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십자가 - 예배당 - 직분 없는 서울 방배동 ‘동네작은교회’
‘동네 작은 교회’가 있다.
“동네 작은 교회 다녀요”라고 말할 때의 그 작은 교회가 아니다. 실제 교회 이름이다. 하지만 서울 서초구 방배동 어딘가에 있다는 이 교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17일 교회를 찾아 나섰지만 골목길에서 몇 차례 길을 잃은 뒤 두 개의 작은 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 ‘3무(無) 교회’
아래에는 ‘사과나무’, 위쪽에는 ‘방배 아지트’라고 적혀 있고 구석에 동네작은교회라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이곳은 십자가나 예배당은 물론이고 권사와 장로 등 교회의 직분도 없는 이른바 3무 교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커피향이 진하게 풍겼다.
“생뚱맞게 들리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부르짖을 자유도 있죠. 그런 자유까지 주신 것 아닌가요.” “그걸 어떻게 선택하는가를 보는 분이 하나님 아닐까요?”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은 20, 30대 10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대학의 동아리 방 분위기다. 13평 남짓한 이곳은 낮에는 사과나무라는 카페로, 영업이 끝난 뒤에는 신자들의 소모임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교회는 이곳을 포함해 내방역 근처의 카페 ‘나무’, 사당동의 동네작은도서실 등 세 곳을 아지트라는 이름으로 두고 있다. 예배는 어디서 볼까. 일요일마다 인근에 있는 회사의 도움을 받아 지하 강당을 빌린다.
○ 세 가지 원칙
2007년 20여 명이 시작한 이 교회는 현재 70여명의 신자가 있다. 이 교회는 지난 일요예배에서 창립 이후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 교회를 다시 더 작은 세 개로 나눈 것. 신자 수가 20명이 넘으면 분리한다는 원칙을 따랐다. 김종일 담임목사(46)는 “여러 목회자가 많은 열매가 열리는 ‘큰 사과나무’를 생각하지만 우리는 작은 사과나무 여럿을 심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커질수록 돈과 권위, 권력 등 세속적인 유혹에 약해진다는 것이 그를 비롯한 ‘동네교회 사람들’의 생각이다. 김 목사가 공개한 지난해 예산은 1억4000여만 원. 목사 사례비(월 180만 원)와 공간 임차료(한 곳당 월평균 50만 원) 등을 포함해 1억2000만 원이 지출됐다.
김 목사는 “대형 교회처럼 건물 유지와 조직 관리에 큰돈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별 어려움이 없다”며 “예산의 40%가 봉사와 장학사업 등에 사용된 것을 알고 주변에서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일요 예배 후 나누는 식사 메뉴는 창립 이후 줄곧 1000원짜리 김밥이다. 일요일이 신자들에게 안식일이자 서로 축복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데도 식사 준비와 다양한 행사로 피곤한 날이 되고 있다는 반성에서다.
마지막 원칙은 ‘평신자 중심의 교회’다. 김경삼 씨(33)는 “설교만 듣는 게 아니라 참여하면서 서로 속내를 나눌 기회가 많다”고 말했다. 작고 건강한 초기 교회의 모습을 추구하는 진한 커피향의 교회다. 끝없이 추락하는 개신교 대형 교회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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