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2020.03.22.주일설교<사40:28-31. 새 하늘, 새 땅.>

설렘심목 2020. 3. 23. 11:08

2020.03.22.주일설교<40:28-31. 새 하늘, 새 땅.>

[기독교인은 나그네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나그네란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방황하던 자가 돌아갈 곳이 있는 나그네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恩惠)이다. 잠시 몸을 의탁하는 이곳이 왜 이리도 어지럽고 어수선한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전14:33)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하나님을 모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중공독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떨며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이젠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생업현장들이 문을 닫고 소비가 위축돼 기업들이 흔들리고 직장이 폐쇄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는 영상이나 또 다른 방법으로 예배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붙잡아둘 수 없는 게 많지만 그중에 시간과 말과 생명이 있습니다.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강물이라면 바다가 되어 기다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붙잡지 못하는 세월과 생명은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들어가면 해결됩니다. 오늘 설교제목, 새 하늘 새 땅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북쪽 앗수르와 남쪽의 신흥 애급사이에서 시달리는 유다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고합니다. 본문은 불안한 외세의 위협에서도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할 때 회복될 이스라엘의 벅찬 희망과 끝까지 도우시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광대한 사랑을 소개합니다. 한절씩 살피면서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힘을 얻기 원합니다.

본문 28-29절은 우리를 향한 계획을 세우시고 또 풍성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1. 영원하신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과 명철로 피곤한 자를 일으키십니다.

 

알다시피 성경은 약 1,500여 년간 각기 다른 곳에서 40여명의 기록자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받아 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신비한 능력의 책입니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 모든 예언이 역사를 따라 다 이뤄지고 있으니 매우 놀라운 능력이요, 모든 귀결은 하나같이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소망인 복음입니다. 오늘 이 말씀 듣는 중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관계, 건강, 그리고 각자에게 주님 부어주시는 놀라운 능력과 번성하게 하심이 가득하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배하는 여러분. 본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특성은 영원하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영원하신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이후로 우리의 번민과 돌발 상황. 근심, 곧 불행은 상당부분 믿음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본문 28절 서두는 어떻게 시작합니까?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이미 하나님에 관한 소식 복음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은 많이 들었고 이미 알고 있습니다.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폭적인 신뢰로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도 주를 위해란 바울의 고백은 다이루지 못한다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아픔일 것입니다.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인생에서 최고의 복은 관계의 복입니다. 다음은 그 관계에서 깨닫는 것이고 그 깨달은 것을 몸으로 행하는 복입니다. 좋은 관계에서 잘 배우고 바르게 행하면 야베스의 기도는 이뤄질 줄 압니다. 야베스의 복은 지경확산의 복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이미 우리 좋으신 주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요, 그것은 교회와 성도의 지상목표가 되었습니다. 28:19-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야베스의 소원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내 지역을 넓혀주시고 근심이 없게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폭넓은 활동과 평화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관계의 형통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관계의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으로 시작되는 것 상식입니다. 여기서 잠시, 예배의 목적을 생각합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모든 막힘은 하나님과 막힘으로 파생된 문제들이기 때문에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밝히듯 영원한 하나님, 무한한 능력과 명철이 넘치시는 사랑의 하나님 누구의 하나님이십니까? , 믿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피곤한 자를 일으키신다고 약속하시니 아멘입니다. 피곤한 사람들, 지쳐서 낙심한 사람들,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수많은 실패를 안고 신음하는 히브리인가운데 주님은 치료자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구원하시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라고 하심으로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최고의 목표를 설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 최고의 복을 담아 구현할 수 있는 야베스의 지경확장과 평화를 예고하십니다. 모든 눈에 뵈는 정황과 환경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모든 것을 주장하고 계신 하나님과 먼저 신실하고 기쁜 관계가 되시기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돌아보면 화목은 모든 풍성의 선결조건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를 간절히 원하면 즉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면 피곤한 자에겐 능력과 무능한 자에겐 힘을 더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0-31절입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2. 인간은 문제제기요, 정답은 하나님이십니다.

 

에덴에서 인간이 타락한 후 인생은 모두 문제제기입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사람이 보시기에 가장 안타까운 타락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그 가죽으로 제물의 증표를 삼으시고 부끄러워하는 아담과 하와의 앞 곧 죄의 수치를 가려주셨습니다. 아담하와의 선악과 범죄라는 문제는 결국 하나님의 가죽옷이란 답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끊임없는 흙의 속성, 곧 죄성이라는 DNA는 마침내 골고다언덕위로 문제를 끌어올려 만민이 다 보도록 높이 들었습니다. 인간으로선 피할 도리가 없는 죄가 소리를 쳤습니다. 어쩔 건가? 악지를 부리며 죄없는 메시아를 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 위에 높이 달아 올림으로 인간은 대답하지 못할 가장 악한 질문을 던진 겁니다.

가장 선한 이가 가장 악한 일을 당할 때 인간은 할 말을 잊고 가슴만 칩니다. 답이 안보입니다. 인생이 아무 대책 없이 다 내려놓고 낙심할 그때는 어떤 때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항상 길과 답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극단의 선택은 그 외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라는 길을 만나지 못했기에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천국을 가리키는 이정표요,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정표입니다. , 내가 선한 자를 매달았다. 어쩔 건데? 골고다 언덕에서 죄가 소리쳤습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며 고개를 숙이는 그 순간 태양도 자리를 피해 깜깜해집니다. 누가 감히 죄문제에 답을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무덤이 갈라지며 죽은 자들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의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천지창조의 순간을 창1:1~3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어린 양 예수의 보혈이 땅을 적실 때 공허하고 혼돈한 영혼에 생명의 빛이 영원한 진리로 임했습니다. 무덤이 열렸습니다. 예수의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의 종말이 선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입니다. 도무지 답을 낼 수 없는 죄의 질문에 천하 모든 피조물이 다 보는 가운데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높이 올려서 마지막 정답을 주신 것입니다. 죄의 해결, 그 답은 희생의 보혈이었습니다.

이제 문제투성이가 된 인생마다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지만 제사대신 그 피값으로 우릴 살려주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의 이름만이 죄인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의 영은 지금 우리와 여기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가정과 그리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함께 하십니다. 세상에 문제없는 곳은 묘지뿐입니다. 묘지로 인해 살아있는 자에게 문제가 있을지언정, 묘지엔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정과 회사들마다 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 숨을 쉰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믿고 기억할 것은 우리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이 주인 되시니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황이 있습니까? 바이러스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주변보고 움츠려들지 마십시오. 결산은 주님이 하시니 우린 열심히 사랑하며 살면 됩니다. 6:33절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망하고 절대 신뢰해 드리고 찬양하며 그분의 이름만을 높일 때 그분은 우리의 이름과 우리와 관련된 모든 이름을 높여주십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인생 어느 누구라도 피곤하지 않은 자는 없습니다. 중국의 고은은 인생이 苦海, 고통의 바다라고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구원받기 전 이런 말을 합니다.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았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다. 현재 안에서만 인간의 영혼에 자유로운 신성이 나타난다.”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말년에 이르러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내 일생에 그리스도를 뺀다면 그것은 한낱 빈 수수깡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소년이라도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엎어지지만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비록 힘에 겨워 지쳐 쓰러져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 후 인생결산이 우리 인생들의 능력과 탁월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었다고 증거하는 복된 아름다운 일들이 일마다 때마다 드러나는 하나님의 기업과 하나님의 가정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