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2020.04.12.부활주일설교<요5:28~29. 두 가지 부활>

설렘심목 2020. 4. 12. 21:54

2020.04.12.부활주일설교<5:28~29. 두 가지 부활>

[무지한 자의 용맹과 그 소신은 많은 이들을 어둠으로 몰고 간다. 반면 옳은 사람의 연약과 굽힘은 힘이 없어 열매가 없고 비겁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옳은 생각이 힘차고 꾸준할 때 마귀는 달아난다. 사람은 자기만큼 살지만 성도는 믿음만큼 산다고 강대상에서 선포했는데 좀 살펴 정리하자면 성도는 자기믿음의 양태에 따라 그것을 자기만큼 구현하며 산다고 할 수 있다. 믿음이 확고해도 그것을 삶으로 드러낼 때 자기만큼 믿음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역사를 자랑하고 민족마다 단체마다 전통을 자랑하며 많은 문화재와 유물유산을 잘 보존해서 자손에게 넘겨주기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합니다.

그 결과 인류는 상당한 문화발달과 문명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산업화를 통한 풍요와 편익은 놀라울 정도로 기름지고 편리한 삶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그러한 문화유산과 달리 실제 인류의 역사가운데 가장 중요한 구원역사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는 세상의 그것들에 비해 지극히 작게 보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적유산은 온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복의 기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복의 근원 예수의 소식 중 가장 놀라운 소식은 주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2천여 년 전 부활의 현장을 살피며 부활이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적 가치를 발견할 때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소망이 새롭게 타올라 남은 생애 아낌없는 헌신과 그 기쁨으로 이어지길 원합니다.

본문 28~29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1. 주님 음성에 무덤 속에서 일어나 부활의 심판대에 나갈 때, 두개의 길이 나타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9:27]” 죽는 일이 한번인 인생은 그래서 육체로 사는 것도 한번뿐입니다. 아쉽고 후회가 많아도 고달픈 육체의 때가 반드시 끝난다는 사실이 저와 여러분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오직 감사뿐입니다. 우린 반드시 떠날 것이며 그 순간, 영광도 기쁨도 수치도 자랑도 그 모든 것 다 사라져버릴 것이며 그 후에 두 가지의 길, 영생의 영체와 영벌의 영체가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선한 일을 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끝나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이란 선하신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6:29.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명확하게 증거합니다.

2. 심판의 부활과 생명의 부활, 두 가지의 부활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신앙입니다. 성도의 부활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예수님의 그것처럼 과학을 뛰어넘는 현상인데 우리 모두에게 임할 그 놀라운 일이 지금도 멈추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24:15절에도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고 합니다. 우리의 부활은 의인에게 허락된 영생의 부활입니다.

 

3. 부활할 때 우리의 몸, 부활체는 신비입니다.

 

고전 15:35절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오는가.”를 질문합니다. 몇 곳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부활한다는 분명한 사실과 부활육체가 신비 그 자체인 것을 알게 됩니다. 몇 군데를 봅니다.

 

1) 20:19~20: 제자들이 두려워 문들을 닫고 숨어있는데 잠긴 문을 통과해서 나타났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영생부활영체를 좀 더 자세히 보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귀신이나 도깨비같은 영물이 아니라 만져지는 영체입니다.

그리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창자국과 못 자국을 만져보게 하심으로 보이고 만져지는 부활영체를 제자들 앞에서 증거하셨습니다.

이어 중요한 구절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지금 부활주님의 권세로 들은 말씀은 성령을 받은 후에는 우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할 수도 있고 또 그대로 둘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권세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권세에 덧붙여 대가를 치를 때 그것을 지켜볼 수도 있는 권세를 말씀하십니다.

 

2) 24:40~43: 제자들과 숯불에 구운 생선과 떡, 조반을 드셨습니다.

 

3) 고전15:42: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사는 썩지 않는 부활체입니다. 썩는 지금의 육체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신비한 부활체로 바뀌어 영원히 살게 됩니다.

 

4)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고전15:43), 욕된 것(수치의 육체)으로 심고 영광된(부끄럼이 없는 부활체) 것으로(고전15:43), 육의 몸에서 신령한 몸으로(고전15:44) 다시 살되 영원히 사는 부활체입니다. 그러나 악인을 위한 심판의 부활에 대하여 성경은 참혹하기 짝이 없는 광경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지금의 육체는 기쁨과 아울러 수치도 품은 흙입니다.

 

(1) 12:2절에서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영생 반대편에 분명 끝없는 수치도 부활 후에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2) 66:24절에 그 (부활한) 시체에 죽지 않는 벌레가 있다고 했습니다.

(3) 20:10절에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 짐승과 거짓선지자들이 영원히 밤낮 괴로움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4) 25:46절에는 죄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영광에 동참하길 원하시는 성도여러분, 저는 주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세 가지를 확인하고 당부함으로서 부활절말씀을 정리하려 합니다.

 

첫째, 동정녀를 통해 주님 이 땅에 오신 것, 십자가에 달리셔서 심한 고통에 죽으신 것, 그리고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과 지금 우리 안에 오셨고 또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겁니다.


둘째,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과 태어나심에서 부활까지를 증거해야 할 의무를 지닌 동시에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격과 권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끝으로 셋째는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부활은 그것을 자신이 받을 최고의 영광으로 믿는 자에게 영원한 삶의 표증이 됐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무관합니다. 죽는 것은 다만 육체뿐 영혼은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생명 있는 한, 전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복음을 못 들어 영원한 형벌, 심판을 향해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가득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무저갱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생의 부활을 향해 가는 저와 여러분, 흙집을 지고 갈 때 피곤하고 서러워도 우린 영원한 영광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잠시 여기서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에 감히 비교조차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 끝을 보면 참 가슴 후득이는 감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고후4:16~18)”

부활절 이 아침에 받은 말씀으로 남은 생애에 부활예수와 영생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결단이 여러분과 여러분 후대에 최고의 풍성과 기쁨이 되기를 부활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