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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세상

(펌글)노숙자의 눈물

by 설렘심목 2010. 5. 28.

 

 

영화 ‘비밀의 화원’에 나오는 메리는 부모를 모두 잃은 고아가 되었음에도 울지 않는다. 자신의 눈물을 닦아 줄 엄마 아빠가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금새 깨달은 때문이다.

 

나는 부모를 동시에 잃은 한 아이가 홀로 지키는 장례식에 간 적이 있다. 고아가 된 그 아이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아 나를 섬뜩하게 하였었다.

 

고아는 결코 울지 않는다고 한다. Homeless(노숙자)도 울지 않는다. 사람이 눈물을 흘릴 때는 그 눈물에 반응하여 줄 상대가 있을 때라야 한다. 아기가 울면 엄마가 젖을 물려 달래 줄 것이며, 자식이 울면 부모가 자식의 눈물을 닦아 주며 위로하여 줄 것이다. 그러나 고아나 홈리스는 아무리 운다 한들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그 눈물 샘은 스스로 말라 버리는 것이다.

 

병찬이는 7학년(중1)이다. 나이보다 앳뎌 보이지만 하는 짓은 어른스럽고 침착하며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맑고 총명하다. 홈리스 체험 선교를 위해 워싱턴 디씨 선교 센터로 떠날 때 나는 그의 어려 뵈는 모습 때문에 쉽사리 여학생들만 탄 밴에 타도록 배정을 하였다. 한참을 가는 동안에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내심 걱정이 되었다. 수다스런 공주들 사이에 수줍은 보이(Boy)를 끼어 넣은 잘못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섣부른 생각이었다. 병찬이는 가끔 한 두 마디씩 공주들 이야기에 끼어 드는 가 싶더니 너댓 살은 연상인 공주들이 배를 쥐고 깔깔 대도록 만들어 놓으며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디씨 선교관에 도착하여 샌드위치를 쌀 때도 춥고 어두운 공원에 가서 스스로 만든 샌드위치를 홈리스들에게 나누어 줄때도 나는 병찬이가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특별한 기대를 갖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어렸으므로 조금은 염려하며 멀지 않은 곳에서 주시하려는 마음이었다. 다만 그가 좀더 열심히 음식 나눠 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뜻 보았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 홈리스 체험 선교단 3기 학생들과 40여분 걸어서 15가 공원에 도착하였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더럽고 냄새 나는 홈리스들과의 만남을 앞둔 우려와 긴장의 모습이 역력하였다. 어떤 학생은 홈리스들이 자신에게 어떤 나쁜 병을 옮겨 줄 병원균의 매개체가 될지도 모른다며 두려워 하기도 하였다. 나는 모든 학생들을 잘 살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이리 저리 돌아 보는 중에 특히 병찬이의 행동을 주시하였다.

 

병찬이는 무언가 서두르고 있었다. 그가 짊어지고 온 헌옷 보따리를 성급하게 풀기 시작했다. 서너 명의 홈리스들이 그에게 다가가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 중에 40대는 되어 보이는 여자 홈리스가 있었다. 병찬이는 그녀에게 몇 벌의 옷가지를 골라 주는 가 싶더니 이내 말을 걸기 시작했고 이내 한 옆으로 비켜 서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은 손을 다정하게 마주 잡고 눈을 지그시 감고는 기도하였다.

 

 

나는 병찬이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며 좀더 가까이 다가가 주시하였다. 사진을 한 장 찍어 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줌인 하였을 때 나는 잠시 놀랐다. 앞니는 아예 없고 더럽고 누추한 의복에 정신도 온전치 못해 보이는 그녀, 흑인 홈리스인 그녀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음이다. 나는 어덜결에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다. 다행이 저들은 기도에 열중하느라 나의 일탈을 보지 못하였다. 나는 그 눈물은 포착해 내지 못하였지만 눈물 자국 만은 선명하게 잡아 낼 수 있었다.

 

검은 얼굴의 홈리스, 그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물 줄기가 흘러 내렸다. 그 눈물은 10년 만이었을지 아니면 20년 만이었을지도 모른다. 병찬이는 족히 십 수년은 닫혀 있었을 저 홈리스 여인의 눈물샘을 열어 제낀 것이다.

 

기도를 마친 병찬이는 그녀의 손을 잡고 가까운 벤치에 자리 잡고는 그녀의 더러운 담요를 함께 덥고 앉아서 한참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밥을 타다가 주기도 하고 물을 얻어다 주기도 하며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는 좀더 감동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잡을 수 있었다. 어쩌면 아들과 엄마처럼 세월의 간격이 있을 병찬이와 그녀, 미국에서 나서 귀하게만 자랐을 병찬이와 눈물도 잊은 체 공원을 자신의 홈으로 알고 살아왔을 그녀, 그녀는 병찬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아주 평화스러운 오수를 즐기고 있고 병찬이는 묵묵히 하늘을 바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말하여야만 한다. 고아도 운다. 그들에게 그를 사랑하고 위로하고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있음을 일깨워 주는 그 순간 저들의 눈물샘은 여지없이 열린다.  언제나 사랑이신 우리 하나님은 병찬이를 통하여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 주신 것이 분명하다.

 

고아도 운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면...

 

 

from : blog of Petro

 

 

-아카시아꽃-

 

 

☞ 병찬이는 미국에서 낳아 자란 중학교 1학년생입니다...그의 행동을 통해 진정한 위로와 사랑은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웁니다...혹여 우리 자신들이 homeless나 고아처럼 눈물샘이 마른 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더불어 같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사랑이 목메어 그립습니다...

출처 : Tong - 초록모자님의 느낌 자리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