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

2018.10.07. 주일예배<눅6:38<27-38> 주라. 후히 베푸시리라

설렘심목 2018. 10. 7. 18:31

2018.10.07. 주일예배<6:38<27-38> 주라. 후히 베푸시리라.>

[하늘과 땅, 선과 악, 미움과 사랑, 낮음과 높음, 모든 단어에는 맞은편의 말이 있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이란 말은 있어도 천국과 지국이란 말은 없다. 천국의 맞은편은 지국地國이 아니라 지옥이다. 나라는 주권과 영토와 국민이 있는데 사실상의 온전한 나라는 하늘에만 가능하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셔서 가능한 일이다. 반면 땅에서는 온전한 나라가 불가해 천국의 반대어는 지옥地獄인 것이다. ()에 갇혀 살아야 하는 이 땅의 삶에 우리를 가두는 것은 형무소가 아니라 食慾, 性慾, 睡眠欲, 物慾, 名譽慾의 오욕(五慾)과 희(), (), (), (), (), (), ()의 칠정(七情)으로 살아가는 오욕칠정의 육체가 감옥(監獄)이다. 五慾七情의 몸에서 자유로운 어느 누구도 없다. 땅 곧 육체에 갇혀 사는 우리가 이 옥을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일은 하나, 우리도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갇힌 옥에서 기도하고 찬양할 때 비로소 매인 것을 풀고 부서진 옥문을 통과해 자유로울 수 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16:25-6. 육신에서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죽음이 생명의 끝인 사람과 반대로 새로운 시작인 사람들이 있다. 옥의 죽음이 절망과 끝이 아니라 눈물과 아픔과 외로움과 억울함이 없어 원망과 시비가 없는 나라의 시작인 사람들, 곧 성도이다.]

 

복음은 단순한 생활윤리가 아닙니다. 윤리와 도덕은 물론이요, 주님의 말씀은 하늘의 신령한 법칙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법은 모든 땅의 법을 다스리게 됩니다. 법칙에는 항상 가장 모범되고 안전하면서도 공평한 길이 제시돼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가 기록한 산상수훈과 그 맥을 같이하는 내용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내야 할 십자가의 도를 전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받은 뒤 드리는 것이 아니라 드린 후에 후히 받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제물로 드린 뒤 영생과 주재와 심판권을 받으신 주님처럼 오늘 말씀의 주제는 먼저 주라는 겁니다. 이는 당시 그리스도로 인하여 심한 핍박 속에 있는 성도 간 행해야 할 생활실천적인 윤리강령중 하나입니다. 제자라면 마땅히 가야할 희생과 섬김과 자비를 통해 그리스도를 몸과 삶으로 전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 여러 개의 구절은 하나같이 갚아주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 38절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조건없는 사랑을 우리가 먼저 이웃에게 행할 때 누가 갚으십니까?

 

* 하나님이 친히 갚아주십니다.

 

본문 35절을 함께 읽습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주는 일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35절 뒤쪽에는 그렇게 어려운 명령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놀라운 선물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클 것이며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보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된다함은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은혜 중 최상최고최대의 영광입니다..

더 이상의 상급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상최고최대의 상급에는 그만한 진통이 따릅니다. 부활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의 처절한 능선을 넘어야 했던 것처럼 주를 따르며 진정 주님의 제자된 길을 기뻐하며 주실 영광과 영생의 확신에 찬 성도라면 큰 상급을 위한 큰 희생도 달게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과 섬김을 믿음 안에서 과연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상급,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놀라운 영광은 먼저 유업자, 곧 상속자라는 데서 분명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뜻 안에서 아버지 소유를 이어받아 가업을 이을 상속자를 본문은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원수까지 사랑하면서 가여운 이웃을 향하여 값없이 도와주고, 갚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꾸어주며 아무 조건이 없이 빌려준다면 그것을 아버지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갚아주시되 흔들어 넘치도록 후히 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통해 하시든 환경을 통해 하시든 채우시고 갚아주시는 이는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성경을 통하여 하신 말씀들을 어김없이 이뤄 가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믿기 바랍니다.

어떨 때 갚아주신다고 했습니까? 27절에서29절입니다.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1)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하게 후대하라는 것입니다. 송나라에 어느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이 그만 큰 실수를 하여 많은 빚을 지게 되었고 모든 재산이 사라졌습니다. 피해자는 분이 안 풀렸으나 한편 불쌍한 생각이 들어 판관에게 청구를 했습니다. 태장을 직접 때리고 싶은데 한 대당 은전 하나씩 줌으로 분노를 풀면서도 물질을 돕고자 했습니다. 승낙이 떨어져 늙은 아버지는 태장을 맞게 되었습니다. 삭탈관직당한 이 아버지는 너무 아팠지만 아들이 용서받고 움막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몇 푼을 벌수 있어서 잘 참으면서 감사했습니다. 피해자는 분이 풀릴 때까지 곤장을 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잘 참고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이 늙은 아비에게 감동하여 매를 멈추고 빼앗았던 돈을 모두 돌려줬습니다..

여전히 악한 우리가, 무슨 힘으로 조건없이 손해를 보겠습니까? 답은 언제나 하나님 우리 아버지십니다. 이웃에게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을 베풀 때 그때마다 지극히 높은 권세의 하나님이 우릴 향하여 상급을 쌓아두십니다. 잃었던 모든 관계와 필요, 모두 돌려주실 것입니다. 원수에게 당하는 매질은 비록 아프고 억울하고 분통터져도 주님은 그때마다 놀라운 것으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상속자, 아들이 되는 놀라운 영광과 큰 상급의 약속은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고 위해서 기도할 때 주어지는 일인 줄 말씀을 따라 믿기를 바랍니다. 31절입니다.

2) 먼저 대접하면 반드시 주님이 후대해 주십니다. 언제 어디서 짊어지든 십자가는 언제나 죽음이 먼저였고 그 후에 부활입니다. 우리가 먼저 대접하면 주님은 그들, 또는 누군가를 통해서 우리를 대접해주시되 후하게 하십니다. 사람을 통해 주님을 잘 섬기고 모시려는 마음은 결국 후하게 섬김을 받게 되는 선한 고리 이어가기의 시작인 것입니다. 32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 사랑하기 힘든 자까지도 사랑하면 주께서 사랑하십니다. 주변을 보면 그렇게 사랑할만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가까워질수록 실망스러운가 하면 나 자신도 어느새 실망의 대상이 돼있는데 우리가 누구를 사랑해주고 품어 화목과 복된 교제가 있겠습니까? 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지를 바꾸어 한번만 생각해도 우리들의 이기심과 아집은 상당히 가라앉을 것입니다. 이미 들은 것처럼 내가 그 사람 입장이라면 나는 그보다 더 악하고 추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사람은 지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여러 사정이 있을 것을 미루어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역대희귀종이라는 악명이 붙은 정신병자 몇 빼고 모두 알고 보면 가엾고 그럴만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굳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굳어진 거 고치려면 내리쳐서 부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깨어져야 합니다.

깨지고 깨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받기 힘든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과 말씀에 의지하면 사랑하기 힘든 자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과 믿음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진노받기에 합당한 인생 우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우리는 악한 환경과 만족스럽지 못한 세상살이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나라 시민의 신앙강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아래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믿음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화목을 유지하시기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7-38절을 함께 읽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4) 우리가 하는 대로 되돌려 받는 인생입니다. 본문에서는 모든 것이 되돌려 받는 부메랑의 원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비판하면 비판받을 것이고, 정죄하면 정죄 받을 것이며 용서하면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값없이 주면 주님께서 후히 베풀어주십니다. 특별히 본문 말미에는 헤아리지 말라고 지적합니다. 그 헤아림으로 너도 헤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헤아리고 따지는 건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계약문서와 날인이라는 것이 있고 공증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법률적인 것은 모두 세상이 불신의 늪이라는 증거입니다. 무엇보다 주님 앞에 헤아리고 따져보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선악과로 옳지 않습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신 주님 앞에 조건 없이 헤아리지 않는 믿음은 귀하고 아름다운 믿음, 생명과에 속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드릴 때 항상 최고와 최선의 능력으로 다가오는 줄 믿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의 중요한 주제는 후히 되돌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꾸짖지 않고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이 되게 하려면 이웃에게 주되 조건 없는 베풀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주제입니다. 이웃에게 주던 하나님께 드리든 우리는 헤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도 이웃도 날 향해 헤아리지 않고 듬뿍 안겨준다고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든 물질이든 섬기는 일이나 용서하는 일이나 우리가 한 그 이상으로 되돌려 받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성도와 교회의 역사와 미래는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릎으로 열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뿌리는 씨는 악이든 선이든 어리석음이든 지혜로움이든 모두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가장 귀한 생명의 씨를 뿌리기 바랍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 것을 기억하시고 전도의 씨, 생명을 구하는 복음의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섬김과 사랑에도 인색치 않기 바랍니다.

조건 없이 용서하고 조건 없이 대접하고 조건 없이 베풀되 갚기를 기다리지 않기 바랍니다. 늘 지켜보시는 주님이 대신 갚으시되 후히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악과 어리석음을 뿌렸다면 즉시 엎드려야 하며 선과 사랑을 뿌렸다면 뿌린 것으로 족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게 되기 바랍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갚아주시되 후히 갚아주십니다. 가정마다 개인마다 주님의 선하신 임재와 간섭으로 끝내 용서하시고 후히 갚아주시는 일이 풍성과 기쁨으로 증거가 넘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