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0. 주일예배<민24:1-9. 이스라엘을 축복한 발람>
2019.03.10. 주일예배<민24:1-9. 이스라엘을 축복한 발람>
[70%이상으로 이뤄진 몸을 말하지 않아도 인생은 목마름이다. 길은 오직 하나, 그 길을 고생하며 헤매 찾아오는 사람, 말씀 믿고 깨닫는 사람, 아예 복음과 무관하게 안개처럼 떠나 다신 못 올 길로 가는 사람, 우린 예배를 통해 몸으로 겪지 않고도 깨달음의 복을 받는 택한 무리들, 그 고민은?]
발람은 비록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알기에 두려워했습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 명령으로 발락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발람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을 통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축복하도록 하시는데 그 내용에 있어서 우리에게 주는 약속을 보며 은혜를 나눌까합니다. 5-6절입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1. 장막을 아름답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은 의식주입니다. 먹고 눕고 입는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삶이 불안정합니다. 그런데 의식주가 충분히 해결돼도 먼저 주님을 만나 관계회복이 안되면 대궐 같은 집도 감옥이 되고 풍성한 삶도 허울뿐입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선포되는 복은 먼저 처소에 관한 약속입니다. 저녁에 해가 지면 찾아가 눕고 쉬는 거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인데 그 처소가 매우 아름답고 넓은데다 강변에 있는 동산처럼 보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곳입니다. 처소 중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1620년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65일간 102명중 44명의 목숨을 잃는 어려운 항해 끝에 도착한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청교도들이 맨 처음 한 일은 자신들의 집이 짓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처소 예배당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장막과 처소는 성막과 거처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예배당의 계획과 주택의 계획이 세워진 줄 믿습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처할 곳과 활동무대를 아름답게 장만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예배당과 집과 직장의 터전을 주께서 마련하신다는 이 말씀이 듣는 우리에게 믿음대로 열리는 약속의 복이 오늘 임하신 줄 믿습니다.
본문 7절 앞입니다. “그 물통에서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2. 곳간마다 넘치고 나라가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입니다.
주님은 마6:31-32절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래전 이미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백성들의 필요를 책임지신다고 하셨으니 이러한 이방인의 기도대신 성도는 어떤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 불통에 물이 넘치고 그 씨는 물가에 있으니 그것들을 구할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라 함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돼 주님나라가 확장되고 그 백성의 수와 믿음이 끝없이 더해가고 번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과 소원은 세상의 환경과 그리고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과 무관하게 세계인류사라는 큰 배경을 무대로 묵묵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선포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만복의 근원되십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그릇, 구멍난 그릇에 그 복을 부어주시진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복 중에 믿음의 복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믿음을 받으면 믿음을 실현할 만한 그릇으로 고쳐주실 것이고 그 믿음의 인격과 그릇을 따라 주님께서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본문7절의 뒤쪽입니다. “그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진흥하리로다.”
3. 나라를 부강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세계 역사가운데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영국, 독일, 러시아, 온 열방이 한결 같이 교회가 부흥할 때 세계적인 국력이었지만 교회가 기도에 힘을 잃고 주저앉을 때 사회가 부패하고 국력이 떨어졌습니다. 교회의 부흥과 한 나라의 역사가 결코 무관치 않다는 이 증거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만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눈과 손이 지금도 각 나라의 교회를 살피시고 만지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교회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아는 사람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막중한가에 대해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기도하지 않고 성경에 의한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하면 먼저 교회가 쓰러지고 그 뒤를 따라 나라의 기강과 질서가 무너지고 윤리가 바닥을 치면서 경제가 무너집니다. 국력이 약해진 것은 먼저 교회가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문제는 전반적인 나라와 인생의 문제입니다. 한 가정에서도 신앙의 문제는 온 가정의 길을 정하게 됩니다. 믿음을 잘 붙잡고 성실히 예배가 드려지는 가정은 늘 화평하고 풍성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뒤로 밀려나는 가정은 기도거리가 생기고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나라 없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듯이 가정 없는 개인이 불가능합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고 교회가 큰 가정이라면 나라는 교회의 울타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위대한 의무를 지닙니다. 따라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의 출발이 됩니다. 본문은 교회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나라를 부강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기도하는 손(者)은 나라를 움직이는 능력의 손(者)입니다.
본문 9절 하단에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나라는 아무도 해치지 못합니다. 1907년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부흥의 불길이 무섭게 일어나 조선 모든 땅에 번져간 복음은 일제의 탄압 속에 익어갔고 다시 6.25사변을 통해 남한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집결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남과 북을 갈라 하나는 우상의 땅으로, 하나는 믿음의 땅으로 두시고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38선을 경계로 북에는 우상으로 망하는 증거와 남에는 믿음으로 흥하는 실례를 남겨 두시고 지금도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우린 듣습니다. 그래도 남북한을 통해 하시는 주님음성을 듣지 못해 쓰러져가는 나라와 가정과 개인을 향해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설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북한이 왜 저렇게 가난하기가 짝이 없고 폭군나라가 돼 국제사회의 문제아가 됐습니까? 기독교신앙을 말살하고 인간을 우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과거 김정일은 “인민이 배고픈 것도 알지만 조국의 미래를 위해 자금을 핵개발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정통파 아일랜드공화국이란 테러조직의 보스 존 가아랜드증언에 따르면 그 천문학적 자금을 위해 슈퍼노트(달러위조), 가짜담배, 마약밀수를 하는 전담반을 묵인했다는 겁니다. 2005년 8월 21일 미국 뉴저지주 환락가 애틀란틱시티에서 FBI가 42명 대부분 중국인으로 구성된 대형 국제밀수조직을 일제히 검거했습니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 작전은 마피아부부를 가장한 수사요원들이 한동안 그들에게 접근해 거래를 계속해서 신용을 쌓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날을 잡아 대형파티를 열어 거물들을 초청한 뒤 두 번째 파티장소로 옮긴다는 리무진버스에 태워 그대로 FBI본부로 연행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세계의 경찰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북한을 결코 좌시하지 않습니다. 미국을 믿는 게 아니라 성경에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내 백성들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씨는 맑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이 말씀을 믿고 힘을 내는 자마다 예배의 현장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형통함을 주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복이 먼저 임하기 원합니다. 믿음 중 지혜의 믿음을 더하소서. 최고의 믿음은 지혜의 믿음이요, 단호하고도 겸손한 믿음인 줄 믿습니다. 관계의 복과 그 관계에서 깨닫는 복을 더하시고 행하는 결단도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