었습니다. 
    잠시의 궁리 끝에 셔츠  윗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가슴에 품으면 빨리 녹을까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요양원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만져보니 
    아직도 속까지는 안 녹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며 또 한 손으로는 수시로 
    차가운 인절미를 주물럭주물럭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녀를 위해 
    가슴에 떡을 품고 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천정만 바라보고 있던 아내가 나를 보더니
    “여보!”하고 외치며 이내 흐느낍니다. 
    나는 얼른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왜 이제 왔어? 이 몹쓸 영감.” 아내가 원망합니다. 
    곁에 있던 보호사가 “또 운다.”하며 흉을 봅니다. 흉볼 만도 합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면회를 가는데도 
    갈 때마다 울면서 반기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래서 내가 항변합니다. 
    “연애해 봤어요? 만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습디까? 
    이 사람은 너무 반가워 우는 거요. 이렇게 울면서 반기는 연애 해 봤어요? 
    지금 우린 연애하는 거예요.” 보호사가 막 웃습니다. 
    옆 침대의 할머니들도 웃습니다. 울던 아내도 웃었습니다. 
    지루해 하던 병실의 공기가 바깥의 화창한 날씨처럼 밝아졌습니다.
    “밤 가지고 왔어?” 요즈음 이 사람은 나보다 밤을 더 기다리나 봅니다.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밤만 아니라 떡도 가지고 왔지.”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휠체어에 앉혀 밖으로 나왔습니다. 
    목련꽃이 눈부신 연못가에 자리 잡고 품에서 인절미를 꺼냈습니다. 
    그새 먹기 좋게 녹아 있었습니다. 
    “이 게 웬 떡이야?” 아내의 눈에 생기가 돕니다. 
    “교회 점심시간에 나온 거야. 
    이것 먹고 점심은 조금 남겨야 돼.” 
    그녀는 식당에서 가지고 온 따듯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맛을 즐깁니다. 
    그 표정 속에서 행복을 읽습니다. 떡 한 개의 행복입니다. 
    내 마음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한 개만 먹고 나머진 이따 오후에 먹지?” 아내가 불만스러워 합니다. 
    “그러면 밥은 반만 먹기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그 동작이 너무 작아서 기연가미연가 싶습니다.
    요양원에서는 이런 간식들은 소화도 잘 안 되고 살이 찐다고 삼가 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빵이나 떡 종류를 가져가면 어떤 때는 노골적으로 나무라기도 합니다. 
    그 말을 이해는 합니다. 살 쪄서 무거워지면 환자 다루기에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눈치가 보여 우리는 이렇게 밖에 나와 몰래 먹습니다.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꽁초 한 모금씩 나누어 피는 심경이 이럴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담배를 안 피워 그 기분을 모르지만,
     아마 지금 우리 부부가 하는 규칙위반의 스릴이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밤은 열 개니까 할머니 한 개씩 나눠드리고 나머진 당신 먹어.” 
    아내는 가타부타 말이 없습니다. 나누어 먹기가 아까운 모양입니다.
    식당으로 갔습니다. 
    병실로 올라갈 밥을 식당으로 내달라고 부탁하고  나도 식권을 끊어 겸상을 합니다. 
    나의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아내는 가지고 간 동치미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치아가 성한 것에 감사합니다. 소화력이 있는 것도 고맙고요. 
    하지만 요즈음 식사 시간이 너무 느려졌습니다. 
    여기저기 쳐다보며 산만하게 먹습니다. 
    국물을 자주 흘리고 입가에 음식이 묻어있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이 사람이 그 깔끔을 떨던 그 여자가 맞나 싶습니다. 
    소리 내 먹는다고 타박하고, 밥풀 하나를 흘려도 잔소리하던 그녀가 
    이렇게 망가져 내 앞에 앉아있습니다.  
    남편의 수발을 받으면서도 이 지경이니 혼자 먹을 때는 어떨까 상상이 갑니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아주 힘들게 식사를 끝냈습니다. 
    헌데 밥그릇에 밥이 한 술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웬일인가 하다가 문득 깨닫고 실소했습니다. 
    인절미 두 개 먹으면 밥 남기기로 한 약속을 지켜 한 수저 정도 남긴 것입니다. 
    자기만 위하라 하고, 남에 대한 배려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렇게 변해버린 그녀입니다. 
    그런데 좀 전의 약속을 지켜 금쪽 같이 귀한 밥 한 술을 남긴 것입니다. 
    한 술 정도의 양심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이제 양치질 하러 병실로 올라가야 합니다. 홀에서 담당 복지사를 만났습니다. 
    “어르신, 손에 든 게 뭐예요?” “응? 삶은 밤.”  “야 맛있겠다. 나 하나만...” 
    아내는 잠시 망설이더니 한  개를 내 줍니다. 아까운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런데 그 곁에 있던 물리치료사가 조릅니다.
     “할머니, 나도 한 개 주세요.” 
    치료가 힘들다고 싫어하고 욕하던 그의 청에 아내는 못들은 척합니다. 내가 거들었습니다. 
    “한 개만 주지 그래? 그래야 아프지 않게 해 줄 거 아뇨?” 아내는 마지못해 한 개를 꺼내 줍니다.
    “여보. 열 개 가지고 왔는데 몇 개 남았소?” 
     “여덟 개.”
    복지사와 물리치료사가 내게 몰래 되돌려준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녀는 
    이 대답을 하는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이 어려운 계산을 하는 새에 엘리베이터가 3층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들 하나씩 나눠드리면 당신은 몇 개를 먹게 돼?” 
    그녀의 셈본 실력으로는 아주 난해한 질문이었나 봅니다. 답변을 못합니다. 
    그래서 휠체어를 멈추고 손가락 여덟 개를 보이며 할머니 성함 한 분 한 분을 부르며 
    손가락 하나씩을 꺾었습니다. 남은 손가락이 세 개가 되었습니다. 
    그제야 아내는 “세 개.” 힘없이 대답합니다. 
    많아 보였던 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까운 모양입니다. 
    나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습니다. 
    “여보. 할머니들 주지 말고 당신 혼자 다 먹어버릴까?” 
    그녀의 표정이 금방 밝아집니다. 그렇게 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까짓 거 당신 혼자 다 먹어.” 
    행복해 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내 가슴도 훈훈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지난날의 행복들, 그 많기만 했던 순간들은 다 잊어버리고, 
    열 개의 아니 여덟 개의 밤을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는 
    작은 행복으로 만족해 하는 바보  아내를 뒤에 두고 
    나는 암담한 기분으로 요양원 문을 나섰습니다. 
    - 원 용 재 -
    <문학예술 2010년 여름호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